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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387801

    與姪兒覺正 39 / 기록자료>고도서 / 남한조
    조카 각정에게, ‘너는 우리 집안의 4세 종손이고 나이가 이미 스물이 넘었는데 아직도 동몽교육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집안사람 누군들 걱정하지 않겠는가.’라고 했다. 근래 독서에 자못 뜻을 두고 있다고 하니 가상한 일이고, 너를 생가에 한 달 정도 머물면서 공부하
    출처 : 유교넷
  • 387802

    坤復說記疑 1 / 기록자료>고도서 / 남한조
    주자의 유명한 중화설에 대한 논의이다. 중화제6서를 인용하여 사려가 싹트기 전과 이후로 나누어 중화신설과 중화구설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를 펼치고 있다. 밀암 이재의 『주서강록간보』의 설명을 인용하여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출처 : 유교넷
  • 387803

    三官記 3 / 기록자료>고도서 / 남한조
    마음의 동정에 관련되는 격언들을 모아서 논의한 글이다. 퇴계의 말과 탄옹이 송영보에게 답한 편지글, 『심경부주』의 안자문인장에 나오는 서산 진씨의 말, 안순암이 인용한 정자의 말 등을 중심으로 논의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87804

    贈柳穉實(近文) 9 / 기록자료>고도서 / 남한조
    저자에게 와서 배우던 류근문이 떠나면서 한 마디 경계의 말을 청했을 때, 그에게 증정한 글이다. 여여숙이 말한 군자가 학문을 함에 있어서 중시하는 것은 기질을 변화시키는 것이라는 말은 인용하면서, 류근문의 거친 기질의 변화를 주문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87805

    安順庵天學或問辨疑 11 / 기록자료>고도서 / 남한조
    순암 안정복의 『天學或問』을 읽고 그 내용 가운데 문제점을 비판한 글이다. 저자는 과거시험 때문에 순암의 문하에 출입하던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순암이 저자에게 서학의 폐해를 말하고 자신이 이를 변척한 글을 지었는데 그 내용을 검토해 달라는 부탁을 했고, 그것이 이
    출처 : 유교넷
  • 387806

    李星湖(瀷)天主實義跋辨疑 23 / 기록자료>고도서 / 남한조
    성호 이익의 「천주실의발」을 읽고 그 문제점을 지적한 글이다. 저자는 성호가 박식하고 총명한 선비로서 西學의 폐단을 논하여 자못 그 핵심을 찔렀지만, 그 가운데는 몇 가지 문제점이 있어 이 글을 지었다. 저자가 지적하는 대표적인 문제점은, 서학에서 天主와 유교의 上帝
    출처 : 유교넷
  • 387807

    八景小記 1 / 기록자료>고도서 / 남한조
    관동팔경을 유람하고 적은 유람기이다. 저자는 관동팔경이 평해의 월송정‧울진의 망양정‧삼척의 죽서루‧강릉의 경포대, 양양의 낙산사‧간성의 청간정‧고성의 삼일포‧통천의 총석정이라 하고, 혹자는 망양정 대신에 흡곡의 侍中臺라고 하기도 하지만, 저자는 시중대를 직접 보지 못
    출처 : 유교넷
  • 387808

    金剛山小記 8 / 기록자료>고도서 / 남한조
    금강산을 유람하고 지은 유산기이다. 저자는 일찍이 식산 이만부가 지은 금강산기를 읽고 큰 감명을 받았으며 죽기 전에 반드시 한번은 유람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속무와 질병으로 인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가 친구인 류천서가 금강산 아래에 있는 고성 군수로 가는 것을
    출처 : 유교넷
  • 387809

    臥隱庵記 16 / 기록자료>고도서 / 남한조
    본관이 의성인 金翰東이라는 사람의 와은암에 대한 기문이다. 김동한은 영동에 귀양 살다가 돌아와 황전산 중에 암자를 짓고 와은암이라 이름 붙였다. 그리고 저자에게 기문을 부탁했는데 이 글은 그 때 지은 것이다. 저자는 자고로 사환가에서 언제나 隱자를 좋아했지만 실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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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7810

    題金而性遺卷後 18 / 기록자료>고도서 / 남한조
    저자에게 생질이 되는 金而性의 유문에 대한 발문이다. 학문에 취미가 있었지만 나이 26세에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생전에 남긴 시가 총 29편이고 文‧書‧序‧雜著가 총 13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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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7811

    題僑窩成公遺卷後 20 / 기록자료>고도서 / 남한조
    僑窩 成公의 유문에 대한 발문이다. 그는 저자와 세의가 있는 집안의 문장으로서 평소 저자가 그의 문하에 출입한 적이 있었다. 당시 이미 공은 병이 들었지만 여전히 저술을 멈추지 않았고 잡고를 4질이나 써서 저자에게 보여주면서, 자네가 보고 평론을 해 주고 아울러 문자
    출처 : 유교넷
  • 387812

    題裵君道學六圖卷後 22 / 기록자료>고도서 / 남한조
    槐潭 裵相說이 저술한 「道學六圖」에 대한 발문이다. 배군은 궁벽한 고을에서 태어나 뛰어난 자질을 갖추었고 견문이나 본받을 스승도 없이 오로지 스스로의 힘으로 자득의 경지에 이르렀으나 불행히 나이 30에 요절하고 말았다. 저자는 배군을 장인 소암공의 문하에서 처음 만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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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7813

    李秉進退可字說 23 / 기록자료>고도서 / 남한조
    李秉進의 字인 退可에 포함된 의미에 관해 쓴 글이다. 군자는 학문을 함에 있어서 물러나서 지키고 나아가 작위하니, 고요히 있음으로써 움직임의 근본을 함유하고 움직임으로써 고요함의 지키는 바를 경험한다고 했다. 움직임은 반드시 고요함에 근본하고 고요함을 주로 하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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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7814

    金在遠爾愼字說 24 / 기록자료>고도서 / 남한조
    金在遠의 字인 爾愼의 의미에 관해 쓴 글이다. 외사촌 동생인 金舜叟가 그의 아들 재원에게 관례를 치르면서 저자에게 자를 청했다. 이에 저자는 그에게 爾愼이라는 자를 지어 주었는데, 대개 그 의미는 『서전』 「고요모」 첫 장에서 취한 것이었다.
    출처 : 유교넷
  • 387815

    鄭象觀叔顒字辭 26 / 기록자료>고도서 / 남한조
    저자의 제자인 鄭象觀에게 叔顒이라는 字를 지어주면서 쓴 글이다. 그의 본래 字는 用賓이었으니 『주역』 觀괘의 六四효의 효사에서 의미를 취한 것이었다. 저자는 彖辭에서 취하여 叔顒이라는 자를 지어 주었다.
    출처 : 유교넷
  • 387816

    三從弟漢憲叔度字辭 26 / 기록자료>고도서 / 남한조
    저자에게 삼종제에게 字를 지어주면서 쓴 글이다. 그의 이름은 漢憲이고, 자는 叔度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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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7817

    祛習箴 27 / 기록자료>고도서 / 남한조
    「거습잠」은 저자의 나이 30이 되었을 때 지은 것으로 지난날의 습관을 반성하고 학문에 전념하기 위한 다짐의 의미를 담고 있다. 사람에게 아름다운 품성은 태어날 때 하늘로부터 품부 받은 것이니 성인과 현인은 이러한 품성을 몸에 익힌 사람이다. 그러나 속무에 몰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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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7818

    溫泉世德祠上樑文 28 / 기록자료>고도서 / 남한조
    세덕사 상량문이다. 군현이 연이어 출현하고 집안의 명성이 자자하여 조손 삼세가 함께 흠향하니 교남의 명가이다. 근원이 멀고 깊으니 산동의 귀인 崔盧의 세족으로 宋나라 范呂의 가풍과 東岡의 고고함을 계승하여 한 지방에 끊어진 학문의 전통을 다시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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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7819

    家廟上樑文 30 / 기록자료>고도서 / 남한조
    고전의 전거에 따라 4세의 사당을 지었다. 옛날의 건물을 헐고 나니 비로소 3칸의 제도를 갖출 수 있었다. 본래 유현은 1칸이라는 설을 따라 지었으나 세수가 증대함에 따라 서열대로 수용하기가 어렵고 끝에 모셔진 위패는 넘어질 우려가 있어 증축하게 되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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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7820

    玉霞亭上樑文 32 / 기록자료>고도서 / 남한조
    옥하정 상량문이다. 젊어서 이름을 날리지 못했고 늙어서 한가하게 몸을 수양할 공간이 없으니 이를 한심하게 여기다가 옥하임천이 실로 신선의 혼령이 깃든 곳이라 이곳에 정자를 짓기로 했다. 사물을 완상하고 이치를 궁구하기에 가장 적합한 곳이니 이곳이 은자가 머물 곳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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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7821

    六宜齋上樑文 33 / 기록자료>고도서 / 남한조
    육의재 상량문이다. 저자가 살던 집 뒤의 소나무 숲 근처 바위 위에 지은 정자이다. 조상들이 살던 터전에 지어 선조의 뜻을 계승하고 아이들을 공부시키며 산수를 즐기는 장소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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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7822

    道存堂上樑文 35 / 기록자료>고도서 / 남한조
    우복 정경세가 후학을 가르치던 곳에 그의 정신을 기려서 세운 도존당의 상량문이다. 용문의 선현이 가르치던 곳에는 마땅히 난초 향기 나는 정자가 있어야 한다는 고사에 따라, 정 선생이 머물던 곳에 重檐五架의 제도로써 집을 지었으니 이것은 廈屋의 규정에서 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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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7823

    寒碧齋鄭先生上享祝文 1 / 기록자료>고도서 / 남한조
    寒碧齋 鄭錫堅에 대해 저자가 쓴 축문이다. 정석견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海州, 자는 子健, 호는 寒碧齋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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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7824

    祭大山李先生文 1 / 기록자료>고도서 / 남한조
    大山 李象靖에 대해 저자가 쓴 제문이다. 이상정은 조선 후기의 학자로 본관은 韓山, 자는 景文, 호는 大山이다. 대과에 급제했으나 곧 사직하고 학문에 전념하였다. 그의 학문은 南漢朝를 통해 柳致明으로 이어졌다. 시호는 文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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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7825

    祭東巖柳先生文 2 / 기록자료>고도서 / 남한조
    東巖 柳長源에 대해 저자가 쓴 제문이다. 류장원은 조선 정조 때의 성리학자로 자는 叔遠, 호는 東巖, 본관은 全州로 安東 출신이다. 李象靖의 문하에서 배웠으며 연구에 전념하여 많은 저술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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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7826

    祭小山李先生文 3 / 기록자료>고도서 / 남한조
    小山 李光靖에 대해 저자가 쓴 제문이다. 이광정은 조선 후기의 학자로 본관은 韓山, 자는 休文, 호는 小山이다. 대산 이상정의 동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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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7827

    祭數咎庵崔先生(興遠)文 3 / 기록자료>고도서 / 남한조
    數咎庵 崔興遠에 대해 저자가 쓴 제문이다. 최흥원은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로서 본관은 慶州, 자는 太初 또는 汝浩이며, 호는 百弗庵이다. 數咎庵은 백불암으로 고치기 전의 호인데, 자신의 허물을 스스로 점검하고 고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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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7828

    祭蘆厓柳公(道源)文 5 / 기록자료>고도서 / 남한조
    蘆厓 柳道源에 대해 저자가 쓴 제문이다. 류도원은 조선 후기의 학자로 본관은 全州, 자는 叔文, 호는 蘆厓이다. 동생인 동암 류장원과 함께 이상정의 문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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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7829

    祭川沙金公(宗德)文 6 / 기록자료>고도서 / 남한조
    川沙 金宗德에 대해 저자가 쓴 제문이다. 김종덕은 조선 후기의 학자로서 본관은 安東, 자는 道彦, 호는 川沙이다. 대산 이상정의 문인이다. 많은 저술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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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7830

    祭鄭公(必復)文等 6 / 기록자료>고도서 / 남한조
    그 외 鄭必復에 대해 쓴 제문이다. 李剛齋(承延)에 대한 제문, 舅氏인 素庵金公에 대한 제문, 李上舍(東春)에 대한 제문, 鄭滄海(瀾)에 대한 제문, 李致道(埦)의 시신을 返柩할 때와 葬事 지낼 때 그리고 大祥 때 저자가 쓴 제문이 있다. 또 李幼健(誠運)에 대한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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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7831

    誄崇巖盧公(澺)文等 27 / 기록자료>고도서 / 남한조
    崇巖 盧澺에 대해 저자가 쓴 뇌문, 柳景範(洛文)과 생원 黃㶅에 대해 저자가 쓴 뇌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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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7832

    金義士傳 31 / 기록자료>고도서 / 남한조
    의사 金紳의 전기이다. 김신의 자는 希張, 호는 西齋로서 본관은 商山이다. 그는 昭敬王 16년에 왜구들이 침입했을 때 아들 삼형제와 함께 擧義했다가 부자가 모두 전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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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7833

    活齋先生李公墓碣銘(並序) 1 / 기록자료>고도서 / 남한조
    活齋 李榘의 묘갈명과 서문이다. 이구의 자는 大方, 효령대군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공조정랑 光洽이고, 어머니는 장수황씨로서 1613년(광해군 5)에 태어나서 1654년에 죽었다. 그는 과거를 포기하고 도학에 몰두했는데 오로지 주서절요와 퇴도문집을 일생 학문의 기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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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7834

    直方齋趙公墓誌銘(並序) 5 / 기록자료>고도서 / 남한조
    直方齋 趙麟經의 묘지명과 서문이다. 본관은 풍양이며 黔澗 趙靖의 5세손이다. 篪齋 鄭葵陽의 문하에서 공부했다. 과거를 단념하고 학문에 열중했다. 기묘년 2월에 죽었으니 향년 64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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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7835

    通訓大夫行豊基郡守守月潭金公墓誌 8 / 기록자료>고도서 / 남한조
    통훈대부로서 풍기군수를 지낸 月潭 金廷龍의 묘지명이다. 김정룡의 본관은 義城, 자는 時見, 호는 月潭이다. 그는 西溪 金聃壽의 아들로서 문과에 급제하고 예안현감, 풍기군수를 지냈다. 한강‧동강 양 선생에게 배웠으며 월천‧설월 등과 함께 퇴계의 『성학십도』를 탐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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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7836

    孺人善山金氏墓誌銘(並序) 10 / 기록자료>고도서 / 남한조
    全州 柳誠伯의 부인 孺人 선산김씨의 묘지명이다. 류성백의 부인이 되어 6년 만에 요절했다. 김씨가 류성백과 부부의 연을 맺어서 아름다운 부덕을 보였음을 칭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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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7837

    東巖柳先生行狀 14 / 기록자료>고도서 / 남한조
    東巖 柳長源의 행장이다. 본관은 全州, 자는 叔遠, 호는 東巖이다. 아버지는 信迪이고, 어머니는 풍산김씨로 참판 榮祖의 현손이다. 생부는 觀鉉으로 문과에 급제하고 참의를 지냈다. 어려서는 백부 慵窩公의 가르침을 받았고 13세에 黃山文會에서 수위를 차지하여 대산 이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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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7838

    松彦具公遺狀 35 / 기록자료>고도서 / 남한조
    松彦 具贊祿의 행장이다. 구찬록의 본관은 綾城, 자는 汝膺이다. 아버지는 幹, 어머니는 안동권씨이다. 어려서 족형인 백담 구봉령에게 가르침을 받았고 커서는 퇴계문하에 입문했는데 퇴계가 크게 허여하였다. 사는 곳이 예안의 부포라서 도산과는 지척의 거리였고 월천‧성재‧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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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7839

    저자의 고조인 南垕의 행장이다. 그의 본관은 宜寧, 자는 載元이다. 아버지는 통덕랑 極老이고 어머니는 전주이씨이다. 15세에 權愰에게 입문하여 학문을 배웠다. 진사시와 명경과에 합격하면서 벼슬길에 오른 이후 내외 요직을 두루 거쳤다. 향리에 정사를 짓고 고을 이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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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7840

    이안당집 / 기록자료>고도서 / 조천경
    易安堂 趙天經의 문집. 4卷 2冊. 木版本. 四周雙邊, 半郭 22.0×16.6㎝, 有界, 10行20字, 內向2葉花紋魚尾, 33.8×21.7㎝. 卷首에는 姜世白과 李敬儒의 序文 및 目錄이 있고, 卷1에서 卷3까지는 360여 首의 詩와 50여 首의 輓詞가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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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7841

    정와집 / 기록자료>고도서 / 황용한
    정와집(貞窩集) 貞窩 黃龍漢의 문집. 11卷 6冊. 木板本. 四周雙邊, 半郭 19.8×15.8㎝, 有界, 10行20字, 內向2葉花紋魚尾,上下白口, 31.3×20.2㎝. 卷首에 청풍 金熙華의 서문, 卷末에 1818년(순조 18) 4월에 쓴 저자의 自述이 있으나,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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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7842

    창계집 / 기록자료>고도서 / 문경동
    창계집(滄溪集) 滄溪 文敬仝의 시문집. 4卷 2冊. 木板本. 四周雙邊, 半郭 19.0×15.3㎝, 有界, 10行21字 小字雙行,內向2葉花紋魚尾, 32.3×21.2㎝. 문경동 사후 270여년 뒤인 1790년 외후손인 張世相과 斗庵 金若鍊(1730~1802)에 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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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7843

    / 기록자료>고도서 / 문경동
    次枕流亭賦(竝序), 止謗莫如自修賦(竝序), 述志賦(竝序), 前蝸賦, 後蝸賦, 松溪賦, 遊淸涼山賦(用孫興公遊天台山賦韻), 擬懲咎賦(竝序), 次觀魚臺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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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7844

    / 기록자료>고도서 / 문경동
    送節度李希剛(長坤)赴寧邊鎭, 燕子樓, 讚慶樓, 次嶺南樓韻, 雙碧樓, 澄心軒, 次雨晴陳簡齋詩韻, 贈洪直卿(彦忠), 靑松途中, 多仁途中, 次宮怨(缺)人韻, 江上聞篴, 失鶴, 詠菊, 除夕, 贈別周溓, 贈別胡宿古, 海雲臺(三首), 登樓晩興(二絶), 蓮塘, 赤羅凉房, 雙明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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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7845

    / 기록자료>고도서 / 문경동
    次養間樓韻, 復次古風(主人病時作), 秋日詠懷(二首), 過辛引儀亭, 次燕子樓韻(金海), 次嶺南樓韻(密陽), 次月波亭柱上韻(二首○善山), 又次板上韻, 次映湖樓韻(安東), 次雙碧樓韻(竝書), 次澄心軒韻, 雨晴次陳簡齋韻, 題安長寺南樓(三絶), 登樓詠懷, 次方敎授宴席韻, 題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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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7846

    / 기록자료>고도서 / 문경동
    龍壽途中書事贈李明仲令公, 唐橋有感, 盈德途中述懷贈堯卿令公(二首),登觀魚臺(二首),春日雨後卽事用昌黎韻,春日病餘偶吟(五絶), 春夜雨中書懷, 次止叔聞杜鵑感懷韻, 次權進士(恕)思親韻, 月夜登樓聞篴有感(在善山作), 戱贈尙州牧金子寬(二絶), 久旱逢雨喜書,將送人戱贈子寬(二絶),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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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7847

    / 기록자료>고도서 / 문경동
    春日旅寓次成重卿(任)令公韻(三首), 觀史五詠, 次祖成詩軸松齋韻, 拾古句書聖泉寺禪堂示僧(三絶), 次善元韻(二絶), 又二首, 次善弘詩軸韻, 次惠遠詩軸韻, 早春書懷(五絶), 次種躑躅花(五絶一絶在上篇), 晩春(五絶), 早春書懷(三首), 浮雲, 驟雨, 狂風, 贈金平仲奉邀(二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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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7848

    宋氏家藏金剛篆文跋 / 기록자료>고도서 / 문경동
    인척 宋碩忠이 가지고 온 篆書 1부를 보고 쓴 발문이다. 몇 해 전 서울에 있는 친구로부터 篆書 1부를 얻어 몇 년간 곁에 두고 감상하며 내용을 풀어보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돌려준 적이 있어 아쉬웠는데 마침 송석충이 집안 선조가 베껴 쓴 것이라며 가지와 발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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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7849

    墓碣銘(竝序) / 기록자료>고도서 / 문경동
    退溪 李滉이 쓴 묘갈명이다. 「通訓大夫行成均館司成文公墓碣銘(竝序)」라는제목으로 되어 있다. 끝에 명시적인 기록은 없으나 묘갈의 내용과 金若鍊이 쓴 서문 등을 감안할 때 이황이 쓴 묘갈명으로 추정된다. 요지는 다음과 같다. 1521년(중종 16) 6월 그믐날 淸風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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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7850

    / 기록자료>고도서 / 문경동
    1723년(경종 3) 外後孫인 蒼雪齋 權斗經(1654 ∼1726)이 지은 발문이다. 문경동의 외후손인 張仁後가 대‧소 2책으로 이루어진 고서를 들고 와 外先祖인 滄溪公의 遺著라고 하며 발문을 청하기에 살펴보고 적는다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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