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388401
냉천문집 / 유교문화>유물 / 李猷遠 著조선 후기의 학자 이유원(李猷遠 ; 1695∼1772)의 시문집이다. 이유원은 자가 굉보(宏甫)이고 호가 냉천(冷泉)이며 본관은 재령(載寧)이다. 고조부는 이시명(李時明)이며 종조부는 이재(李栽)이었던 덕분에, 가학으로 퇴계학의 정수를 전승받을 수 있었다. 이유출처 : 유교넷 -
388402
담연재시고 / 유교문화>유물 / 미상김정희(金正喜, 1786-1856)의 시를 필사한 책이다. 보통 『담연재시집』(覃揅齋詩集)이라고 한다. 김정희는 조선 말기의 문신이자 실학자이고 서화가이다. 호는 추사(秋史)·완당(阮堂)·예당(禮堂)·시암(詩庵)·노과(老果)·농장인(農丈人)·천축고선생(天竺古先生) 등출처 : 유교넷 -
388403
몽각헌유고 / 유교문화>유물 / 미상청송의 유학자 신성흠(申性欽)의 시문 유고집이다. 신성흠은 자가 요경(堯卿)이고 호가 몽각헌(夢閣軒) 혹은 각헌(閣軒)이다. 아버지는 신치도(申致道)이며 신필흠(申弼欽)은 종제(從弟)이다. 어려서부터 소학(小學) 공부를 충실히 하여 행실이 반듯하였다. 또한 학문에만출처 : 유교넷 -
388404
백탄유고 / 유교문화>유물 / 吳承彦 著청송의 학자 오승언(吳承彦)의 시문을 모아놓은 유고집이다. 오승언의 이력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영남 퇴계학을 계승한 근현대기의 선비인 것으로 추측된다. 이 시문집은 이병두(李炳斗)가 서문을 쓰고 김병숙(金秉淑)이 후서를 작성하여 1984년 경에 출간출처 : 유교넷 -
388405
사남문집 / 유교문화>유물 / 申遇浩 著평산신씨 판사공파종택에 보관되어 있는 신우호(申遇浩, 1857-1918)의 시문집이다. 신우호는 조선 후기의 시인이자 학자로 호는 사남(泗南)이다. 평산신씨 장절공(壯節公) 신숭겸(申崇謙)의 33대손으로 태어났다. 경북문화재자료 제340호인 사남고택(泗南古宅)은 그의출처 : 유교넷 -
388406
삼익당유고 / 유교문화>유물 / 申智立 著조선 중기의 학자 신지립(申智立,1587∼1678)의 시문을 모아놓은 유고집이다. 신지립은 본관이 평산이고 자가 자건(子建)이며 호가 삼익당(三益堂)이다. 아버지는 신명령(申命齡)이다. 일찍이 벼슬길에 올랐다. 장수도찰방(長水道察訪)을 맡고 있을 때 병자호란이 일어나출처 : 유교넷 -
388407
상천족(대책문) / 유교문화>유물 / 미상과거시험 모의 문제와 그에 대한 답안을 작성한 것이다. 표지의 ‘상천족’(上天足)이라는 말의 의미는 분명치 않다. 이 유물은 『중용』(中庸)과 『대학』(大學)의 구절에 대해 문제를 내고 그에 대해 답을 쓴 것이다. 『중용』과 『대학』의 구절에 대해 주자(朱子, 113출처 : 유교넷 -
388408
서찰집람 / 유교문화>유물 / 미상이현일(李玄逸, 1627∼1704), 채제공(蔡濟恭, 1720∼1799), 송시열(宋時烈)이 쓴 서간을 모아놓은 책이다. 이현일은 자가 익승(翼昇)이고 호가 갈암(葛庵)으로 아버지 이시명(李時明)과 어머니 안동장씨(安東張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와 외할아버지에게출처 : 유교넷 -
388409
성천일고 / 유교문화>유물 / 申(竹+棧) 著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신전(申<竹+棧>)의 시문을 모아놓은 유고집이다. 신전은 자가 자형(子馨)이고 호가 성천(聲川)으로 신종위(申從渭)의 증손이다. 조부는 임진왜란 당시 상주지사(尚州知事)를 지낸 신언(申漹)이고 아버지는 신지남(申智男)이다. 어려서부터 매우출처 : 유교넷 -
388410
시암선생문집 / 유교문화>유물 / 南皐 著조선 후기의 학자인 남고(南皐, 1807∼1879)의 시문집이다. 남고는 자가 중원(仲元)이고 호가 시암(時庵)이며 본관은 영양(英陽)이다. 송홍익(宋鴻翼)과 유치명(柳致明)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1840년(헌종 6)에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나 더 이상의 과거를 포기하고출처 : 유교넷 -
388411
쌍청당유고 / 유교문화>유물 / 申在衡 著조선 중기의 학자인 신재형(申在衡, 1649∼1697)의 시문을 모아놓은 유고집이다. 신재형은 본관이 평산이고 호가 쌍청(雙淸)이며 신성구(申聖龜)의 아들이다. 신재형은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할아버지 유헌(幽軒) 신길휘(申吉暉, 1604~1663)의 가르침을 받고출처 : 유교넷 -
388412
영양김씨원석합편 / 유교문화>유물 / 金昌鉉 等 編영양김씨(英陽金氏) 집안의 내원을 소개하고 그와 관련된 자료들을 모아놓은 책이다. 영양김씨는 중국 봉양부(鳳陽府) 여남(汝南) 지역에서 시작되었다. 당(唐)나라 때 형주자사(荊州刺史) 겸 안렴사(按廉使)를 지낸 김충(金忠)이 일본에 사신으로 가다가 풍랑을 만나 경북출처 : 유교넷 -
388413
유헌문집 / 유교문화>유물 / 申吉暉 著조선 후기의 학자인 신길휘(申吉暉, 1604~1663)의 시문집이다. 신길휘는 자가 혼원(暉遠)이고 호가 유헌(幽軒)으로, 1630(인조 8)년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벼슬을 단념하고 귀향하여 후진 양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이 문집은 10세손인 신동암(申東巖)이출처 : 유교넷 -
388414
인산선생문집 / 유교문화>유물 / 吳世魯 著, 吳錫穆 編청송의진(靑松義陳)에서 활동했던 의병 오세로(吳世魯, 1852~1900)의 시문집이다. 오세로는 청송의진에서 서기(書記)로 활동하면서 당시 청송지역의 의병활동상을 상세히 기록하였다. 또 청송의진의 참모로서 군량미를 수합하고 의병을 훈련시키면서 의병의 군세를 확장하는출처 : 유교넷 -
388415
죽취유고 / 유교문화>유물 / 미상근현대기 청송의 선비 신상기(申相箕)의 시문을 모아놓은 유고집이다. 신상기는 자가 경욱(敬昱)이고 호가 죽취(竹醉)로, 효암(曉庵) 이중철(李中轍, 1848~1937)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이 유고집에는 신상기가 쓴 서문(序文)과 편지글, 상량문(上樑文) 등이출처 : 유교넷 -
388416
풍호정선조유고 / 유교문화>유물 / 申祉學 著조선 중기의 학자 신지(申祉)의 시문을 모아놓은 유고집이다. 신지는 본관이 단양(丹陽)이고 자가 독경(篤慶)이며 호가 풍호정(風乎亭)이다 세조 때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하였고, 1463년(세조 9) 효성이 지극하고 행실이 청렴하다는 평판을 들어 의영고부사(義盈庫副使)출처 : 유교넷 -
388417
만사3 / 유교문화>유물 / 情弟 趙廣來평산신씨 판사공파종택에서 기탁한 만사이다. 지은이는 조광래(趙廣來)이다. 고인의 생전 모습을 사모하며 급작스런 죽음을 애절하게 슬퍼하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388418
만사6 / 유교문화>유물 / 族從 龍休평산신씨 판사공파 종택에서 기탁한 만사이다. 지은이는 신룡휴(申龍休)이다. 고인은 언행이 바르고 덕망이 높아 집안 사람들의 모범이 되었는데, 이제 갑자기 세상을 등지니 슬픔을 가눌 길 없다고 애통해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388419
만사10 / 유교문화>유물 / 沈相八평산신씨 판사공파 종택에서 기탁한 만사이다. 지은이는 심상팔(沈相八)이다. 고인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생활을 하면서도 학문에 대한 열의를 불태우며 공부에 매진했던 인물이고 평소 화를 내지 않는 온화한 성품이었다고 회고하고 있다. 아울러 고인이 없는 세상의 적막함을 견딜출처 : 유교넷 -
388420
만사15 / 유교문화>유물 / 記下生 沈相岳평산신씨 판사공파 종택에서 기탁한 만사이다. 지은이는 심상악(沈相岳)이다. 지은이는 고인의 문하생으로서 고인의 도타운 애정을 받으며 공부하였다고 회고하면서, 70세까지 장수할 줄 알았는데 불현듯 세상을 떠나게 되어 슬픔을 감당할 수 없다고 쓰고 있다.출처 : 유교넷 -
388421
만사17 / 유교문화>유물 / 記下生 沈元澤평산신씨 판사공파 종택에서 기탁한 만사이다. 지은이는 심원택(沈元澤)이다. 고인의 풍모는 소나무와 국화처럼 아름다웠는데 불현듯 신선이 되어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고 회고하면서 자기 마음의 슬픔을 달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388422
행장1(몽각헌공[성흠]유사) / 유교문화>유물 / 三從侄 弘浩몽각헌(夢覺軒) 신성흠(申性欽)의 일대기를 기록한 글이다. 신성흠은 자가 요경(堯卿)이고 호가 몽각헌(夢閣軒) 혹은 각헌(閣軒)으로 아버지는 신치도(申致道)이며 신필흠(申弼欽)은 종제(從弟)이다. 어려서부터 소학(小學) 공부를 충실히 하여 행실이 반듯하였다. 또한 학출처 : 유교넷 -
388423
성책15(둔파재수설명첩) / 유교문화>유물 / 미상평산 신씨 판사공파의 종가인 둔파재(遯坡齋)의 일가 친척들의 종친계를 조직하고 참여자의 명단을 기록한 책이다. 신숭겸의 후손인 신숙(申璹)이 조선 경종4년(1724)에 진보면(眞寶面) 합강(合江)으로 이사하면서 건물을 짓고 자기의 호를 따서 둔파재라고 이름하였다. 그출처 : 유교넷 -
388424
죽소문집 / 유교문화>유물 / 미상조선말기 학자인 민종혁(閔宗爀, 1762∼1838)의 시문집 책판이다. 총 24점이다. 민종혁은 자가 조언(祖彦)이고 호가 죽소(竹巢)이며 본관은 여흥(驪興)이다. 민종혁은 대구출신으로 아버지는 복현(復賢)이며 어머니는 의성김씨(義城金氏)로 경석(慶錫)의 딸이다. 1출처 : 유교넷 -
388425
현암문집 / 유교문화>유물 / 미상조선 후기의 학자 민치긍(閔致兢, 1810∼1885)의 시문집 책판이다. 총 33점이다. 민치긍은 자가 근지(謹持)이고 호가 현암이며 본관은 여흥(驪興)이다. 아버지는 민종혁(閔宗爀)이고, 어머니는 전주류씨(全州柳氏)로 제휴(濟休)의 딸이다. 이 문집의 시(詩)출처 : 유교넷 -
388426
예주세록 / 유교문화>유물 / 미상평산신씨 가문 인물들의 계보와 사적을 기록한 세보(世譜)의 책판이다. 총 186점이다. 평산신씨의 시조인 신숭겸(申崇謙)으로부터 13세손까지의 평산세계도(平山世系圖)와 예주(禮州) 지역의 예주파계도(禮州派系圖)가 기록되어 있다. 이 책에는 세계도(世系圖) 이외에 집안출처 : 유교넷 -
388427
부훤재선생실기 / 유교문화>유물 / 미상신현(申賢, 1298~1377)의 실기를 기록한 『불훤재선생실기서』(不諠齋先生實紀序)의 책판이다. 총 1점이다. 신현은 고려시대 충렬왕 때의 학자로 정몽주(鄭夢周)와 이색(李穡)의 스승이기도 하다. 설총(薛聰)에서 시작되어 최충(崔沖) →김양감(金良鑑) →안향(安珦)출처 : 유교넷 -
388428
능화판 / 유교문화>유물 / 미상책 표지에 마름모양을 찍어내는 목판이다. 재질은 주로 박달나무, 단풍나무, 호박나무, 피나무 등이다. 마름 모양 외에 십장새, 사군자, 박쥐, 조충도(鳥蟲圖), 당초 꽃문양, 수복강녕(壽福康寧), 부귀다남(富貴多男), 쌍희자(雙喜字)나 빗살무늬 등을 조각한 것이 많다출처 : 유교넷 -
388429
물촌선생영정 / 유교문화>유물 / 미상평산신씨 판사공종택에서 기탁한 신종위(申從渭, 1501~1583)의 영정이다. 신종위는 자가 등원(澄源)이고 호가 물촌(勿村)으로 절충장군 용양위부호군에 올랐던 인물로, 평산신씨 집안을 중건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이 초상화는 지금으로부터 430년 전(1580년)출처 : 유교넷 -
388430
평산신씨 진보서파 돈와공종중 [소지1] / 기록자료>고문서 / 김노 춘단진보(眞寶) 임울동(林蔚洞)에 사는 김씨의 노비 춘단(春丹)이 경오년(庚午年) 4월에 안전주(案前主)에게 올린 소지(所志)이다. 개암면(介巖面)에 사는 방선조(傍先祖)는 후손이 없어 위토(位土) 5두락의 땅을 이후 제사를 받드는데 사용하기로 하고 대금 8냥을 상전댁에출처 : 유교넷 -
388431
평산신씨 진보서파 돈와공종중 [소지1-1(명문)] / 기록자료>고문서 / 전주 김노 산경김씨(金氏)의 노비 산경(山慶)이 기사년(己巳年 : 1968) 4월에 본인의 소유인 묘소 관리를 위한 밭 일부와 임야를 전문(錢文) 8냥(兩)을 받고 김씨(金氏)의 노비 춘단(春丹)에게 매도한 사실을 증명한 전답매매문기(田畓賣買文記)이다. 노비간의 토지 매매 사례이다출처 : 유교넷 -
388432
평산신씨 진보서파 돈와공종중 [소지1-2(명문)] / 기록자료>고문서 / 전주 김철이밭 주인 김철이(金哲伊)가 도광(道光) 24년(1844)에 올린 소송문 형식의 글인 소지(所志)이다. 김철이의 조모가 죽어 급하게 김생원(金生員)댁 소유지에 묘소를 만들었다고 하며 이에 대한 대가로 본인이 소유한 땅을 이양하고 피모(皮牟)를 상납하겠다고 했다. 보증인출처 : 유교넷 -
388433
평산신씨 진보서파 돈와공종중 [소지2] / 기록자료>고문서 / 화민 신익흠상신촌(上新村) 주민 신익흠(申益欽)이 계유년(癸酉年) 11월에 성주(城主)에게 올린 소송문 형식의 글인 소지(所志)이다. 지난 계해년(癸亥年)에 상리(上里) 신촌(新村)에 있던 교궁(校宮 : 지방 향교) 및 육재(育齋) 토지를 전문(錢文) 50냥(兩)을 지급하고 샀출처 : 유교넷 -
388434
평산신씨 진보서파 돈와공종중 [소지3] / 기록자료>고문서 / 상신촌 화민 신익흠상신촌(上新村) 주민 신익흠(申益欽)이 계미년(癸未年) 12월에 성주(城主)에게 올린 소송문 형식의 글인 소지(所志)이다. 지난 계해년(癸亥年)에 상리(上里) 신촌(新村)에 있던 교궁(校宮 : 지방 향교) 및 육재(育齋) 토지를 전문(錢文) 50냥(兩)을 지급하고 이출처 : 유교넷 -
388435
평산신씨 진보서파 돈와공종중 [소지4] / 기록자료>고문서 / 상리면 신촌거 화민 신연호상리면(上里面) 신천거(新村居) 주민 신연호(申鍊浩)이 계미년(癸未年) 7월에 성주(城主)에게 올린 소송문 형식의 글인 소지(所志)이다. 금년 3월에 친척인 신치동(申致洞)이 자신의 조상 산소 근처에 투장(偸葬 : 주인의 허락을 받지 않고 묘를 만듬)한 것을 언급하며출처 : 유교넷 -
388436
평산신씨 진보서파 돈와공종중 [소지4-1] / 기록자료>고문서 / 상신촌거 화민 신연호상신촌(上新村) 주민 신연호(申鍊浩)가 계미년(癸未年) 8월에 성주(城主)에게 올린 소송문 형식의 글인 소지(所志)이다. 일가 친척인 신우흠이 조상 산소 근처에 투장(偸葬 : 주인의 허락을 받지 않고 묘를 만듬)한 것을 언급하며 이장해 달라고 설득했지만 소용이 없다며출처 : 유교넷 -
388437
평산신씨 진보서파 돈와공종중 [소지4-2(뎨김)] / 기록자료>고문서 / 신우흠신우흠이 계미년(癸未年) 7월 21일에 작성한 소송 관련 문건인 소지(所志)이다. 남의 조상 산소 근처에 투장(偸葬 : 주인의 허락을 받지 않고 묘를 만듬)한 것을 언급하며 다음 달 5일 이내로 투장한 묘를 이장 조치하겠다는 다짐을 기록했다.출처 : 유교넷 -
388438
평산신씨 진보서파 돈와공종중 [소지4-3(표문)] / 기록자료>고문서 / 표주 이택영신우흠이 계미년(癸未年) 8월 21일에 이택영(李宅永)에게 투장(偸葬 : 주인의 허락을 받지 않고 묘를 만듬)한 것을 인정하며 다음 달 5일 이내로 투장한 묘를 이장 조치하겠다는 다짐을 기록했다. 이 투장한 산의 원주인은 이택영의 장모라고 밝혔다.출처 : 유교넷 -
388439
평산신씨 진보서파 돈와공종중 [명문1(전답매매문기)] / 기록자료>고문서 / 답주 신노 방이신씨(申氏)의 노비 방이(方伊)가 무진년(戊辰年 : 1868) 10월 10일에 본인이 소유한 땅에 김범이(金凡伊)가 친척 묘소를 만들 당시 이미 사들였다고 하며 이후 이 땅의 소유자는 김범이라는 점을 증명하는 사실을 문서로 남긴다고 했다.출처 : 유교넷 -
388440
평산신씨 진보서파 돈와공종중 [명문2] / 기록자료>고문서 / 전주 권칠선권칠선(權七先)이 함풍(咸豊) 3년(1853) 11월 30일에 본인 소유의 밭을 전문(錢文) 19냥(兩)을 받고 신수열(申壽烈)에게 팔아 넘긴 사실을 증명한 전답매매문기(田畓賣買文記)이다. 보증인은 이진용(李震龍)이며 문서 작성자는 신이성(申伊成)이다.출처 : 유교넷 -
388441
평산신씨 진보서파 돈와공종중 [명문4] / 기록자료>고문서 / 답주 노 석남노비 석남(石男)이 함풍(咸豊) 원년(元年 : 1851) 11월 29일에 본인 소유의 논을 전문(錢文) 30냥(兩)을 받고 노비 방이(方伊)에게 판 사실을 증명한 전답매매문기(田畓賣買文記)이다.출처 : 유교넷 -
388442
평산신씨 진보서파 돈와공종중 [명문5] / 기록자료>고문서 / 전주 황용철황용철(黃用哲)이 도광(道光) 28년(1847) 2월 17일에 본인 소유의 밭을 전문(錢文) 65냥(兩)을 받고 신씨(申氏)의 노비 영세(永世)에게 팔아 넘긴 사실을 증명한 전답매매문기(田畓賣買文記)이다. 보증인은 김수복(金須福)이며 문서 작성자는 임준(林晙)이다.출처 : 유교넷 -
388443
평산신씨 진보서파 돈와공종중 [명문6] / 기록자료>고문서 / 전주 김팽수김팽수(金彭壽)가 도광(道光) 22년(1842) 3월 3일에 본인 소유의 밭을 전문(錢文) 7냥(兩)을 받고 황춘득(黃春得)에게 팔아 넘긴 사실을 증명한 전답매매문기(田畓賣買文記)이다. 보증인은 조언철(趙彦喆)이며 문서 작성자는 권석현(權錫玄)이다. 소규모의 토지출처 : 유교넷 -
388444
평산신씨 진보서파 돈와공종중 [명문7] / 기록자료>고문서 / 답주 양인 김제응양인(良人 : 평민) 김제응(金制應)이 도광(道光) 28년(1847) 8월 11일에 본인 소유의 논을 전문(錢文) 19냥(兩) 3전(錢) 4푼[分]을 받고 양인(良人) 김원(金願)에게 팔아 넘긴 사실을 증명한 전답매매문기(田畓賣買文記)이다. 보증인은 이씨(李氏)이며출처 : 유교넷 -
388445
평산신씨 진보서파 돈와공종중 [명문8] / 기록자료>고문서 / 전주 김원득한량(閑良 : 현직에 있지 않은 양반 집 아들) 김원득(金元得)이 도광(道光) 29년(1849) 3월 1일에 본인이 소유한 밭을 전문(錢文) 1냥(兩)을 받고 신씨(申氏)의 노비에게 팔아 넘긴 사실을 증명한 전답매매문기(田畓賣買文記)이다. 보증인과 문서 작성자는 기록출처 : 유교넷 -
388446
평산신씨 진보서파 돈와공종중 [명문9] / 기록자료>고문서 / 전주 최운태최운태(崔云太)가 도광(道光) 20년(1840) 11월 26일에 그간의 질병으로 농사를 감당하기 어려워져 본인 소유의 밭과 곡식을 전문(錢文) 40냥(兩)을 받고 황춘득(黃春得)에게 팔아 넘긴 사실을 증명한 전답매매문기(田畓賣買文記)이다. 보증인은 김광수(金光守),출처 : 유교넷 -
388447
평산신씨 진보서파 돈와공종중 [명문10] / 기록자료>고문서 / 전주 김종대한량(閑良 : 현직에 있지 않는 양반집 아들) 김종대(金宗大)가 도광(道光) 8년(1825) 1월 10일에 본인 소유의 밭을 전문(錢文) 10냥(兩)을 받고 노비 영세(永世)에게 팔아 넘긴 사실을 증명한 전답매매문기(田畓賣買文記)이다. 보증인은 유학(幼學 : 벼슬하지출처 : 유교넷 -
388448
평산신씨 진보서파 돈와공종중 [명문12] / 기록자료>고문서 / 전주 신노 차돌신씨(申氏)의 노비 차돌(次乭)이 함풍(咸豊) 4년(1854) 1월 14일에 본인 소유의 밭과 곡물을 전문(錢文) 36냥(兩)을 받고 이씨(李氏)의 여자 노비인 석진(石辰)에게 판 사실을 증명한 전답매매문기(田畓賣買文記)이다. 보증인은 이씨(李氏)의 노비 점랑(点郞)출처 : 유교넷 -
388449
평산신씨 진보서파 돈와공종중 [명문13] / 기록자료>고문서 / 답주 홍호철한량(閑良 : 현직에 있지 않은 양반집 아들) 홍호철(洪浩喆)이 함풍(咸豊) 7년(1857) 4월 15일에 본인 소유의 논을 전문(錢文) 35냥(兩)을 받고 김점대(金占大)에게 팔아 넘긴 사실을 증명한 전답매매문기(田畓賣買文記)이다. 보증인 겸 문서 작성자는 신씨(申출처 : 유교넷 -
388450
평산신씨 진보서파 돈와공종중 [명문14] / 기록자료>고문서 / 답주 김원김원(金願)이 도광(道光) 29년(1849) 윤(閏) 4월 10일에 본인 소유의 논을 전문(錢文) 10냥(兩)을 받고 신씨(申氏)의 노비 영세(永世)에게 팔아 넘긴 사실을 증명한 전답매매문기(田畓賣買文記)이다. 보증인은 없고 문서 작성자는 김원이다. 노비의 토지 매입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