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388001
박세병 벼슬이 올라감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12월 20일. 청송 부사(靑松府使) 박세병(朴世秉)이 포장(褒將)하여 승서(陞敍)하였다.출처 : 유교넷 -
388002
휼전을 지급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12월 30일. 청송(靑松), 고성(固城), 강진(康津), 삼척(三陟) 등 고을의 표호(漂戶)와 퇴호(頹戶) 및 물에 빠져 죽은 사람들에게 휼전(恤典)을 지급하였다.출처 : 유교넷 -
388003
지방 제도 개정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5월 26일. 전국을 23부의 행정 구역으로 나누는데 청송군(靑松郡)은 안동부(安東府)에 속한다.출처 : 유교넷 -
388004
청송군수 경상북도선유사 임명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양5월 29일. 영남의 안동(安東) 등지에 추악한 백성들이 집결하여 의리를 제창한다는 핑계로 무기를 휴대하였는데 창궐한 기세가 성했다. 청송 군수(靑松郡守) 안종덕(安鐘悳)을 경상북도 선유사(慶尙北道宣諭使)로 차하(差下)하여 해산시키게 하였다.출처 : 유교넷 -
388005
현의 복구 요청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4월 6일. 경상도 영해(寧海)의 속현인 영양현(英陽縣)의 백성 조암(趙顉) 등이 옛 현을 복구시켜 줄 것을 요청.출처 : 유교넷 -
388006
다시 복구 상소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8월 6일. 영해(寧海)의 속읍인 영양현(英陽縣)에서 조암(趙顉) 등이 다시 상소하여 영양현을 예전대로 설치해 영해와 구별하여 민폐를 제거해 줄 것을 청하였다.출처 : 유교넷 -
388007
옛 현 설치를 청함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9월 19일. 영해(寧海) 속현(屬縣)인 영양(英陽)의 유학(幼學) 조책(趙頙) 등이 상소하여 옛 현(縣)을 다시 설치하기를 청했다.출처 : 유교넷 -
388008
영양에 현을 다시 설치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9월 23일. 영양(英陽)의 일을 논의하여 다시 설치하기로 결정하였다.출처 : 유교넷 -
388009
영양현을 진보현에 합침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4월 9일. 경상도 영양현을 진보현에 합치게 하다.출처 : 유교넷 -
388010
영양현 회복설치 상소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7월 17일. 영해부(寧海府)에 소속된 고을인 영양(英陽)의 유생(儒生) 남시직(南時稷) 등 1백여 인이 상소하여 영양현(英陽縣)을 회복시켜 설치하도록 청하자 영양현을 회복시켜 설치하도록 허락하였다.출처 : 유교넷 -
388011
모리를 꾀한 이의 정죄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7월 18일. 대동미를 봉납하는 데 모리를 꾀한 김숙과 이의는 나문(拿問)하여 죄를 정하고, 서얼인 이씨 성가진 자와 영양(英陽)의 색리는 유사(有司)로 하여금 수금(囚禁)하여 종중 과죄(從重科罪)하게 하였다.출처 : 유교넷 -
388012
영양 현감 박필문 사핵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7월 14일. 남진명(南晋明)의 정장(呈狀)에 노여움을 품고 아전을 보내어 사당 문을 봉쇄(封鎖)한 영양(英陽) 현감(縣監) 박필문(朴弼文)을 사핵(査覈)하고 계문(啓聞)하여 처리했다.출처 : 유교넷 -
388013
진휼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6월 1일. 영남에서 진휼을 베풀었는데, 영양(英陽)·안동(安東)·청송(靑松) 등의 고을은 급하게 구제하였다.출처 : 유교넷 -
388014
전세 상납 규례 변경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12월 30일. 전세의 상납이 산군(山郡)과 영(嶺) 밑 고을을 등급을 나누어 구별하는데, 산군의 예를 따르고 있어 영양 백성들이 지탱하기 어렵다. 영 밑 고을과 접해 있고 목화도 토질에 적합한 곳이 아니니, 영 밑 고을의 예에 따라 시행하게 하였다.출처 : 유교넷 -
388015
구휼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3월 30일. 영양현(英陽縣)의 민가 59호와 창고 48칸이 불에 타버렸다. 의당 베풀어 주어야 할 규정 이외에 각별히 진휼해 주고 재목도 베어 주어 속히 자리를 잡아 살아갈 수 있도록 하였다.출처 : 유교넷 -
388016
홍탁연 방축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2월 6일. 대왕 대비가 제도(諸道)에 찬배(竄配)한 죄인의 방미방(放未放) 성책(成冊)을 판하(判下)하고 영양현(英陽縣)에 정배(定配)한 홍탁연(洪卓然)을 방축 향리(放逐鄕里)하였다.출처 : 유교넷 -
388017
이존수의 청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6월 18일. 추악한 종류가 청송(靑松)·영양(英陽)·진보(眞寶)의 심산 벽촌에 숨어 들어와 저절로 서로 전하여 익히게 되어서 마을 전체가 그릇되어 버려, 경상감사 이존수(李存秀)가 조사하길 청했다.출처 : 유교넷 -
388018
다스리지 못한 정상 처벌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10월 3일. 영양 전 현감(英陽前縣監) 박이현(朴彛鉉)의 다스리지 못한 정상을 논하니, 경중에 따라 처벌하게 하였다.출처 : 유교넷 -
388019
다스리지 못한 상황 처벌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윤4월 6일. 경상좌도 암행 어사 조연춘(趙然春)이 서달(書達)하여 영양(英陽) 전 현감 권희(權曦)의 잘 다스리지 못한 상황을 논하여 경중(輕重)을 나누어 죄상을 감안해서 조처하도록 하였다.출처 : 유교넷 -
388020
죄를 주다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8월 27일. 어사(御史)의 서계(書啓)로, 전 영양 현감(英陽縣監) 이준영(李俊英) 등을 차등있게 죄주었다.출처 : 유교넷 -
388021
관리 승서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7월 18일. 경상도 암행어사(慶尙道暗行御史) 박선수(朴瑄壽)가 올린 서계(書啓)에 영양 전 현감(英陽前縣監) 윤필구(尹弼求) 등은 모두 표창으로 승서(陞敍)하도록 하였다.출처 : 유교넷 -
388022
화재에 대한 구휼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3월 27일. 영해부(寧海府)의 도적들이 영양현(英陽縣)의 민가에 불을 질러 백성들에게 거처할 곳을 주게 했다.출처 : 유교넷 -
388023
공을 세운 서중보 승서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6월 22일. 영해(寧海) 적변(賊變)이 일어났을 때 영양 현감(英陽縣監) 서중보(徐中輔)는 서둘러 포를 설치하여 역도들을 거의 소탕하여 승서(陞敍)하였다.출처 : 유교넷 -
388024
포군 설치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9월 7일. 삼군부(三軍府)에서 영양현(英陽縣)에 별포수 30명을 설치하였다.출처 : 유교넷 -
388025
이병규에게 죄를 주다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5월 29일. 경상좌도 암행어사(慶尙左道暗行御史) 이만직(李萬稙)의 서계(書啓)와 관련하여 영양 현감(英陽縣監) 이병규(李秉奎)에게 죄를 주었다.출처 : 유교넷 -
388026
죄인 정배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6월 25일. 의금부(義禁府)에서 김세기(金世基)를 영양현(英陽縣)에 정배하였다.출처 : 유교넷 -
388027
지방제도 개정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5월 26일. 안동부(安東府)에서 영양군(英陽郡)을 관할.출처 : 유교넷 -
388028
영양군수 처벌 상소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양9월 3일. 전 의관(前醫官) 이종직(李宗稙)이 금산군(金山郡)의 선산(先山)에서 석재(石材)를 캐도록 허락한 당시 철도원(鐵道院) 기사였던 현임 영양 군수(英陽郡守) 이범철(李範喆)을 처벌하도록 상소.출처 : 유교넷 -
388029
죄인의 치죄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9월 3일. 간통과 살인에 의해 청송(靑松) 사람 양녀(良女) 가이(加伊)는 한 등(等)을 감하고 사노(私奴) 부금(夫金)은 참형을 처했다.출처 : 유교넷 -
388030
지진이 발생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4월 18일. 경상도 청송(靑松)·함양(咸陽)·진주(晉州) 등 고을에 지진(地震)이 일었다.출처 : 유교넷 -
388031
죄수에게 옷과 갓 하사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5월 13일. 청송(靑松)의 죄수 왜인 이라시라(而羅時羅)에게 옷과 갓을 하사하였다.출처 : 유교넷 -
388032
지진 발생. 해괴제 지냄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9월 30일. 경상도(慶尙道) 의성(義城)·청송(靑松)·안동(安東) 등지에 지진(地震)하였는데, 향축(香祝)을 내리어 해괴제(解怪祭)를 행하였다.출처 : 유교넷 -
388033
지진이 발생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6월 10일. 경상도(慶尙道)의 청송(靑松)에 지진(地震)이 있었다. 예조(禮曹)에서 청하길, 향(香)과 축문(祝文)을 내려 그 도(道)의 도사(都事)로 하여금 해괴제(解怪祭)를 지내게 했다.출처 : 유교넷 -
388034
효자 정문을 세움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1월 29일. 경상도 관찰사 김응기(金應箕)가 치계(馳啓)하기를, 청송(靑松)에 거주하는 민세정(閔世貞)은 효행이 뛰어나 정문(旌門)을 세우고 호역(戶役)을 면제하게 하였다.출처 : 유교넷 -
388035
지진이 발생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3월 19일. 경상도 청송부(靑松府) 진보현(眞寶縣)에 지진이 있었다.출처 : 유교넷 -
388036
지진이 발생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4월 23일. 경상도 청송부(靑松府) 진보현(眞寶縣)에 지진이 있었다.출처 : 유교넷 -
388037
지진이 발생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3월 15일. 경상도 청송(靑松)·영해(寧海)·흥해(興海)·영덕(盈德)·청하(淸河)·진보(眞寶)에 지진이 있었다.출처 : 유교넷 -
388038
자연 재해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7월 30일. 큰 비바람이 불어서 큰 나무가 뽑혀 쓰러지고 지붕의 기와가 모두 날아갔으며, 시내가 범람하고 곡식이 모두 상하고 산이 무너지고 집이 쓰러져 사람과 가축이 많이 압사하였으며 까마귀까지도 죽은 것이 있었다.출처 : 유교넷 -
388039
우레(천둥)가 침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12월 3일. 경상도 청송(靑松)·의흥(義興)·경산(慶山) 등 고을에 우레(천둥)가 쳤다.출처 : 유교넷 -
388040
지진이 발생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11월 19일. 경상도(慶尙道)의 청송(靑松)·진보(鎭寶)·예안(禮安) 등 고을에 지진(地震)이 있었다.출처 : 유교넷 -
388041
우박이 내림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3월 21일. 경상도의 함창(咸昌)·진보(眞寶)·청송(靑松)·풍기(豊基)·상주(尙州)·거창(居昌)에 우박이 내렸다.출처 : 유교넷 -
388042
우박이 내림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윤4월 4일. 경상도의 청송(靑松)·풍기(豊基)·영천(榮川)·의성(義城)에 우박이 내렸다.출처 : 유교넷 -
388043
이계남에게 복호하다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11월 30일. 경상도 청송부(靑松府)의 정병(正兵) 이계남(李繼男)은 형 계동(繼仝)이 간질을 앓는데 손가락을 끊어 약에 타서 먹이고 재발하니 다시 손가락을 끊었는데, 이 일이 임금에게 알려져 물건을 상주고 복호(復戶)하였다.출처 : 유교넷 -
388044
눈이 내림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3월 7일. 경상도의 함양(咸陽)·예천(醴泉)·문경(聞慶)·장기(長?)·함창(咸昌)·청하(淸河)·청송(靑松) 등 고을에 눈이 내렸다.출처 : 유교넷 -
388045
눈이 내림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3월 8일. 경상도 경주·함양·청하·청송 등 고을에 눈이 내렸다.출처 : 유교넷 -
388046
지진이 발생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4월 21일. 경상도 의흥(義興)·청송(靑松)에 지진이 일어났다.출처 : 유교넷 -
388047
역질로 인한 사망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7월 18일. 경상도 청송(靑松)·비안(比安)에 역질(疫疾)로 사망한 자가 총 60여명이었다.출처 : 유교넷 -
388048
우박이 내림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4월 23일. 경상도 청송(靑松)·풍기(豊基)·군위(軍威)·함안(咸安)·흥해(興海)에 우박이 내렸다.출처 : 유교넷 -
388049
수재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7월 16일. 경상 감사 임호신(任虎臣)이 수재에 대해 보고하길, 청송(靑松)에 물이 불어나 인가가 파묻히고 사람이 죽었다.출처 : 유교넷 -
388050
왜에게 침범당하지 않음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6월 5일. 청송(靑松)·영해(寧海) 등의 부는 모두 적이 아직 지경에 들어오지 않았다.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