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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388201

    약천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
    강물을 마주하며 학문을 익히던 정자 약천정은 조선후기 영양의 학자인 금희성(琴熙星)이 시를 읊고 제자들에게 학문을 강론하던 곳이다. 선생의 나이 46세되던 1824년(순조 24)에 건립하였으며, 이후 증손인 금병규(琴秉圭)에 의해 19세기에 한차례 중건이 있었다
    출처 : 유교넷
  • 388202

    오류정종택 및 오류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
    도연명의 자적함을 흠모하던 처사가 살던 집 오류정종택은 영조시대에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지낸 김두행(金斗行)이 1735년에 건립한 가옥이다. 석보면 지경에서 소계리로 들어가는 지점인 석보교(石保橋)에서 소계방향으로 5.8km 정도 길을 따라가면, 김녕김씨
    출처 : 유교넷
  • 388203

    금계서당 / 유교문화>유적 / 미상
    영남유학과 기호유학의 교류지 금계서당은 효행으로 이름난 김두행(金斗行, 1705~1789)이 후생들의 독서와 강학을 위해 설치했던 서당이다. 1792년 재차 중건하면서 우암(尤菴)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의 모본화상을 서당의 서재에 모신 뒤에 이름을
    출처 : 유교넷
  • 388204

    유우당 / 유교문화>유적 / 미상
    두들마을에 살던 뜻 높은 학자의 집 유우당은 우계(愚溪) 이시형(李時亨)의 후손인 이상도(李相度)가 주창하고 이기찬(李箕燦)이 완공한 살림집이다. 『서경(書經)』 『군진편(君陳篇)』의 ‘오직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한다.[惟孝友于兄弟]’라는 구절에서 ‘유우(惟于)
    출처 : 유교넷
  • 388205

    석계고택 및 석계종택 / 유교문화>유적 / 미상
    정부인 안동장씨의 손길이 닿아있는 옛집 석계고택(石溪古宅)과 석계종택(石溪宗宅)은 두들마을의 중심부에 나란히 자리 잡고 있다. 왼쪽에 있는 건물은 정부인(貞夫人) 장씨(張氏)로 더욱 유명한 장계향(張桂香, 1598~1680)이 남편 석계(石溪) 이시명(李時明,
    출처 : 유교넷
  • 388206

    이우호고택(소계댁) / 유교문화>유적 / 미상
    석계고택과 이웃하고 있는 이씨 집안의 옛집 이우호고택(李佑浩古宅)은 1868년 이수준(李壽俊)이 건립한 건물로, 현재는 노계(魯溪) 이복환(李復煥, 1692~1727)의 8세손이 거주하고 있다. 동향하고 있는 4칸의 아래채와 남향한 정면 4칸 측면 4칸의 정침
    출처 : 유교넷
  • 388207

    석천서당 / 유교문화>유적 / 미상
    석계 집안 후학들을 양성하던 배움터 석천서당은 원래 1640년 석계(石溪) 이시명(李時明, 1590∼1674)이 초당을 지어 14년 동안 살았던 곳이다. 석계 이시명의 넷째 아들인 항재(恒齋) 이숭일(李嵩逸, 1631~1698)이 부친의 유지인 이곳 초당에서 후
    출처 : 유교넷
  • 388208

    석간정사 및 정침 / 유교문화>유적 / 미상
    경북의 문학정신이 살아 숨쉬는 곳 석간정사와 정침은 좌해(左海) 이수영(李秀榮, 1809~1892)이 강학하고 생활하던 곳으로, 현재는 소설가 이문열이 유년시절을 보냈던 생가로 더욱 유명하다. 석간정사와 정침은 두들마을의 동쪽에 자리 잡고 있는데, 담을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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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8209

    남악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
    갈암선생이 학문에 전념하던 수양의 공간 남악정은 조선 숙종 때 성리학자인 갈암(葛庵) 이현일(李玄逸)이 학문에 전념하기 위해 지은 건물로, 여러 차례 중수를 해오다가 문중과 유림의 힘을 모아서 1980년에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영양군 석보면소재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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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8210

    도은정(초선대) / 유교문화>유적 / 미상
    입암 소나무 숲에 숨어사는 은자의 정자 안동의 하회마을처럼 반변천이 북쪽에서 남서쪽으로 감싸고 유유히 흘러가는 절벽위에 자리잡은 도은정(島隱亭)은 박언필(朴彦弼: 생몰년 미상)의 후손인 박동면(朴東冕), 박동희(朴東熺) 등이 선생이 초선도(招仙島)에서 수양하며
    출처 : 유교넷
  • 388211

    약산당 / 유교문화>유적 / 미상
    고향으로 돌아온 처사가 학문을 연마하던 초당 이 건물은 신구2리에서도 북쪽 산기슭에 위치하고 있어 마을에서도 상대적으로 지대가 높은 편이다. 따라서 마을 초입에 보이는 입암초등학교 왼편에 있는 언덕길을 약 5분 정도 걸어서 북쪽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마을로 올라가
    출처 : 유교넷
  • 388212

    태화당고택 / 유교문화>유적 / 미상
    부용꽃 만발한 연못에 위치한 아름다운 옛집 태화당고택은 석문 정영방의 후손인 동파(東坡) 정익세(鄭翼世)가 1800년대 말엽에 건립한 고택이다. 살림채인 정침(正寢)과 대문 옆에 붙어있는 대문채, 그리고 마당의 좌측에 있는 고방채로 구성되어 있다. 이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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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8213

    영양 서석지 · 경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
    부용꽃이 만발한 연못에 지어진 집 아름다운 정원은 그 시대의 생활상과 높은 문화적 위상을 드러내는 동시에, 그 정원을 꾸렸던 사람의 정신세계도 엿볼 수 있다. 영양에 있는 서석지와 경정은 조선시대 유교적 이념을 가지고 살았던 석문(石門) 정영방(鄭榮邦, 1577
    출처 : 유교넷
  • 388214

    남경대 / 유교문화>유적 / 미상
    우거진 소나무 숲에 자리한 고즈넉한 누대 남경대(攬景臺)는 산택재(山澤齋) 권태시(權泰時, 1635~1719)가 건립한 정자로, 입암면 산해리 남경대라 불리는 절벽 위에 자리 잡고 있다. 영양군 입암면에서 2번 군도를 타고 안동방면으로 가다가 산해교를 건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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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8215

    계암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
    선조의 호학심(好學心)을 추모하기 위한 정자 계암정은 석보면 옥계리의 소하마을에 위치한 정자이다. 함안 조씨(咸安趙氏) 입향조인 계암(溪巖) 조상태(趙相泰, 1704~1774)가 평소 심신을 수양하며 학문에 힘쓰려고 했던 뜻을 기려 1919년에 후손들이 세운 정
    출처 : 유교넷
  • 388216

    광록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
    부처님 같은 자비심이 서린 정자 광록정은 ‘이불자(李佛子)’라고 불리던 항재(恒齋) 이숭일(李崇逸, 1631~1698)이 1690년대에 부친 석계(石溪) 이시명(李時明, 1590~1674)의 유지에 따라 지은 정자로, 이숭일이 만년에 학문을 연구하면서 살던 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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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8217

    부용재 / 유교문화>유적 / 미상
    부용꽃처럼 향기로운 덕이 배어있는 곳 부용재는 한성판윤(漢城判尹)을 역임한 김세보(金世輔)가 연산군(燕山君) 때에 벼슬을 그만두고 영양(英陽)에 들어와 일월산(日月山) 중에 은거하다가 중종반정(中宗反正) 이후 입암(立岩)에 들어와 지은 건물이다. 구조는 정면4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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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8218

    기암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
    기천 바위에 지은 아름다운 정자 기암정(沂巖亭)은 김해김씨 영양입향조인 김세보(金世輔)의 후손인 김종환(金鍾煥)의 덕을 추모하기 위해 후손들이 세운 정자이다. 정면3칸, 측면1칸반의 규모로 팔작기와 지붕 형태를 띠고 있으며, 마을 뒤편의 산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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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8219

    남곡정사 / 유교문화>유적 / 미상
    권상길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집 남곡정사는 병자호란 당시 화의론자들의 화의제의를 받아들이지 말 것을 주청하던 남곡(南谷) 권상길(權尙吉)이 은거한 정사이다. 이곳은 영양(英陽)의 일월산(日月山) 줄기가 남쪽으로 지맥을 뻗어 내려오다 반변천에 막히어 우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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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8220

    용암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
    신사리의 소박한 정자 용암정(蓉巖亭)은 김덕진(金德進)의 덕을 추모하기 위해 후손들이 1850년경에 지은 정자이다. 이 건물은 정면3칸, 측면1칸 반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자는 부용산(芙蓉山)의 줄기가 서쪽으로 뻗어나가는 곳에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고즈넉하게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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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8221

    남자현지사생가 / 유교문화>유적 / 미상
    여성독립운동의 산실 여성 독립운동가 남자현(南慈賢, 1872~1933)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영양군과 남자현의 후손들이 3년여의 조성 기간을 거쳐 1999년 11월 30일에 복원한 생가이다. 영양군과 진보면의 경계 지역인 석보면 지경리 초입에 위치하고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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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8222

    운봉관 / 유교문화>유적 / 미상
    운봉관(雲鳳館)은 청송군의 객사(客舍)로, 조선 세종10년(1428)에 군수 하담(河擔)이 찬경루(讚慶樓)와 함께 건축한 것이다. 청송읍내를 동에서 서북으로 흘러가는 용점천을 마주 보며 찬경루 뒤쪽에 서남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 객사는 국왕과 왕실의 존엄함을 드러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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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8223

    송은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
    송은정은 김녕 김씨 충정공파 청송 지역 입향조(入鄕祖)인 송은(松隱) 김확(金確)이 기거하던 곳이다. 김확은 1636년(인조14년) 병자호란 일어나 나라가 어지러워지자 대둔산 아래에 은거하였다. 마을 앞 언덕 위에 소나무를 심고 그 소나무 사이에 이 정자를 세우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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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8224

    벽절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
    벽절정은 덕천마을 앞산인 현당산 동쪽기슭 옥산강(玉山江) 절벽 위에 세워져있다. 이곳은 심홍부(沈洪孚)의 10세손인 통훈대부 훈련봉사 심청(沈淸)의 푸른 절개(碧節)를 추앙하기 위해 지은 추모 정자이다. 안동에서 좌측으로 덕천리를 끼고 청송으로 접어드는 초입부에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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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8225

    망미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
    망미정(望美亭)은 용전천 강가 우뚝 솟은 기암절벽 위에 지어진 정자이다. 50여 년 전에는 솔밭위에 세워져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기암바위 틈에 세워져 있어 그 경치가 더욱 색다르다. 망미정은 1899년(광무3) 당시 청송부사였던 장승원(張承遠)이 산천을 거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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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8226

    찬경루 / 유교문화>유적 / 미상
    찬경루(讚慶樓)는 1428년(세종10) 세종대왕이 청송부사 하담(河澹)에게 명하여 창건한 제각이다. 이 제각은 청송심씨 시조인 고려 문림랑 위위사승 청기군(文林郞 尉衛寺丞 靑己君) 심홍부(沈洪孚)를 위해 지은 것으로, 운봉관 뒤편에 위치하며 현비암과 마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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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8227

    파서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
    파서정은 조선시대 장군이었던 황정필(黃廷必)의 넋을 기리기 위해 그의 후손들이 황정필 사후에 세운 누정이다. 건립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파서정에 대한 기록은 남병기(南炳基)가 지은 기(記)가 남아있다. 파서정은 청송읍소재지에서 영천방향 31번국도고 약 6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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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8228

    만취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
    만취정(晩翠亭)은 황학(黃(水+學), 1758~1804)이 학문을 익히던 장소이다. 황학은 청송지역의 이름난 학자로 파서정(巴西亭)을 건립한 황덕필의 아우인 황덕진의 후손이다. 청운리에서 출생하여 어릴 적부터 글 읽기를 좋아했고 장성하여 학문을 대성하였다. 황학은 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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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8229

    청운동 성천댁 / 유교문화>유적 / 미상
    청송군 청송읍 청운리에 위치한 성천댁은 국가지정 유형문화재 중요민속자료 172호로 지정되어 있는 문화재이다. 마을에서 가장 높은 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산간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폐쇄형의 정자형(井字形) 집이다. 2칸 대칭의 좌우에 사랑방과 뒷방, 안방이 대칭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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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8230

    영모재 / 유교문화>유적 / 미상
    영모재는 파평윤씨(坡平尹氏) 윤활(尹活)의 묘제를 위해 지은 재사로, 1773년(영조49년)에 처음 짓고 1877년(고종14년)에 중수한 것이다. 청송에서 새로 난 산업도로를 끼고 주왕산으로 가다보면 도로의 마지막자락에서 우측으로 들어가는 길에 금곡2리가 자리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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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8231

    청운리 정효각 / 유교문화>유적 / 미상
    청운리 정효각(旌孝閣)은 평해황씨 부사공파의 후손인 황하흠(黃夏欽, 1862~1910)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각(碑閣)이다. 이 정효각은 원래 청송군 청송읍 청운리 소재 청운초등학교 앞 좌측에 세워졌는데, 최근 청송군청에서 청송의 문화재를 한 곳에 모아 관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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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8232

    청운리 창효각 / 유교문화>유적 / 미상
    창효각(彰孝閣)은 평해황씨 양무(襄武) 황희석(黃希碩)의 후손인 황태징(黃泰澄, 1727~?)의 효성을 기리기 위해 세운 효행비각이다. 황태징은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3년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빠짐없이 성묘함은 물론이고, 국상을 당하였을 때도 3년 동안 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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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8233

    청송향교 / 유교문화>유적 / 미상
    청송향교는 선현을 제향하고 지역 교육을 실행할 목적으로 청송 굴사(窟祠)에 처음 세워졌다. 이후 청송향교는 수차례의 보수와 중수과정을 통해 오늘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청송에는 청송향교와 진보향교(眞寶鄕校)가 있으며, 청송향교는 청송 의진(義陣) 결성의 출발점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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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8234

    만우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
    만우정은 부남면소재지에서 청송방향 31번 국도의 1km지점 좌측 감연리 마을로 가는 201번 지방도로의 700m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만우정은 호조참판 및 절충가선대부(折衝嘉善大夫)를 지낸 청송심씨 4세손 심효연(沈孝淵)의 넋을 기리기 위해 지은 추모 정자이다. 파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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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8235

    병암서원 / 유교문화>유적 / 미상
    병암서원은 부남면 소재지에서 영일방향 68번 도로로 5.5km지점에서 좌측 영덕방향 932번 지방도로 약 2.5km지점 우측 편에 있다. 병암서원에서 약 3km거리에 화장저수지가 있고 병암서원 맞은편 일대는 여름철 피서지로도 좋은 병암(屛岩)하천이 있다. 주변을 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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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8236

    쌍체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
    쌍체정은 영남 지역의 으뜸산인 청송 주왕산 자락 들판 초입부에 우뚝 서있다. 청송의 동대산은 남쪽에서 가장 큰 산인데 그중 한 가지가 용이 치솟는 듯 호랑이가 걸터앉은 듯 북으로 달려 주왕산이 되었고, 길게 삼 십리나 늘어져 삼자현이 되었으며, 또 북으로 꺾여서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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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8237

    영모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
    영모정은 이전리 마을 동쪽 가장자리에 위치해 있다. 주왕산 자락을 끼고 돌아 나오면 주왕산의 절골과 주산골이 만나는 지점에, 앞으로는 주산천을 바라보고 뒤로는 두 골의 산세를 마주하여 마을 내려다보는 듯이 영모정이 서 있다. 최근에는 마을을 우회하여 영덕으로 가는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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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8238

    덕양재 / 유교문화>유적 / 미상
    덕양재(德陽齋)는 달성서씨(達成徐氏) 학유공파(學諭公派) 9세손(世孫)인 청송(靑松) 입향조(入鄕祖) 서윤(徐尹)과 그의 손자 서창(徐昌), 그리고 서창의 손자 서봉(徐琫) 3명을 배향하기 위해 약 200여 년 전에 세워진 것이다. 덕양재(德陽齋)는 청송군 부동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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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8239

    부강서당 / 유교문화>유적 / 미상
    부강서당은 청송군 부동면 소재지에 있다. 그 마을의 형상이 오리 모양으로 형성되어 있어, 서당이름도 오리부(鳧)자를 사용하여 부강서당(鳧江書堂)이라 이름 하였다. 마을 앞에는 마뜰이라 부르는 넓은 평야를 이루고 있으며, 동으로 주왕산 줄기를 타고 내려온 날카로운 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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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8240

    풍호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
    진보면(眞寶面) 소재지에서 안동-영덕선 국도 서쪽으로 약4Km에 이르면 합강동(合江洞) 언덕위에 고목이 어우러진 숲속에 아담한 정자가 세워져 있는데 이 정자가 바로 풍호정(風乎亭)이다. 화강암 층 위에 세워진 이 풍호정에 앉아서 사방을 두루 살펴보면, 동쪽에는 비봉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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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8241

    풍호정주사 / 유교문화>유적 / 미상
    풍호정 주사는 풍호정의 오른쪽에 ㅁ자형 구조로 지어진 민가이다. 앞쪽으로 반변천을 바라보며 왼쪽으로는 비각이 일직선상에 배치되어 있다. 풍호정 주사는 약한 경사지에 정면 4칸 측면 4칸의 방형 口자형으로 건물을 앉혔다. 먼저 배면 쪽 2칸 마루를 중심으로 좌측에 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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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8242

    백호서당 / 유교문화>유적 / 미상
    백호서당은 진보면 세장리 478번지에 자리하고 있었고 퇴계 이황이 안동에서 진보면 진안동 옥류정에 올 때 휴식하던 곳이다. 그후 존재(存齋) 이휘일(李徽逸)의 유업을 기리기 위해 현감(縣監) 조명협(曺命協)의 발의(發議)로 진보향중(眞寶鄕中)에서 1757년(영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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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8243

    박씨효자각 / 유교문화>유적 / 미상
    이 효자각은 박충국(朴忠國)의 부친 박득춘(朴得春)에 대한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조선 고종(高宗) 28년(1891)에 정려(旌閭)가 내려져 추현동에 건립한 것이다. 박충국은 밀양박씨로서 그의 아우 용국(龍國),준국(俊國), 흥국(興國)과 더불어 부친 박득춘에게 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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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8244

    쌍절각 / 유교문화>유적 / 미상
    쌍절비각은 임진왜란 때 참판(參判)을 지낸 신예남(申禮男)과 그 부인의 절개를 기리기 위해 지어진 건물이다. 신예남은 왜적이 납치하려 하자 혈서를 쓰고 자결하였고, 부인은 남편이 남긴 자식을 훌륭하게 키워서 남편의 유지를 받들었다. 무릇 관직(官職)에 몸을 담아 임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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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8245

    진보향교 / 유교문화>유적 / 미상
    진보향교는 광덕동(廣德洞) 마을 뒤쪽 야산 기슭 경사가 완만한 곳에 세워진 건물이다. 건물의 배치는 대성전(大成殿)을 뒤로한 전학후묘(前學後廟)의 형식으로, 대성전과 명륜당(明倫堂)이 같은 축선상(軸線上)에 놓여 있다. 진보향교는 1404년(태종 4년)에 처음 건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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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8246

    정효각 / 유교문화>유적 / 미상
    정효각은 권택만(權澤萬)의 효성을 기리기 위해 지은 비각이다. 권택만은 집에 갑자기 화재가 발생했을 때 부친을 구하려고 불에 뛰어 들었다가 그만 목숨을 잃고 말았다. 이에 주위 사람들이 그의 효행을 조정에 알렸고, 조정에서는 권택만의 효심을 현창하는 정효비(旌孝碑)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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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8247

    소류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
    소류정은 청송 지역의 의병대장 심성지(沈誠之, 1831~1904)가 유거(幽居)하던 정자이다. 심성지는 1896년에 의병을 창의하여 안덕과 감은 지역의 전투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웠던 인물이다. 심성지뿐 아니라 그의 큰아들과 증손 등 3대가 나라에서 훈장을 수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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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8248

    송소고택 / 유교문화>유적 / 미상
    송소고택은 경북의 대부호인 송소(松召) 심호택(沈號澤)이 1880년대에 건립한 집이다. 조선후기 한옥구조로서 별묘까지 합쳐 대지 면적만 2,700평이다. 그 부를 짐작케 할 정도로 큰 규모의 집이다. 심호택은 조선 영조 때 큰 부를 누리던 심처대(沈處大)의 7세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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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8249

    청송 초전댁 / 유교문화>유적 / 미상
    초전댁은 조선 순조 때 통정대부첨지중추부사(通政大夫僉知中樞府事)를 지낸 청송심씨 17세손인 심덕활(沈德活)이 지은 집이다. 심덕활은 아우 심덕종(沈德宗)이 요절하자, 자신의 친아들 심헌문(沈憲文)을 심덕종의 양자로 들여 그 후사를 잇게 하였다. 이 집은 심헌문의 4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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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동재사 / 유교문화>유적 / 미상
    요동재는 청송 심씨 12세손인 심응겸(沈應謙)이 학문을 연마하고 심성을 기르던 곳이다. ‘요동’이라는 이름은 요(堯)임금과 같은 성인이 되겠다는 뜻에서 붙인 것이다. 건물이 많이 훼손된 것을 1890년대 당시 심씨 문중 유사(有司)이던 심능규(沈能奎)가 종중의 결의에
    출처 : 유교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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