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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388151

    오일도생가 / 유교문화>유적 / 미상
    항일시인의 정신이 깃든 낙안오씨 고택 영양읍 감천리에 위치한 오일도 생가는 항일시인이자 애국지사인 일도(一島) 오희병(吳熙秉, 1901~1946)이 태어난 곳이다. 영양읍으로 들어가는 31번 국도변에 오일도 시비가 서있고, 마을 앞 반변천 절벽에 천연기념물인 측백
    출처 : 유교넷
  • 388152

    오극성고택 / 유교문화>유적 / 미상
    임진왜란의 충신 함양오씨의 고택 오극성 고택은 선무원종공신 3등의 공훈을 인정받은 문월당(問月堂) 오극성(吳克成, 1559~1617)이 낙향하여 건립한 가옥이다. 현손인 오학지(吳學智)가 1760년경에 개수한 이래 후손들이 대를 이어 살고 있는데 2006년에
    출처 : 유교넷
  • 388153

    영양 삼구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
    영양 최고(最古)의 정자 삼구정은 용계(龍溪) 오흡(吳潝,1576~1641)이 나라가 삼전도의 굴욕을 당하자 고향인 대천리로 돌아와 건립한 정자이다. 정자는 거북형상을 한 세 바위 위에 서있다. 처음에는 모옥(茅屋)이었으나 화재로 소실되어 건너편으로 자리를 옮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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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8154

    여남강당 / 유교문화>유적 / 미상
    영양 남씨의 발원지 여남강당은 영양남씨 시조인 영의공(英毅公) 남민(南敏)을 향사하기 위해 건립한 향현사(鄕賢祠)로 시작했다. 그 후 1830년(순조 30)년에 여남서원으로 승격되었다가 1871년(고종 8)에 대원군의 명으로 훼철되어, 현재는 강당과 비각만 남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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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8155

    영양 하담고택 / 유교문화>유적 / 미상
    회나무와 함께 살아가는 오래된 집 하담고택은 조시벽(趙是璧, 1670~1753)이 1700년대에 건립한 한양조씨 사월파 문중의 건물이다. 고택의 앞뜰에는 조시벽의 아들이 심은 회나무가 있다. 현재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41호로 지정하여 보존하고 있다. 영양읍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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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8156

    영양 주강정 및 사고종택 / 유교문화>유적 / 미상
    사두들로 분파해 나간 사고파(沙皐派) 후손의 유적지 주강정과 사고 종택은 한양 조씨 사월 조임의 넷째 아들인 사고 조정옥(趙廷玉)이 건립한 상류 주택과 그곳에 별도로 조시광(趙是光)이 만년에 거처하던 주강정을 담은 공간이다. 이곳은 영양읍에서 하원리 사월파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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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8157

    월담헌 및 사월종택 / 유교문화>유적 / 미상
    달빛 못가에 터를 잡은 사월공파 종택 월담헌은 사월(沙月) 조임(趙任, 1573~1644)이 1602년(선조 35)에 반변천의 명승지 중 하나인 옥선대 근처에 세운 살림집이다. 사월종택은 임란 등의 전란에도 병화를 입지 않아 영양에서 제일가는 명지로 꼽히고,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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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8158

    영양 숙운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
    도연명을 사모하며 시를 읊던 곳 숙운정은 사월(沙月) 조임(趙任, 1573~1644)이 1621년(광해군 13)에 건립한 정자로, 도연명의 ‘흰 구름이 처마 끝에 잠든다’[宿雲簷端]라는 시구에서 이름을 취하였다. 원래는 월담헌 동편 선유굴 사이에 있었으나 월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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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8159

    영양 사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
    효성(孝誠)과 창선(彰善)으로 세운 유적지 사정은 반변천이 흘러내리는 옛 산성 부근에 산중턱에 자리한다. 자선 사업가였던 대은(大隱) 권영성(權永成, 1881~1959)이 어버이를 추모하는 뜻에서 1935년에 건립한 정자이다. 정면 3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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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8160

    연소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
    청향(淸香)이 머물러 있는 풍류 공간 연소정은 낙안오씨 영양 입향조인 오시준(吳時俊)이 1584년(선조 17)에 칠원현감에 부임했다가 임기를 마치고 만년을 보내기 위해 건립한 정자이다. 정자는 ‘소 위에 뜬 연꽃[蓮沼]’이라는 이름처럼 아름다운 풍광을 끼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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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8161

    문월당 / 유교문화>유적 / 미상
    술잔을 들어 달에게 물으며 나라를 걱정하던 곳 문월당은 1601년에 일월산 남쪽 기슭 옥선대 아래로 물러난 오극성(吳克成)이 지은 정자였다. 그러나 화재로 인해 소실되고, 4백여 년 뒤인 1969년에 영양읍 대천1리에 현재의 모습으로 중건하였다. ‘문월’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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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8162

    송원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
    소나무처럼 늘 푸른 절개를 지키며 강학하던 곳 송원정은 1948년에 진암(進庵) 오승봉(吳承鳳, 1888~1954)이 건립한 정자로, 만년에 학문을 강론하고 시를 읊조리며 유유자적하게 노닐었던 교육과 풍류의 공간이다. 건물은 고월마을 뒤쪽의 산자락에 위치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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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8163

    괴정재 / 유교문화>유적 / 미상
    괴나무 그늘이 만들어낸 자연스러운 정자 괴정재는 김경진(金磬振)이 만년에 터전을 잡아 은거하던 곳이다. 그는 샘 옆에다 손수 작은 괴나무를 심었는데, 이 나무가 점차 자라 그늘을 지워 뜰을 덮자, 초당(草堂)을 짓고 ‘괴정(槐亭)’이라고 하였다. 정면 2칸, 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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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8164

    구산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
    시원한 산수 속에서 유유자적하는 정자 구산정은 구산(九山) 김수근(金守瑾)이 은거하며 학문에 정진하던 곳으로, 후손들이 선생을 추모하여 중건한 것이다. 구산정이 있는 구매리는 푸른 산과 맑은 물의 상쾌함이 한데 어우러진 아름다운 곳으로, 호수와 산의 기상을 소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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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8165

    산옹초려 / 유교문화>유적 / 미상
    산 늙은이가 소요유하며 즐겼던 초가집 산옹초려는 산옹(山翁) 김상필(金商弼)이 은거하며 학문에 힘쓰던 곳이다. 정면 2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아담한 건물이다. 주위에는 방형의 토석담장을 둘렀으며, 우측 담장 사이에는 사주 문을 세워 정자로 출입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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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8166

    낙안오씨종택(감호헌) / 유교문화>유적 / 미상
    거울 같은 호수와 오래된 측백나무가 어우러진 곳 낙안오씨종택은 낙안(樂安)인 오시준(吳時俊)의 종택으로, 현재는 오시준의 둘째 아들인 오수눌(吳受訥)의 후손들이 거주하고 있다. ㄷ자형 정침과 일자형 고방채가 튼 ㅁ자형의 배치를 이루고 있고, 종택의 뒤쪽 동북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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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8167

    장렬공 사당 / 유교문화>유적 / 미상
    의병장 정담의 충절을 기리는 사당 장렬공사당은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웅치(雄峙) 싸움에서 순절한 정담(鄭湛, 1548~1592)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는 사당이다. 사당으로 들어가는 골목 어귀에는 장렬공사당임을 알리는 큰 석비가 세워져 있으며, 그 밑에 대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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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8168

    영양 월잠종택 / 유교문화>유적 / 미상
    월잠종가 사람들의 오래된 생활터전 월잠종택은 월잠(月岑) 정유석(鄭惟碩, 1634~1714)의 주손댁(胄孫宅)이다. 일월면소재지에서 918번 지방도로를 타고 조금 지나면 왼쪽으로 청기면으로 가는 911번 지방도로가 나온다. 그 갈림길 부근의 가곡마을에 몇 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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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8169

    영양 가곡동 월잠고택 / 유교문화>유적 / 미상
    월잠종택 후손들의 질박한 삶이 어린 곳 월잠고택은 월잠(月岑) 정유석(鄭惟碩, 1634~1714)의 5대손인 정상추(鄭象樞, 1759~1834)가 건축한 건물이다. 영양군 일월면소재지에서 918번 지방도로를 타고 조금 지나면 왼쪽으로 청기면으로 가는 911번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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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8170

    영양 가천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
    신비로운 경치가 뛰어난 정자 가천(佳川) 김찬구(金贊九, 1732~1806)가 만년에 독서하며 효제(孝悌)를 실천하던 정자이다. 정자는 1794년(정조18)에 세워졌으나, 세월이 흘러 퇴락하고 기울게 된 것을 1907년 그의 5대손 김낙현(金洛顯)과 김준현(金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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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8171

    망운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
    구름처럼 자유롭게 삶을 즐기는 정자 망운정은 조홍복(趙弘復, 1773~1841)을 기리기 위해 지은 정자이다. 이 건물은 영양읍에서 북쪽으로 2km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일월면 곡강리라는 마을에 위치하고 있다. 정자 앞으로 산이 둘러져 있고 그 아래 몇 집의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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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8172

    영양향교 / 유교문화>유적 / 미상
    영양지역에 세워진 국립 명문학교 영양향교는 군청 소재지에서 북쪽으로 4km 정도 떨어진 영양군 일월면 도계리에 위치한다. 입구에 표석이 서 있다. 영양향교는 도계리의 북동쪽에서 탕건봉을 의지하고 장군들을 바라보는 완만한 경사지에 자리 잡고 있다. 향교의 왼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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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8173

    명고서원 / 유교문화>유적 / 미상
    충절(忠節)이 깃든 서원, 명고서원(明皐書院)  명고서원은 임진왜란 때 공신 장렬공(莊烈公) 정담(鄭湛, 1548~1592)과 황간(黃澗) 현감을 지낸 문월당(問月堂) 오극성(吳克成, 1559~1617)의 위패를 모시는 서원이다. 1871(고종 8)에 서원 철거령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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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8174

    취은당 / 유교문화>유적 / 미상
    술로 은거하던 은자의 집 취은당은 오삼달(吳三達, 1667~1744)이 만년에 지은 정자로, 그는 늙어서 세상에 쓰이지 않자, 이곳 일월면 도곡리로 돌아와 취은당을 짓고 술과 시로써 세월을 보냈다. 취은당이 있는 일월면 도곡리는 월자봉(月字峰)으로 올라가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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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8175

    신암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
    홀로 있을 때에도 스스로 수양하는 도량처 신암정은 신암(愼庵) 남손(南蓀, 1415~1488)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정자이다.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쇠락한 것을 1947년에 신암공의 16세손 남장흠(南璋欽)이 신암정을 중수하였으며, 1996년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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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8176

    영양남씨 신암공파종택 / 유교문화>유적 / 미상
    제향 공간과 생활 공간이 한데 어우러진 옛집 영양남씨 신암공파종택은 영양 남씨 입향조인 신암(愼庵) 남손(南蓀, 1415~1488)을 파조(派祖)로 하는 후손들이 종택으로 사용하고 있는 건물이다. 종택은 원래 18세기 중반 안동권씨(安東權氏) 문중에서 건립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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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8177

    침천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
    시원한 계곡 물소리를 베고 눕는 곳 침천정은 조언유(趙彦儒, 1767~1847)가 학문과 자연을 즐기며 여생을 보내기 위해 지은 조선후기의 정자이다. 정면 3칸 측면 1칸에 마루를 두고 좌우에 온돌방을 둔 중당협실형이며, 방과 마루 앞에는 반 칸 폭의 툇마루를 놓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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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8178

    만곡정사 / 유교문화>유적 / 미상
    조술도의 학문과 인품을 기리는 배움터 만곡정사는 조선 정조 때의 유학자 조술도(趙述道, 1729~1803)가 학문을 가르치기 위해 1790년(정조 14) 영양 원당리(元塘里) 선유굴(仙遊窟) 위에 건립한 건물이다. 그 후 조술도의 문하생들이 건물을 주곡리로 이건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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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8179

    학파헌 / 유교문화>유적 / 미상
    주실마을에 이어지는 한양조씨 후손들의 터전 학파헌은 조운도(趙運道, 1718~1796)의 손자인 조성복(趙星復, 1772~1830)이 세운 정자이다. 원래 일월면 섬촌리에 있던 정자를 현재 주실마을로 옮겼다. 영양에서 31번 국도를 따라 약 4km 정도 가면 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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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8180

    주곡동 옥천종택 및 초당 / 유교문화>유적 / 미상
    한양조씨 집안의 유구한 역사를 담은 종가 옥천종택은 한양조씨 조덕린(趙德鄰, 1658~1737)의 고택이다. 살림채인 정침(正寢)과 글을 읽는 별당인 초당(草堂), 그리고 가묘(家廟)인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건물은 일월산에서 내려온 두 번째 봉우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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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8181

    창주정사 / 유교문화>유적 / 미상
    영남의 참 선비 조덕린이 수양하던 공간 창주정사는 옥천(玉川) 조덕린(趙德鄰, 1658~1737)의 정사이다. 건물 주위에는 방형의 토석담장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전면에는 맞배지붕의 사주문(四柱門)을 세워 정사로 출입할 수 있게 하였다. 창주정사는 정면 4칸, 측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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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8182

    조지훈생가(호은종택) / 유교문화>유적 / 미상
    한국 현대문학의 거장 조지훈의 생가 조지훈생가는 청록파 시인의 한사람으로 근대의 대표적 시인이자 국문학자였던 지훈(芝薰) 조동탁(趙東卓, 1920~1968)이 태어난 곳이다. 이 건물은 호은종택(壺隱宗宅)으로도 불리는데, 한양조씨 주실 입향조인 호은(壺隱) 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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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8183

    수월헌 / 유교문화>유적 / 미상
    수월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는 정자 수월헌은 수월(水月) 조검(趙儉, 1570~1644)의 덕행(德行)과 학문을 기리기 위하여 영남북부 유림(儒林)들이 뜻을 모아 지은 정자이다. 수월헌은 일월면 소재지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다. 수월헌을 중심으로 좌우로 영양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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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8184

    한양조씨 참판공종택(사의정사) / 유교문화>유적 / 미상
    한양조씨 영양 입향조의 종택 참판공종택은 한양조씨의 영양 입향조(入鄕祖)인 조원(趙源)의 종택이다. 일월면 소재지에서 31번 국도를 타고 수비면 방향으로 4km 정도 달리면 영향향교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왼쪽으로 들어가면 영양향교(英陽鄕校)의 육영루(育英樓)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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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8185

    방도헌 / 유교문화>유적 / 미상
    배를 띄워 유유자적하게 노니는 쉼터 방도헌은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에 추증된 남예휴(南禮休)를 기리기 위하여 장손인 남기형(南基衡)이 1925년에 지은 건물이다. 이 건물은 정면4칸, 측면2칸으로 팔작지붕 형태를 지니고 있으며, 마을 앞에 놓인 장군천을 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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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8186

    회곡고택 / 유교문화>유적 / 미상
    기포리에 위치한 회곡의 옛집 회곡고택(晦谷古宅)은 큰 형인 권춘란에게 맏아들을 입양한 동생인 권춘계(權春桂)가 임진왜란 직전에 지은 것으로 짐작되며, 뒤에 권춘란이 만년에 살던 곳이다. 이 건물은 건물로 들어오는 길에 있는 사당과 정침(正寢)으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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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8187

    경산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
    청기천 기슭에 지어진 소박한 정자 경산정은 권용보(權龍普)가 1896년(건양1)에 건립한 정자이다. 이 건물은 기포마을 초입에 있는 청기천 절벽위에 자리잡고 있다. 마을초입에 다리를 건너자마자 왼편에 권오봉(權五鳳) 선생의 유적영모비(遺蹟永慕碑)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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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8188

    벽산생가 및 검산성 / 유교문화>유적 / 미상
    경북 지역 항일투쟁의 원천지 벽산생가는 애국지사(愛國志士) 벽산(碧山) 김도현(金道鉉, 1852~1914)이 나고 자란 곳이고, 검산성(劍山城)은 그가 사재를 털어서 항일투쟁을 위해 구축한 산성이다. 벽산생가는 1700년경에 지어졌으며, 정면 4칸, 측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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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8189

    청계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
    맑은 계곡물으로 마음을 씻어내는 정자 우재(愚齋) 오익(吳翼, 1591~1671)이 건립한 정자로, 그는 이곳에서 표은(瓢隱) 김시온(金是榲, 1598~1669)과 함께 고금을 토론하고 시를 지으며 생활하였다. 청계정은 청기리 마을로 들어서는 도로 옆에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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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8190

    영양 취수당 / 유교문화>유적 / 미상
    술에 의지하여 세상의 시름을 잊은 곳 취수당은 오연(吳演, 1598~1669)이 지은 정자로, 그는 남한산성에서 치욕적인 조약이 맺어지자 청기리로 들어와 취수당을 짓고 술로써 청나라에 대한 적개심을 달랬다. 청기리 마을 앞에는 기름진 논밭들이 즐비하고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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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8191

    숭조고택 / 유교문화>유적 / 미상
    조상을 숭상하는 영양 선비들의 효성이 깃든 곳 숭조고택은 함양오씨 제16대손인 오행대(吳行大, 1738~1770)가 터전을 잡았고, 그의 부인인 반남박씨(潘南朴氏, 1736~1806)가 1760~70년대에 걸쳐 건립한 고택으로, 18세손 오정교(1825~18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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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8192

    영양 돈간재 및 주사 / 유교문화>유적 / 미상
    돈간재는 김시온(金是榲)의 증조부인 김진(金璡, 1500~1580)이 본래 청기에 살면서 이 건물을 지었다. 이후 증조부가 세상을 떠나자, 김시온이 증조부가 살던 이 건물을 중수하여 살다가 돈간재(敦艮齋)라고 편액을 바꾸어 돈간재(敦艮齋)라고 불리게 되었다. 사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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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8193

    초계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
    맑은 계곡물과 푸른 파초가 어우러진 곳 초계정은 구계거사(九溪居士) 김상진(金尙振, 1864~1936)이 은거하여 책을 읽던 곳이다. 김상진은 파초 한 줌을 화분에 심고서 구계(九溪)의 시내 물을 주며 매우 사랑하였다. 때문에 구계를 ‘초계(蕉溪)’라고 부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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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8194

    한후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
    송백(松柏)같은 선비의 절개를 기리는 곳 한후정은 선조 때 생원 김여양(金汝陽)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정자이다. 청기면 저리에 있는데, 부용봉과 옥녀봉이 병풍처럼 나열되어 있고, 청계천을 굽이쳐 흘러내리는 연당석(蓮塘石) 백수(白水) 위에 우뚝 솟아있다.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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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8195

    조계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
    맑은 계곡과 푸른 숲에 자리한 풍류객의 공간 조계정은 구재(懼齋) 오정교(吳正敎, 1825~1897)를 기리기 위해 건립한 정자이다. 정자는 청기면 청기리에 자리 잡고 있다. 영양읍내에서 남쪽으로 31번 국도를 타고 10여분 정도 오면 입암면소재지인 신구리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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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8196

    귀암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
    귀암정은 광덕리에서 세장리로 향하는 길목의 우측에 위치하고 있다. 배후는 산지이고, 좌우는 농지이다. 이곳은 귀암 권덕조(權德操)가 벼슬을 버리고 남쪽의 고향으로 돌아와 정착한 곳이다. 후에 사림에서 권덕조의 덕을 숭모(崇慕)하여 그 옛 집터에 귀암사(歸巖祠)를 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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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8197

    송만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
    송만정은 안동권씨 권준(權晙)이 최초로 건립한 집이라고 한다. 권준은 임진왜란 당시 곽재우 장군과 함께 화왕산성 전투에 종군하였고, 그 뒤 판관(判官) 을 지낸 바 있다. 송만정은 진보향교와 귀암정 등이 자리한 광덕리 마을 내에 위치하고 있다. 가옥의 구조는 정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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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8198

    약산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
    약산정은 진보면 부곡리에 자리하고 있다. 부곡리는 진보면 소재지에서 서쪽으로 5.8Km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원주 이씨의 집성촌이었다. 약산정은 이오언(李五彦)과 이준영(李俊永)이 창건한 것인데, 원주이씨 집안의 가세가 점점 쇠퇴하다가 이 두 사람 때 이르러 성대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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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8199

    마암고택(조석환가옥) / 유교문화>유적 / 미상
    한양조씨 집안의 오래된 내력이 숨 쉬는 옛집 마암고택은 옥천(玉川) 조덕린(趙德隣, 1658~1737)의 손자인 마암(磨巖) 조진도(趙進道, 1724∼1788)가 당초 1767년에 봉화군 닭실에 건립했던 집이다. 문필봉과 매방산이 감싸주는 주곡리의 중심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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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록서당 / 유교문화>유적 / 미상
    한국 현대문학의 요람이 된 옛 서당 월록서당은 조덕린(趙德鄰,1658~1737)의 손자인 조운도(趙運道, 1718~1796)의 발의로 한양조씨, 야성정씨, 함양오씨가 주축이 되어 주실마을에 건립한 조선후기 서당이다. 서당은 주실마을의 우측 산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
    출처 : 유교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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