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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416601

    移安後慰安文 14 / 기록자료>고도서 / 황응규
    三足堂 金大有나 逍遙堂 朴河淡 두 선생의 위패를 운수정에서 선암서원으로 옮긴 후 쓴 위안문이다.
    출처 : 유교넷
  • 416602

    祭裵汝友(三益)文 14 / 기록자료>고도서 / 황응규
    저자가 쓴 裵三益(1534~1588)의 제문이다. 배삼익의 字는 汝友, 號는 臨淵齋, 본관은 興海이며, 안동 출신이다. 이황의 문인으로 글씨가 뛰어났다. 1558년(명종 13) 생원시, 1564년(명종 19) 문과에 급제하였다. 호조좌랑‧풍기군수‧성균관대사성 등을 지
    출처 : 유교넷
  • 416603

    祭黃君擧(遂良)文 15 / 기록자료>고도서 / 황응규
    저자가 쓴 黃遂良의 제문이다. 黃遂良의 字는君擧이고, 號는錦澗이며, 本貫은平海이다. 錦溪 黃俊良의 동생으로 퇴계의 문하이며, 富寧敎授 등을 역임하였다.
    출처 : 유교넷
  • 416604

    祭權粲若(應參)文 16 / 기록자료>고도서 / 황응규
    저자가 쓴 權應參의 제문이다.
    출처 : 유교넷
  • 416605

    紫溪書院記(1577) 16 / 기록자료>고도서 / 황응규
    1577년(선조 10)에 청도군수로 재직 중이던 저자가 당시 완공된 紫溪書院의 건립기를 부탁받고 지은 글이다. 이 글에 의하면 1574년(선조 7)에 尹根壽가 경상도관찰사로 부임하여 이듬해 봄 청도군을 巡行할 때 몸소 제문을 지어 金馹孫의 무덤에 제사를 올리자, 함께
    출처 : 유교넷
  • 416606

    仙巖祠宇移建記(1577) 18 / 기록자료>고도서 / 황응규
    저자가 청도군수로 재임 중이던 1577년(선조 10)에 지은 선암사우의 이건기문이다. 기문에서는 현재의 장소로 선암서원이 옮기게 된 연유를 자세히 밝히고 있다. 기문에 의하면 예전에 崔雲이 청도군수로 재임할 때 正言 金大有와 생원 朴河淡의 건의로 東倉을 지어 이곳에서
    출처 : 유교넷
  • 416607

    淸道武庫記(1576) 19 / 기록자료>고도서 / 황응규
    저자가 청도군수로 부임하여 청도군에 武庫를 새로 만들고 지은 기문으로 1576년(선조 9)에 지었다. 기문에 의하면 청도군에는 오래도록 무고가 없어 假屋에다 무기를 보관하고 있어서 가옥이 무너지고 무기가 훼손되고 분실되는 일이 잦았다. 이에 1576년(선조 9) 7월
    출처 : 유교넷
  • 416608

    風樹庵記(1581) 20 / 기록자료>고도서 / 황응규
    1581년(선조 14)에 쓴 풍수암의 내력을 적은 기문이다. 1538년(중종 33)에 父親喪을 마치고 제사를 올리는 장소로 9칸의 집을 지었으나 이곳이 좁고 누추하였다. 1558년(명종 13)에 內外孫들이 함께 논의하기를, “이 집은 贊成公(즉 저자의 선친 黃士祐)만
    출처 : 유교넷
  • 416609

    高祖考贈工曹參判府君墓碣銘(幷序) 21 / 기록자료>고도서 / 황응규
    외증손인 金玏이 쓴 저자의 고조부 黃躔(1426~1459)의 묘갈명이다. 황전은 通禮院奉事를 지내고 工曹參判으로 증직된 인물이다. 高祖妣와 함께 무덤에 표석이 없었는데, 1587년(선조 20)에 榮川郡守 李大震이 5斗穀을 출연하여 표석을 세웠다는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출처 : 유교넷
  • 416610

    高祖妣贈貞夫人谷城任氏墓表 22 / 기록자료>고도서 / 황응규
    저자의 고조모 谷城任氏의 묘표로, 고조모는 知端州事 載의 딸이다.
    출처 : 유교넷
  • 416611

    輓詞 23 / 기록자료>고도서 / 황응규
    鄭琢, 沈守慶, 李山海, 金玏이 지은 저자의 만사 4편이 수록되어 있다.
    출처 : 유교넷
  • 416612

    家狀 24 / 기록자료>고도서 / 황응규
    저자의 次子 黃暹이 지은 家狀이다. 내용은 行狀과 대동소이하나 행장에 비해 내용이 조금 더 자세하다.
    출처 : 유교넷
  • 416613

    墓碣銘(幷序) 29 / 기록자료>고도서 / 황응규
    李山海가 쓴 저자의 묘갈명이다. 이산해는 글의 앞부분에서 저자가 李山海의 선친 李之蕃(?~1575)과 매우 친한 벗이었으며, 그 인연으로 저자는 이산해가 비록 나이는 훨씬 어리지만 忘年之交를 허락해 주었다는 두 사람 사이의 인연을 설명하고 있다. 이산해는 1595년(
    출처 : 유교넷
  • 416614

    行狀 34 / 기록자료>고도서 / 황응규
    洪羲俊이 지은 저자의 행장이다. 내용은 글 앞의 저자 소개에 자세하다.
    출처 : 유교넷
  • 416615

    陶山及門諸賢錄 41 / 기록자료>고도서 / 황응규
    󰡔陶山及門諸賢錄󰡕에 수록된 저자에 관련된 기사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416616

    寄贈諸篇(附追感詩) 41 / 기록자료>고도서 / 황응규
    저자가 諸賢들에게 받은 詩文이다. 시문을 준 사람은 錦溪 黃俊良, 灌園 朴啓賢, 耻齋 洪仁祐, 藥峯 金克一, 聽天 沈守慶, 芝川 黃廷彧, 雪江 趙瑗, 西溪 金鎭, 臨淵 裵三益, 沙潭 金弘敏, 栢巖 金玏 등이다.
    출처 : 유교넷
  • 416617

    識(1927) 45 / 기록자료>고도서 / 황응규
    후손 黃龍漢이 󰡔松澗集󰡕의 간행 과정을 정리한 내용이다. 그 내용의 대략은 아래와 같다. 처음에 家傳原稿를 모아 아들 黃暹이 각 종류별로 분류하여 목록을 만들고, 손수 제목을 쓴 元集 1책을 엮었으나 지금은 전해지지 않는다. 또 표지가 없는 2책이 있었는데, 이는
    출처 : 유교넷
  • 416618

    補遺 46 / 기록자료>고도서 / 황응규
    후손 黃龍漢이 鄭易簡의 편지에 답한 글이다. 황용한이 집의 화재로 영정과 문헌 등이 불타버린 일을 설명하는 글이다.
    출처 : 유교넷
  • 416619

    跋(1927) / 기록자료>고도서 / 황응규
    1927년에 李忠鎬가 쓴 발문이다. 저자의 후손 黃淳永이 찾아와 저자의 遺文이 세월이 지남에 따라 흩어져 전하는 것이 많지 않다는 것과 先父兄들이 󰡔檜山世稿󰡕 중에서 글을 찾아 편집한 것 등으로 책을 판각하고, 이에 자신에게 발문을 부탁했다는 전말을 기록하였다.
    출처 : 유교넷
  • 416620

    遺墨 / 기록자료>고도서 / 황응규
    저자가 친구인 봉화현감 金富倫(字 惇敍)이 눈이 오는데도 찾아준 것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詩로 표현한 것으로, 저자의 친필을 판각한 것이다.
    출처 : 유교넷
  • 416621

    도은집 / 기록자료>고도서 / 권호신
    도은집(陶隱集) 陶隱 權虎臣의 문집. 木活字本, 序: 權相翊(1921), 後識: 金世洛(1921), 2卷 1冊: 四周雙邊, 10行 20字, 註雙行, 上下內向二葉花紋魚尾; 32.5×22.0㎝. 權相翊이 1921년 仲春 旣望에 썼다고 하는 序文에 의하면 󰡔榮州誌
    출처 : 유교넷
  • 416622

    / 기록자료>고도서 / 권호신
    階下黃花盛開且有酒盃以一絶代簡奉邀松陰隴西水西三老,豐基使君李叔平(埈)年兄來訪留宿題一絶於壁上次其韻以謝,附原韻, 歲丁酉趙棐仲(翊)以取幽寂來寓虎坪與近處同年友李太白(㠍)張汝澄(溍)閔肇叔(興業)余及舍弟英甫約榜會於蓀谷菴同宿夜話翌日諸人散歸將別不任黯然之懷贈以四韻.
    출처 : 유교넷
  • 416623

    挽詞 / 기록자료>고도서 / 권호신
    挽栢巖金先生(玏), 挽成芙蓉堂(安義), 挽金察訪(幾善), 挽吳竹牖(澐).
    출처 : 유교넷
  • 416624

    寄兒省吾書 3 / 기록자료>고도서 / 권호신
    아들 省吾(1587~1671)에게 보낸 편지이다. 인편으로 전해온 글을 보고 벼슬길이 무사한 것을 알게 되어 다행이라고 전하면서 집안에는 별일이 없으며, 천연두로 인하여 지난달에 書堂을 그만두기는 하였으나 달리 전염되지는 않았다고 전하고 있다. 그리고 公事에 늘 삼가
    출처 : 유교넷
  • 416625

    寄省兒保寧任所 3 / 기록자료>고도서 / 권호신
    任所인 保寧에 있는 아들 省吾에게 보낸 편지이다. 그간 소식이 없다가 行路가 편안하다는 것을 전해 들었으며, 소식을 접한 날 집안에서 사내아이를 낳아 하루에 두 가지 기쁜 일이 동시에 이르러 기쁘기 그지없다고 하였다. 그리고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는 매우 삼가고 긴밀하
    출처 : 유교넷
  • 416626

    寄保寧 4 / 기록자료>고도서 / 권호신
    保寧에 있는 아들 省吾에게 보낸 편지이다. 지난 12월 26일에 官人이 왔다가 29일 돌아갔으며, 오늘에 이르러서야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고 전하면서 官의 일이 느리고 소홀하다고 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416627

    輓詞 1 / 기록자료>고도서 / 권호신
    丹谷 郭山+晉‧藏菴 金昌祖‧鶴沙 金應祖 등이 쓴 輓詞가 실려 있다.
    출처 : 유교넷
  • 416628

    祭文 1 / 기록자료>고도서 / 권호신
    金應祖(1587~1667)가 1643년(인조 21)에 쓴 祭文이 실려 있다.
    출처 : 유교넷
  • 416629

    行蹟 2 / 기록자료>고도서 / 권호신
    저자의 행적이다. 자세한 내용은 글 앞의 저자 소개에 나와 있다.
    출처 : 유교넷
  • 416630

    實錄 3 / 기록자료>고도서 / 권호신
    저자의 실록이다. 내용은 행적과 비슷하다. 金慶祖‧金延祖‧金應祖‧李汝馦‧李成健‧琴是調‧琴是諧‧李光前‧金念祖‧李光啓‧黃益淸‧張俊南 등 문인들에 대한 기록을 추가하였다.
    출처 : 유교넷
  • 416631

    墓碣銘(幷序) 4 / 기록자료>고도서 / 권호신
    古心 曺挺融(1598~1678)이 쓴 저자의 墓碣銘이다. 내용은 행적과 비슷하다.
    출처 : 유교넷
  • 416632

    闡幽錄 6 / 기록자료>고도서 / 권호신
    丹谷 郭(1568~1633)이 쓴 「闡幽錄」에 수록된 저자의 기록이다. 전해 들은 옛날의 일이 아니라 직접 그 효행을 보고 적은 것이라고 하면서 저자에 대한 행적을 남긴 것이다.
    출처 : 유교넷
  • 416633

    師友錄 8 / 기록자료>고도서 / 권호신
    丹谷 郭山+晉이 쓴 「師友錄」에 수록된 저자의 기록이다. 지극정성으로 부모를 섬겼으며, 특히 병환을 돌보면서 더럽혀진 옷과 이불을 婢僕들을 시키지 않고 직접 세탁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출처 : 유교넷
  • 416634

    陶村聞見錄 8 / 기록자료>고도서 / 권호신
    아들 省吾가 쓴 「陶村聞見錄」이다. 모두 9단락으로 구분되어 있으며, 저자의 행적이 비교적 상세하게 실려 있다.
    출처 : 유교넷
  • 416635

    榮州誌 12 / 기록자료>고도서 / 권호신
    󰡔榮州誌󰡕에 실린 저자의 효행에 관련된 내용을 수록하고 있다. 병든 부친을 정성으로 모셨다는 기록이다.
    출처 : 유교넷
  • 416636

    龜灣耆英祠奉安文 12 / 기록자료>고도서 / 권호신
    古心 曺挺融이 쓴 奉安文이다. 1672년(현종 13) 龜灣書堂의 耆英祠에 모시고 올린 글이다.
    출처 : 유교넷
  • 416637

    常享祝文 12 / 기록자료>고도서 / 권호신
    古心 曺挺融이 쓴 常享祝文이다.
    출처 : 유교넷
  • 416638

    耆英祠上樑文 13 / 기록자료>고도서 / 권호신
    아들인 省吾가 쓴 耆英祠의 上樑文이다.
    출처 : 유교넷
  • 416639

    四先生幷享事蹟 16 / 기록자료>고도서 / 권호신
    松溪 琴‧三松 南舜鰲‧水西 朴‧陶隱 權虎臣 등 네 분을 함께 향사하자고 논의한 것에 대하여 적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416640

    重建上樑文 16 / 기록자료>고도서 / 권호신
    朴施夏가 본래의 위치에서 조금 남쪽으로 이건하고 지은 상량문이다. 지세가 좀 더 넓어진 것 등에 대하여 간략하게 서술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416641

    陞院時告由文 18 / 기록자료>고도서 / 권호신
    大司憲 李世澤(1716~1777)이 쓴 고유문이다. 龜灣書堂이 書院으로 승격된 뒤에 올린 글이다.
    출처 : 유교넷
  • 416642

    陞院禮成祭祝文 18 / 기록자료>고도서 / 권호신
    大司憲 李世澤이 陞院禮를 마치고 제사를 올릴 때 쓴 축문이다.
    출처 : 유교넷
  • 416643

    書院移建後還安祝文 18 / 기록자료>고도서 / 권호신
    大山 李象靖(1710~1781)이 서원을 이건하고 다시 봉안하면서 1781년(정조 5) 9월에 올린 축문이다.
    출처 : 유교넷
  • 416644

    移建時上樑文 18 / 기록자료>고도서 / 권호신
    舂村 李泰春(1704~1785)이 서원을 이건하고 올린 상량문이다.
    출처 : 유교넷
  • 416645

    移建時奉安告由文 20 / 기록자료>고도서 / 권호신
    縣監 權正宅이 서원을 이건하고 봉안할 때 올린 고유문이다.
    출처 : 유교넷
  • 416646

    重修還安文 21 / 기록자료>고도서 / 권호신
    世子翊衛司翊衛를 역임한 晩聞齋 李仁行(1758~1833)이 서원을 이건하고 다시 봉안할 때 올린 글이다.
    출처 : 유교넷
  • 416647

    龜灣創建顚末事蹟 21 / 기록자료>고도서 / 권호신
    龜灣書院을 창건하게 된 전말을 네 단락으로 나누어 날짜와 간략한 내용을 수록하고 있다. 1671년(현종 12) 11월 都有司 權宏董 및 幼學 李成栢과 生員 金聲震 등이 창건에 참여했다는 것을 비롯하여 1709년(숙종 35) 9월 재건하고 1722년(경종 2) 10월과
    출처 : 유교넷
  • 416648

    門人諸賢錄 22 / 기록자료>고도서 / 권호신
    「陶村聞見錄」을 근거로 하여 金慶祖‧金延祖‧金應祖‧李汝馦‧李成健‧琴是調‧琴是諧‧李光前‧金念祖‧李光啓‧權省吾‧黃益淸‧張俊南 등 13명의 문인들을 수록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416649

    附南溪門人錄 23 / 기록자료>고도서 / 권호신
    韓光載의 「家集錄」을 근거로 하여 洪進‧洪迪‧韓應寅‧成泳‧閔應箕‧權斗文‧權虎臣‧權俊臣‧李汝馪‧琴復吉 등 南溪 許忠吉의 문인들을 수록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416650

    附三松門人錄 23 / 기록자료>고도서 / 권호신
    三松 行蹟을 근거로 하여 金蓋國‧朴善長‧權虎臣‧琴復吉‧金九鼎‧李興門‧金榮祖‧朴璥‧朴玉旱‧權俊臣‧孫興慶‧金泰時‧金聲震‧朴檜茂‧黃彦柱‧南衢 등 三松 南舜鰲의 문인들을 수록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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