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識 / 기록자료>고도서 / 문경동문경동의 외후손인 張世相이 쓴 後識이다. 戊午士禍 때 화를 피해 집에 와 머물렀던 李長坤과 뜻이 통하여 많은 시를 주고받았다는 이야기가 전하지만 현재 남은 것은「送節度李希剛(長坤)赴寧邊鎭」1편뿐이라는 내용이 보이는데, 이장곤과 문경동의 교유관계를 짐작할 수 있게 해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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跋 / 기록자료>고도서 / 문경동문경동의 외후손인 李中麟이 1906년(광무10)에 쓴 발문이다. 초본을 보관한 사람은 張世相이고, 서원의 비용을 염출하여 수정작업을 한 사람은 張泰禧와 金相寅이며, 끝에 跋文을 붙인 사람은 權斗經과 張世相 그리고 일의전말을 서문으로 기록한 金若鍊이라고 하여, 초간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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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우헌집 / 기록자료>고도서 / 조보양팔우헌집(八友軒集) 八友軒 趙普陽의 문집. 7卷 4冊. 1831. 木板本. 四周雙邊, 半郭 20.5×15.3㎝, 有界, 10行20字, 註雙行, 內向2葉花紋魚眉, 29.3×19.7㎝. 문집은 李仁行의 서문과 八友軒 선생의 世系圖로 시작하여, 卷1은 賦 1편‧詩 14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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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주집 / 기록자료>고도서 / 김여욱허주집(虛舟集) 虛舟 金汝煜의 문집. 2卷 1冊. 木板本.四周單邊,半郭 18.9× 14.9㎝, 有界, 10行20字, 上下內向2葉花紋魚尾, 31.6×20.5㎝. 卷首에는權璉夏(1813~1896)가 撰한 序文이 있고, 目錄은 생략되어 있으며, 卷1에는 200수에 가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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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 기록자료>고도서 / 김여욱謁陶山尙德祠,過桃村巖花盛開紅影倒水, 赴尹司評(涉)設酌感吟,偶吟, 望雲怨,立春怨, 問願死鳥, 鳥答, 買扇, 種竹, 種菊, 辛酉八月以疏擧西上道中次李子才(成材)韻,呈疏待命次李德遠(之馨)韻二首, 城中述懷,望月, 下鄕途中, 別洪洽遠(翼溟), 春帖, 訪李文瑞(見龍)家病梅, 輓金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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辭 / 기록자료>고도서 / 김여욱萬古演義辭, 仙遊別曲, 招梅魂辭(代吳景虛作○幷序).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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奉送伯氏同季弟往省固城先塋序 / 기록자료>고도서 / 김여욱1626년(인조 4) 봄에 固城에 있는 始祖의 先塋이 훼손된 지가 오래되어 형제들이 좋은 날을 가려 살피러 가는 길에 함께하지 못하여 전송하면서 관련된 일을 기록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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同庚契帖序 / 기록자료>고도서 / 김여욱李由甫가 修契의 일을 편지로 보내와 서문을 청하여 지은 글이다. 수계의 의미는 이름이 美惡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같은가 같지 않은가에 있는 것이라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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敬書晩翠堂題扁後 / 기록자료>고도서 / 김여욱1604년(선조 37)에 지은 글이며, 晩翠堂은 부친이 마련하여 이름을 지은 곳으로 처음에는 주변에 조상이 심어놓은 백여 년이나 된 소나무 수십 그루가 있어서 이로써 이름을 정하려고 하였으나 ‘遲遲澗畔松, 鬱鬱含晩翠’라는 구절에서 그 의미를 취하여 ‘晩翠’라고 한 것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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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權同知(山起)龍鶴舞鼓詩後 / 기록자료>고도서 / 김여욱權山起가 뜻이 통하는 다른 세명의 벗과 함께 만나서 지은 四韻詩를 보고 이들의 만남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하면서 네 사람의 만남을 축하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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疏菊說 / 기록자료>고도서 / 김여욱1637년(인조 15) 가을에 지은 글이며, 楚의 屈原‧晉의 陶淵明‧宋의 韓琦 등이 국화를 군자의 꽃이라고 하여 좋아하였으니 나도 더불어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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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大樹將軍贊(幷序) / 기록자료>고도서 / 김여욱大樹將軍은 後漢 때의 將軍 馮異를 비유한 말이다. 겸손하여 諸將들이 功을 논할 때에는 항상 큰 나무 밑으로 피해가 있었으므로 사람들이 그렇게 호칭하고, 매사에 겸손하고 말없이 수고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 되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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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溪書堂上梁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여욱조선시대 李純之(1406~1465)와 함께 대표적인 천문학자로 알려진 金淡(1414~1464)을 배향한 丹溪書院의 전신 文溪書堂에 올린 上梁文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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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忘窩金令公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여욱金榮祖(1577~1648)에게 올린 祭文이다. 자는 孝仲이고, 호는 忘窩이며, 본관은 豐山이다. 父親은 大賢이다. 鶴峯 金誠一의 사위로 1601년(선조 34) 생원시에 합격하고, 1612년(광해군 4) 增廣文科에 급제하여 承文院正字를 거쳐 典籍으로 승진하였으나 광해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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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金仲亨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여욱金遇秋(1581~1642)에게 올린 祭文이다. 자는 仲亨이고, 호는 長笑이며, 본관은 咸昌이다. 金禹昌(1830~1906)의 『起菴集』에 「從先祖長笑公遺事」가 전한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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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伯氏盲巖公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여욱伯氏 成均生員 汝燁(1575~1640)에게 올린 祭文이다. 인물에 대한 내용은 「伯氏成均生員盲巖公家狀」에 간략하게 소개되어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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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 / 기록자료>고도서 / 김여욱伯氏 成均生員 汝燁에게 올린 祭文이다. 인물에 대한 내용은 「伯氏成均生員盲巖公家狀」에 간략하게 소개되어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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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亡姪坰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여욱같은 달에 세상을 떠난 조카 母子에 대해 어찌 이렇게 慘慟한 일이 있을 수가 있는지 슬픔을 금할 수가 없다고 하면서 조카 坰을 위해 지은 祭文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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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亡弟季晦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여욱동생인 汝爀이 1646년(인조 24) 10월에 세상을 떠나자 黑山 先塋에 장사지내고 크게 슬퍼하였으며, 함께 했던 추억들을 간략하게 서술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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伯氏成均生員盲巖公家狀 / 기록자료>고도서 / 김여욱伯氏 成均生員 汝燁(1575~1640)의 家狀이다. 자는 伯晦이고, 호는 盲巖이며, 본관은 延安이다. 1575년(선조 8) 12월 25일 榮川 斗巖里에서 태어났으며, 부친은 正郞을 지낸 蓋國이고 어머니는 禮安金氏 富民의 딸이다. 천성이 온화하였으며, 효성이 지극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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虛舟處士金公墓碣銘(幷序) / 기록자료>고도서 / 김여욱鶴沙 金應祖(1587~1667)가 지은 墓碣이다. 내용은 行狀과 비슷하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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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狀 / 기록자료>고도서 / 김여욱響山 李晩燾(1842~1910)가 撰한 行狀이다. 자세한 내용은 글 앞의 저자 소개에 나와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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遺事 / 기록자료>고도서 / 김여욱조카인 雲章이 기록한 遺事로 어려서부터 총명했다는 것, 효성이 지극했다는 것, 儒生들과 李爾瞻의 斬首를 청하는 疏를 올렸던 義憤, 水石을 좋아했던 것, 벗들과 우의가 두터웠던 것, 어려운 주위의 사람을 도왔던 것등 저자의 품성과 뛰어난 자질에 대한 내용을 몇 단락으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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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여욱조카인 雲章이 지은 祭文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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贈遺 / 기록자료>고도서 / 김여욱次寄素履窩(鶴沙金應祖),寄金叔晦(六友朴檜茂),素履窩題詠(竹塘安弘靖),敬次虛舟金丈(楡巖裵幼章),素履窩次韻(丹谷郭),素履窩次韻(訥軒徐聖䎛),素履窩次韻(伯氏盲巖汝燁),素履窩八詠(鶴沙金應祖),素履窩重修記(荷塘權斗寅),巖上敬愛錄(楡巖裵幼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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跋 / 기록자료>고도서 / 김여욱金輝轍이 쓴 跋文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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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우집 / 기록자료>고도서 / 이환호우집(湖憂集) 湖憂 李煥의 문집. 4卷 2冊. 木板本. 四周雙邊, 半郭 22.2×15.7㎝, 10行20字, 小字雙行, 內向2葉花紋魚尾,32.7×21.2㎝. 首卷에는 柳疇睦이 지은 序文과 목록이 있고, 卷1과 卷2는 詩이며, 卷3은 시와 銘‧戔‧記‧祝文‧祭文 등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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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포집 / 기록자료>고도서 / 이유용포집(龍浦集) 龍浦 李濰의 시문집. 4卷 2冊. 木活字本. 四周雙邊, 半郭22.9×15.8㎝, 有界, 10行20字, 註雙行, 內向2葉花紋魚尾,32.5×20.9㎝. 序文은 立齋 鄭宗魯(1738∼1816)가 지었다. 국립중앙도서관본 『용포선생문집』卷4 부록에는 行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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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봉집 / 기록자료>고도서 / 이래주봉집(柱峯集) 柱峯 李崍의 시문집. 2卷 1冊.木版本.周雙邊,半郭18.8×15.8㎝, 有界, 10行18字,內向2葉花紋魚尾,30.5×20.1㎝. 卷首에는 柳疇睦이 지은 序文과 目錄이 있고, 卷1에는 50여 수의 詩를 비롯하여 5수의 輓詞를 수록하고 있으며, 그밖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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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이당집 / 기록자료>고도서 / 박한회이당집(悔易堂集) 悔易堂 朴(王+旱)문집. 2卷 1冊. 木活字本.四周雙邊,半郭20.0 ×16.9㎝,有界,10行19字,上下葉花紋魚尾, 32.3×21.3㎝. 卷首에는 李晩煃가 쓴 序文과 目錄이 있고, 卷1에는「次家兄東川公璥傷春辭」와 詩 80여 首가 있으며, 그 밖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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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계집 / 기록자료>고도서 / 이승배修溪李升培의 문집. 10卷 5冊. 木板本. 四周雙邊, 半郭 20.4×15.8㎝, 有界, 10行20字, 內向2葉花紋魚尾, 30.0× 20.4㎝. 卷首에는 溪堂 柳疇睦이 지은 序文이 있다. 卷1과 卷2는 40여 수의 輓詞를 포함한 시가 수록되어 있고, 卷3은「屛山書院請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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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암집 / 기록자료>고도서 / 정지성문암집(文巖集) 文巖 丁志宬의 시문집. 3卷 1冊. 木板本. 四周雙邊, 半郭20.5×15.9㎝, 有界, 10行19字, 上內向2葉花紋魚尾, 32.0×21.5㎝. 卷首에는 金騏獻이 지은 序文과 目錄이 있고, 卷1에는 「明暗有去來賦」 1首와 30여 수의 詩를 비롯하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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賦 / 기록자료>고도서 / 정지성明暗有去來賦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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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 기록자료>고도서 / 정지성泮中和許進士松塢丈, 迎薰亭續遊, 過龍湫, 贈鄭上舍山水圖三絶,和李進士子會自京來訪韻, 汚溪君子塘立石後呼韻, 望闕社耆老會酬唱韻, 遊仙會錄仰呈續遊座中, 商山四皓圖, 除夜有懷,次朴丈觀燈韻,次金進士(㦊)韻, 次權僉知花字韻, 約諸友往雲谷馬上口占, 戲贈松塢丈一絶, 次山谷盡屛韻七絶,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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闕里洞社重修記 15 / 기록자료>고도서 / 정지성闕里洞社를 重修하고 지은 記文이다. 龜城의 서쪽이 泗水이고 사수의 북쪽에 闕里가 있으며, 崇禎 연간에 마을의 여러 父老들이 함께 모여 契를 결성하고 이곳에서 강회를 열었다고 하였다. 주된 담론의 대상은 농사와 상례에 대한 것 등으로 춘추로 모임을 가졌으며, 집안의 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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泗溪書院興敎堂重修上梁時小識 17 / 기록자료>고도서 / 정지성泗溪書院 興敎堂을 重修하고 上梁할 때에 지은 小識이다. 처음 南澗과 泗溪 두 지역의 人士들이 도모하고 힘을 합하여 지었으나 두 지역의 의견이 矛盾되어 다시 훼손되었으며, 이제 사계지역 여러 丈老들의 격려로 중수하게 되었다고 하면서 자세한 顚末은 處士 羅公의 重建 小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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從兄(志安)葬事時祭文 19 / 기록자료>고도서 / 정지성從兄 丁志安의 葬事 때 지은 祭文이다. 남아있는 사촌형제 4명 가운데 長者로 많은 의지가 되었는데, 이제 그 평소 언행을 접할 수가 없으니 슬픔이 매우 크다고 하면서 형이 지녔던 仁厚한 덕이 후손들에게 전해지기를 바란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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從兄(志靖)葬事時祭文 20 / 기록자료>고도서 / 정지성從兄 丁志靖의 葬事 때 지은 祭文이다. 생평이나 관력에 대한 자세한 소개는 없으며, 재주는 있었으나 命을 타고나지 못했다고 하면서 어려웠던 삶에 대하여 간략하게 언급하고 있다. 특히, 50세가 되어 비로소 두 아들을 얻기는 했으나 어린 두 아들을 두고 불행히도 부인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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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祖考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府君遺事 22 / 기록자료>고도서 / 정지성1790년(정조 14)에 쓴 高祖 丁彦璛(1600~1693)의 遺事이다. 자는 君瑞이고, 호는 壽考軒이며, 본관은 羅州이다. 高祖는 玉亨이고, 증조는 應斗이며, 祖父는 胤福이고, 부친은 好約이다. 생부는 好恭이다. 1600년(선조 33) 정월 10일 京城에서 태어났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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漆室空談 1 / 기록자료>고도서 / 정지성당시 국가의 경제와 민생에 대한 다양한 내용을 客의 질문에 主人이 답하는 형식으로 기록된 장편의 글로서 모두 마흔 가지에 이르는 질문과 답변으로 구성되어 있다. (1) 비록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才品이 古人에 미치지 못하기는 하지만, 세상에 조금의 도움이라도 될 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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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狀 1 / 기록자료>고도서 / 정지성金騏獻이 撰한 저자의 行狀으로 冑孫인 大哲이 遺事를 가져와 지었다고 하였다. 자세한 내용은 글 앞의 저자 소개에 나와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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墓碣銘 5 / 기록자료>고도서 / 정지성李晩寅이 撰한 저자의 墓碣銘으로 行狀과 유사한 내용이며, 그 덕이 깊고 학문이 뛰어나다고 하였다. 특히, 저자가 평생 간직했던 생각들을 그대로 반영한 「漆室空談」은 국가의 경제와 민생을 위하여 당시의 弊端을 救하고자 圖謨한 것으로 높이 평가받을 만한 성과라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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挽 7 / 기록자료>고도서 / 정지성趙宜陽(二首), 宋鼎欽(三首), 金若鍊(三首), 金象鍊, 黃龍漢, 外甥黃喆漢(三首), 堂姪載極(四首) 등이 쓴 輓詞가 실려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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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文 10 / 기록자료>고도서 / 정지성泗溪講所儒生柳宜潤金直鍊朴道中, 李宗壽, 金樂容, 外甥宋相天, 從姪熙柤 등이 쓴 제문이 실려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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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암집 / 기록자료>고도서 / 홍언충寓菴 洪彦忠의 문집. 4卷 2冊. 1720. 木板本. 四周單邊, 半郭 17.5×16.9㎝, 有界, 10行19字, 註雙行, 內向2葉花紋魚尾, 30.7×21.2㎝. 시문은 딸 홍씨가 가장해둔 것을 외손서인 金宇宏(1524~1590)이 1582년(선조 15)에 처음 간행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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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암집 / 기록자료>고도서 / 정상리制庵 鄭象履의 시문집. 8卷 4冊. 木板本. 四周雙邊, 半郭 19.6×15.4㎝, 有界, 10行20字, 內向2葉花紋魚尾, 上下白口, 31.1 ×20.1㎝. 1869년(고종 6) 손자 善愚가 편찬하고 1873년 재종질 民秉 등이 간행하였다. 卷首에 1869년에 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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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죽헌집 / 기록자료>고도서 / 김영진매죽헌집(梅竹軒集) 梅竹軒 金英震의 시문집. 4卷 2冊. 1935. 木板本. 四周雙邊, 半郭 15.5×18㎝, 有界, 10行 18字, 註雙行, 內向2葉花紋魚尾, 30.6× 20.9㎝. 1856년(철종 7) 저자의 6세손인 金在默이 편집하고, 1875년(고종 12)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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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집 / 기록자료>고도서 / 조우인頤齋 曺友仁의 문집. 2卷2冊. 木活字本. 四周單邊, 半郭 21.0× 17.5㎝, 10行21字, 註雙行, 上下2葉花紋魚尾, 32.0×21.8㎝. 본집은 2권 2책으로 되어 있으며, 서문과 발문이 없어서 문집의 편찬 간행 경위를 자세히 알 수는 없다. 문집의 맨 앞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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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대집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일淸臺 權相一의 시문집. 18卷 9冊(年譜 2卷 포함). 木板本. 上下單邊, 半郭 1.3×15.9㎝, 有界, 10行21字, 向2葉花紋魚尾, 0.3 ×20.8㎝. 1797년(정조 21) 제자 趙錫喆과 증손 遵이 편집·간행하였다. 권두에 鄭宗魯의 서문, 권말에 조석철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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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담집 / 기록자료>고도서 / 고유秋潭高裕의 문집. 4卷 2冊. 1895. 木板本. 四周雙邊, 半郭 19.2×15.8㎝, 有界, 半葉 10行18字, 內向2葉花紋魚尾, 29.5 ×20.8㎝. 종가의 長老들이 1888년(고종 25) 봄에 문집 간행을 논의한 후, 후손 중에 高浚相‧高世林에게 그 일을 주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