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逸稿修整小識 25 / 기록자료>고도서 / 권호신六世孫 益休가 저자의 逸稿를 수정하고 쓴 小識이다. 失火로 대부분의 遺文을 잃고 다행히 일부분을 從祖 耕巖公이 수습하기는 하였으나 그 양이 많지 않아서 수십 년 동안 간행되지 못하여 한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행스럽게도 이렇게 1권으로 정리하여 간행하기에 이르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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後叙 26 / 기록자료>고도서 / 권호신權錫耆(1829~?)가 1885년(고종 22)에 쓴 後叙이다. 후손 瑨銖가 遺稿를 정리하고 글을 청하여 지었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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後識 27 / 기록자료>고도서 / 권호신金世洛(1854~1929)이 1921년에 쓴 後識이다. 평소 저자의 글이 뛰어나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遺文이 이렇듯 寂寥하니 어찌 한스럽지 않겠느냐고 하면서 그나마 후손들이 남은 글들을 잘 정리하여 간행하게 되니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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附成均生員自遠堂公墓碣銘 / 기록자료>고도서 / 권호신金應祖가 1646년(인조 24)에 쓴 權俊臣(1561~1642)의 묘갈명이다. 字는 士英이고, 1582년(선조 15) 형인 虎臣과 더불어 司馬試에 합격하였으나 그 뒤로는 擧業에 뜻을 두지 않았다. 醴泉權氏 鎔의 딸과의 사이에 定吾‧審吾‧守吾 등 3남과 3녀를 두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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附正郞東巖公墓碣銘 / 기록자료>고도서 / 권호신葛庵 李玄逸(1627~1704)이 쓴 權省吾(1587~1671)의 묘갈명이다. 字는 子守이고, 號는 東巖이다. 고려시대 太師 幸의 후손으로 曾祖는 期壽이고, 祖父는 寅이며, 부친은 虎臣이다. 어머니는 密陽朴氏의 딸이다. 16세에 이미 文義에 통하였고 26세 때인 16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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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암집 / 기록자료>고도서 / 조릉모암집(慕庵集) 慕庵 趙稜의 문집. 木活字本, 4卷 2冊: 四周雙邊, 半郭 19.9×16.4㎝, 10行 20字, 註雙行, 上下內向二葉花紋魚尾; 28.9×19.9㎝. 序文과 跋文이 전하지 않아서 문집이 언제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文集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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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 기록자료>고도서 / 조릉孤山精舍分韻得精字, 遊三峰山, 伏牛山用前韻, 林將軍, 謝成侯(夏明)寄詩牋, 寓憤, 次鄭君平贈金子挺, 次盧子善伴鶴堂韻, 次杜草堂韻,申子晉以金石弗隨波松栢知歲寒爲韻寄示因次贈,申子晉又以長嘯梁甫吟何時見陽春爲韻寄示因次贈, 山居卽事, 夏日睡, 問無名鳥, 無名鳥答, 寓中戱吟, 詠史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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挽 / 기록자료>고도서 / 조릉蒼石李先生挽,挽東籬金公(允安,二首), 挽洪伯源(二首),挽李大方(榘),挽李混成(大圭), 挽李器哉(二首), 挽成韓山丈, 挽鄭鳳輝(道應), 挽李用賓(身圭), 挽朴敎官(璿, 二首), 挽權次山(坵, 二首), 挽康慶遇, 挽宗丈(立+勻), 挽曺維瞻, 挽黃遠甫, 挽宋儒咸(德溥),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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斥享疏 16 / 기록자료>고도서 / 조릉是非之心은 하늘로부터 받은 것이어서 핍박이나 위협에 변동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하면서 李珥를 文廟에 享祀하도록 한 것이 잘못된 일이라고 지적하고는 일시적으로 일부 선비들에 의해서 논의된 사항을 깊이 통찰하고 엄하게 살펴주시기를 바란다고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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冬至賀箋(代睦地主作) 21 / 기록자료>고도서 / 조릉冬至가 이른 것을 축하하는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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誕日賀箋 22 / 기록자료>고도서 / 조릉생일을 맞이한 것을 축하한다는 내용을 담은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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元朝賀箋 22 / 기록자료>고도서 / 조릉새해의 아침을 맞이하여 지은 축하의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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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景栗(珩) 1 / 기록자료>고도서 / 조릉金珩에게 답한 편지이다. 여러 차례 편지를 받았다고 전하면서 모든 것이 부족하여 가르침을 따를 수 없으나 끊임없이 청하시니 부득이 가르침을 받들겠다고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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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德休(聲久) 1 / 기록자료>고도서 / 조릉金聲久에게 답한 편지이다. 병이 발작하여 세상사 모두 포기하고 탄식뿐이라고 전하면서 新婦가 賢哲하니 萬福이라 병중에도 위안이 된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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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鄭鳳輝 1 / 기록자료>고도서 / 조릉鄭道應(1618∼1667)에게 보낸 편지이다. 齒痛으로 이미 한 달 이상이나 고생을 하고 있다고 하면서 文集 간행과 관련하여 이미 頭緖가 잡혔다고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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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李汝潤(德圭) 2 / 기록자료>고도서 / 조릉李德圭에게 보낸 편지이다. 근래 날씨가 추웠는데 어떻게 지내는지 전하면서 他道에서 書院을 설립하여 退溪선생을 향사하려 한다는 通文에 답변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하여 견해를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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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康慶遇 2 / 기록자료>고도서 / 조릉康慶遇에게 보낸 편지이다. 일전에 보내온 通文의 초안에 대한 견해를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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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康慶遇 3 / 기록자료>고도서 / 조릉康慶遇에게 답한 편지이다. 우리 두 사람이 일을 도모해야 한다는 것은 피하기 어렵다고 하면서 당일 列書한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서 나아간다면 모르겠으나 여러 곳에 흩어져 있으니 어찌 이를 위하여 글을 내고 취합할 수 있겠느냐고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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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康慶遇 3 / 기록자료>고도서 / 조릉康慶遇에게 답한 편지이다. 병증은 줄어들었으나 팔의 통증이 오래되어 하루가 마치 일 년처럼 길게 느껴진다고 하면서 집에 비축해둔 藥이 없어서 한탄스럽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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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或人 3 / 기록자료>고도서 / 조릉李珥를 文廟에 享祀하는 것이 합당치 않다고 올린 글을 비평한 것에 대하여 답변을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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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大任 4 / 기록자료>고도서 / 조릉金大任에게 답한 편지이다. 노년에도 술을 즐기는 것이 부럽다고 하면서 집에 빚은 술이 조금 있어서 일전에 멀리에서 온 손님과 함께 한 잔 했다고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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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曺維瞻 4 / 기록자료>고도서 / 조릉曺維瞻에게 보낸 편지이다. 병으로 杜門不出하고 있다고 하면서 昌寧의 일과 관련하여 동생의 주장에 따라 여러 사람들과 의논하여 물건을 거두어 扶助한 것이니 동생을 심하게 질책하지는 말라고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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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洪景初 5 / 기록자료>고도서 / 조릉洪昇(1612~1688)에게 답한 편지이다. 소식이 끊어진지 오래되었으며, 치통으로 몇 달 동안이나 고생하고 있다고 하면서 愚伏선생의 문집간행과 관련하여 龍興寺로 刊本이 갔으니 다음 달이면 완결될 것이라고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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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洪景初 5 / 기록자료>고도서 / 조릉洪昇에게 답한 편지이다. 늙어 병이 날로 심해지지만 두 곳에서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은 다름이 없을 것이라는 뜻을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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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洪景初 6 / 기록자료>고도서 / 조릉洪昇에게 답한 편지이다. 일전에 天崩의 아픔이 있었다고 전하면서 이제 老病으로 벗들이 함께 모일 기회가 없어 늘 울적하게 지내고 있었는데, 찾아주신다고 하니 심히 바라던 일이라고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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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洪景初 6 / 기록자료>고도서 / 조릉洪昇에게 답한 편지이다. 秋江集3冊은 받았으니 나머지는 초록하여 주고 傳書한 후에는 그 2卷을 함께 돌려 달라고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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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洪景初 7 / 기록자료>고도서 / 조릉洪昇에게 답한 편지이다. 오른쪽 목의 부스럼이 이미 4개월이나 지나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하면서 凁水에서의 모임을 생각하니 興이 일어나기는 하지만 갈 수 있는 筋力이 될지 모르겠다고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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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洪景初 7 / 기록자료>고도서 / 조릉洪昇에게 답한 편지이다. 더위로 인해 설사병이 심각하여 피골이 상접하게 되었다고 하면서 이렇게 어려운 상황이니 앞으로 살아갈 일을 생각하면 막연하여 한 숨이 절로 나는데, 나는 무슨 까닭으로 그대처럼 지내지 못하느냐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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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洪景初 8 / 기록자료>고도서 / 조릉洪昇에게 답한 편지이다. 갑자기 李參奉의 訃音을 듣고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놀랐다고 하면서 남은 날은 많지 않고 몸의 질환이 이와 같으니 건강이 허락한다면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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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洪景初 8 / 기록자료>고도서 / 조릉洪昇에게 답한 편지이다. 上舍 權坵가 내 병이 심하다는 말을 듣고 오려고 하였으나 집안에 천연두를 앓는 사람이 있어서 직접 오지는 못하고 바로 편지를 마련하여 여러 사람을 통해 보낸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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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洪景初 9 / 기록자료>고도서 / 조릉洪昇에게 답한 편지이다. 배를 타고 달구경을 가자고 했던 약속은 病者가 감당할 바가 아니지만, 수년 동안 꿈꾸던 일이라 젊은이들에게 양보할 수가 없어서 병든 몸을 이끌고 나가려고 하니 걱정이 된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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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或人 9 / 기록자료>고도서 / 조릉어제 본 通文의 言辭가 전에 보내온 통문에 비해 禮讓의 풍미가 부족한 것 같으니 그간에 무슨 부득이한 일이 있었는지를 물으면서 學宮의 토지를 扶護하는 일에 대하여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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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提督 10 / 기록자료>고도서 / 조릉提督에게 답한 편지이다. 편지를 받고서도 급히 구두로만 답을 전했다고 하면서 하룻밤 함께 하기로 한 약속에 대하여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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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壻星輝 11 / 기록자료>고도서 / 조릉사위 李星輝에게 답한 편지이다. 부모상을 당한 사위가 보낸 상복과 관련된 질의에 답한 것으로 事親에 있어서 禮에 위배됨이 없게 하는 것이 가장 필요하다고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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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孫壻李思仁 11 / 기록자료>고도서 / 조릉孫壻 李思仁에게 답한 편지이다. 전에 보내준 글은 여러 번 받았으나 병으로 사람의 도리를 다하지 못했다고 하면서 눈과 귀가 어두워진 지 이미 오래되어 글조차 이루기 어려운 상태를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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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伯兒啓胤 11 / 기록자료>고도서 / 조릉큰아들 啓胤에게 보낸 편지이다. 舍館에 자리는 잡았는지 걱정이 된다고 전하면서 여럿이 모이는 자리에서는 말을 조심하라고 당부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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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伯兒 11 / 기록자료>고도서 / 조릉큰아들 啓胤에게 답한 편지이다. 城主의 일은 비록 前規가 없기는 하지만 禮에 부합되는 것 같다는 견해를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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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次兒大胤 12 / 기록자료>고도서 / 조릉둘째아들 大胤에게 답한 편지이다. 群居의 유익함을 전하면서 단정히 독서에 힘쓰도록 당부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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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次兒 12 / 기록자료>고도서 / 조릉둘째아들 大胤에게 보낸 편지이다. 물조차도 마시지 않는다는 소식을 듣고 죽이라도 먹고 母喪을 잘 치르도록 하라고 당부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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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次兒 12 / 기록자료>고도서 / 조릉둘째아들 大胤에게 답한 편지이다. 책읽기를 좋아한다니 위로가 된다고 하면서 始終 변치 말라고 당부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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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次兒 12 / 기록자료>고도서 / 조릉둘째아들 大胤에게 보낸 편지이다. 더운 날씨에 숙식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고 하면서 병이라도 얻은 것은 아닌지 염려된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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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次兒 12 / 기록자료>고도서 / 조릉둘째아들 大胤에게 보낸 편지이다. 소식을 듣고 위로가 되었으며, 어제 저녁에 寓居로 돌아와 調攝할 계획이라고 하면서 群居의 유익함을 전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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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列邑書院文(道南洞主時) 13 / 기록자료>고도서 / 조릉道南書院의 洞主로 있을 때 지은 글이다. 1660년(현종 1) 가을 도남서원 강당의 화재로 수많은 책이 재로 변했다고 하면서 여러 邑의 서원에 여분의 서책이 있다면 보내줄 것을 요청한 通文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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呈道伯狀 13 / 기록자료>고도서 / 조릉道南書院 강당의 화재로 수많은 책이 재로 변했다고 하면서 도에서 옛날 펴낸 서책이나 새로운 서책을 보내달라고 요청한 狀啓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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呈道伯狀 15 / 기록자료>고도서 / 조릉丹密縣 북쪽에 있는 ‘大堤’라는 못의 제방이 붕괴되었는데 조정에서 그 지역 일부를 鄕校의 學田으로 허가해 주었다. 때문에 1643년(인조 21) 제방을 수리하고 물을 가두었을 때 물이 미치지 않는 땅을 향교에서 옛날처럼 경작을 하였으나, 올 봄에 堤堰司가 경작을 금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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呈牧伯狀 17 / 기록자료>고도서 / 조릉興學을 위해서 伍軍에 묶여 있고 官廳의 소송에 걸려 있는 4명을 書堂으로 還屬시켜 줄 것을 요청한 狀啓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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歸馬華山頌(幷序) 18 / 기록자료>고도서 / 조릉武王이 姜太公의 계책에 따라 商을 정벌하고 다시는 전쟁을 일으키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기 위하여 말을 華山의 남쪽지방으로 돌려보냈다는 고사를 인용하여 나라가 안정된 뒤에 태평성대가 지속되기를 바라는 의미를 담아 지은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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平有扈頌(幷序) 19 / 기록자료>고도서 / 조릉啓가 禹를 계승하자 有扈가 반란을 일으키니 六軍을 거느리고 이를 평정하였다는 고사를 인용하여 나라가 태평할 때에도 군비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를 전하고자 지은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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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金景栗(珩)文 21 / 기록자료>고도서 / 조릉金珩에게 올리는 祭文이다. 안으로는 강건하고 밖으로는 엄하였으며, 言行은 준엄하여 일찍이 參政하였으니 그 웅건한 재주와 그릇이 크고 넓어서 더불어 경쟁할 만한 사람이 없었다고 전하면서 세상을 떠난 슬픔을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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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鄭鳳輝文 21 / 기록자료>고도서 / 조릉鄭道應(1618∼1667)에게 올리는 祭文이다. 字는 鳳輝이고, 本貫은 晋州이다. 1649년(인조 27) 遺逸로 천거되어 교관을 거쳐 大君師傅가 되고 1658년(효종 9) 諮議에 이르렀다. 16세에 그의 조부 愚伏 鄭經世(1563~1633)의 喪을 당하여 모든 儀節을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