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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416751

    咸昌鄕校聖廟重刱上樑文 38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해
    咸昌鄕校의 聖廟를 중창한 상량문이다. 각 고을에 鄕序와 校黨 그리고 大小塾을 두고 봄에는 경전을 암송하고, 여름에는 禮를 익히고 겨울에는 시를 지은 방식대로 하여 四戶三門을 만들고 古禮에 따라 上榮下霤의 규정을 준수하였다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416752

    近嵒書院門樓重刱上樑文 40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해
    近嵒書院 門樓를 중창한 상량문이다. 문루를 전에 보다 조금 크게 해서 들어가고 나가는데 여유가 있도록 하고 앉았다가 일어남에 방해되지 않도록 하였으며, 軒의 창문도 크게 열어 달빛을 많이 받도록 하였다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416753

    台庄齋舍上樑文 42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해
    서후면 태장리에 있는 台庄齋舍를 지으면서 올린 상량문이다. 시조인 김선평을 추모하는 의미에서 재사를 지었지만 짓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더 어려우니 후세까지 전해지도록 관리를 잘하자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416754

    蜃樓上樑文 44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해
    蜃樓의 상량문이다. 黃鶴樓가 없음을 한탄하다가 瑞光과 瑞氣가 가득한 훌륭한 곳에 터를 잡고 누를 지었음을 언급하면서 다만 瓊楣에 무늬가 없고 玉樓에 색깔이 없는 것이 한스럽다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416755

    玉成書院月澗李先生常享祝文 46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해
    玉成書院에 배향된 月澗 李㙉에게 올린 상향축문이다.
    출처 : 유교넷
  • 416756

    近嵒書院常享祝文 46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해
    近嵒書院에 배향된 漢陰 李德馨, 沙潭 金弘敏, 木齋 洪汝河의 덕을 기리는 축문이다.
    출처 : 유교넷
  • 416757

    忠烈祠奉安文 46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해
    忠烈祠에 봉안된 사람들의 충과 열을 기리는 글이다. 이들은 임진왜란 때 捨生取義의 一念으로 衆寡不敵인 상황에서 성을 지키다가 죽었는가 하면, 적진을 뚫고 6년간 무탈하게 고을을 지키면서 백성들의 衣食住를 해결을 위해 성심을 다한 이들도 있었다. 현존하는 상주 충열사가
    출처 : 유교넷
  • 416758

    祭高參奉汝含文 47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해
    參奉 高世章을 제사지내는 글이다. 고세장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字는 汝含이고, 號는 浪翁이며, 本貫은 開城이다. 풍기군수를 지낸 泰村 高尙顔의 손자이며 承仕郞을 지낸 高爾齡의 아들이다. 1673년(현종14) 式年試에서 進士 3등 42위로 합격하였다. 道南書院 請額疏
    출처 : 유교넷
  • 416759

    祭金相(壽興)文 48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해
    淸陰 金尙憲의 손자인 退憂堂 金壽興(1626 ~1690)이 가풍을 이어 백성들에게 베푼 치적과 덕행을 기리는 제문이다.
    출처 : 유교넷
  • 416760

    祭伯舅文 48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해
    어머니의 첫째 동생인 큰 외삼촌의 小祥을 맞아 지은 제문이다. 9형제 중 둘째로 태어난 외삼촌은 첫째인 어머니와 6살 차이가 나지만 두 사람은 유달리 우애가 깊었으며, 다른 형제들에 비해 오래 살았음을 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416761

    祭蔡進士(棐彦)文 50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해
    生前에 함께 술을 마시고 시를 읊조리면서 회포를 풀던 친구인 蔡棐彦의 죽음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416762

    祭權應物文 50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해
    權應物을 제사지내는 글이다. 친구 사이인 둘은 󰡔周易󰡕에서 말한 三同而二異의 관계인데, 三同은 나이가 같고 마음이 같고 궁핍한 것이 같으며, 두 가지 다른 것은 禍福과 存沒이 다르다는 말을 하면서, 權應物의 증조부 松巢 權宇와 저자의 외증조부 芝軒 鄭士誠은 함께
    출처 : 유교넷
  • 416763

    祭金槐山(南一)文 52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해
    從姪인 金萬績을 대신해서 지은 제문으로 槐山郡守를 역임한 金南一의 죽음을 애통해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416764

    祭伯從文 53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해
    큰 종형의 죽음을 애통해하는 글이다. 종형이 살아 있을 때는 자신의 잘못을 바로잡아 주고 자신의 어리석음을 책망했는데, 이제 더 이상 이승에서 만날 수가 없어 매우 안타깝다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416765

    前溪橋梁造成時祭文 54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해
    앞에 흐르는 개울에 교량이 완공되어 지은 제문이다. 그동안 배를 타고 건너던 어려움이 있었는데, 이제 교량이 완공되어 우마와 장사치들이 자유롭게 왕래하고 이웃 마을과도 교통이 원활하게 되었음을 감사하게 여기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416766

    問王政策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해
    王政에 관한 물음에 답한 策文이다. 王政은 道德과 仁義로 이루어지며 󰡔中庸󰡕의 九經과 「洪範」의 八政이 그 요체임을 강조하고 나서, 왕정은 문왕과 같은 덕을 닦아 실천하는 것임을 주장하였다. 또 지금 조정의 租稅‧官吏‧關市‧澤梁 등의 정책 등에서 실천하고, 문왕의
    출처 : 유교넷
  • 416767

    習用干戈論 6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해
    병기의 사용법을 익히는 것에 관해 논한 글이다. 병기는 軒轅氏가 만든 것으로 덕화가 되지 않을 때 사용하던 것이므로, 병기가 사람을 죽이고 해친다는 것만을 보고 도적을 토벌할 경우에 병기를 사용해야 한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됨을 역설한 글이다.
    출처 : 유교넷
  • 416768

    近嵒書院追享時呈牧伯文 9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해
    沙潭 金弘敏과 木齋 洪汝河를 追享할 때 牧使에게 보낸 글이다. 한 고을에서 태어나 후학의 존경을 받는 金弘敏과 洪汝河를 제사지내려 하지만 국가의 금령이 있어서 별도로 하지는 못하고 李德馨을 모신 近嵒書院에 合祀하려 한다고 보고하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416769

    修禊所呈文 10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해
    山陽縣의 修禊所에 현판을 내려달라고 진정한 글이다.
    출처 : 유교넷
  • 416770

    三綱洞碑閣建呈文 12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해
    三綱洞에 碑閣을 세워주도록 진정한 글이다. 삼강동의 충신과 효자와 열녀 일곱 분의 비각과 비석을 세우려 하는데, 남녀를 한 곳에 모실 수 없으므로 각각 비각을 세울 수 있도록 조정에 알려 도와 달라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416771

    太師廟爵獻釐正再度呈文 13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해
    안동 甁山전투에서 왕건을 도와 견훤의 군대를 물리친 삼태사(金宣平‧權幸‧張吉)를 모신 太師廟의 爵獻 순서를 시정해 줄 것을 다시 청한 글이다. 저자는 󰡔東史纂要󰡕에 나오는 내용들을 인용하면서 당시 古昌(현 안동)의 城主는 김선평이었고 왕건이 김선평에게는 大匡의 벼
    출처 : 유교넷
  • 416772

    節士申公立祠通文 18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해
    임진왜란 때 왜적과 항전하다가 전사한 申吉元(1548~1592)의 절의를 숭상하여 祠堂을 세워야 한다는 내용의 통문이다. 신길원은 1590년(선조 23) 聞慶縣監으로 부임하여 선정을 베풀었으며,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 왜군이 관내에 쳐들어오자 관병 수십 명을 이
    출처 : 유교넷
  • 416773

    止淵金公墓碣銘(幷序) 19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해
    止淵 金遠振(1559~1641)의 묘갈명이다. 字는 士宣이고, 本貫은 商山이다. 父는 工曹正郞에 증직된 辶+頊이며, 母는 直長을 지낸 孫澤의 딸이다. 1606년(선조 39)에 생원시에 합격하고, 학행으로 뛰어났으나 산림에 묻혀 여생을 보냈다. 아주신씨 士人 弘俊의 딸
    출처 : 유교넷
  • 416774

    先考府君墓碣銘(幷序) 21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해
    저자의 아버지 金光灝(1602~1668)의 묘갈명이다. 字는 浩源이고, 父는 생원 士得이며, 母는 장수황씨 贄의 딸이다. 13세에 四書三經에 통달했으며, 15세에 「朝鮮邑號賦」를 지을 정도로 文才가 뛰어났으나 과거에는 합격하지 못했다. 부인은 淸州鄭氏(1605~168
    출처 : 유교넷
  • 416775

    祖妣黃氏墓誌 22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해
    저자의 祖母 黃氏(1562~1625)의 墓誌이다. 父는 通禮院引儀(종6품)를 지낸 贄이고, 母는 平山申氏로 世寶의 딸이다. 19세에 저자의 조부인 士得에게 시집가서 3남 2녀를 두었다. 장남 光潤은 어려서부터 文才가 있었으나 장가도 들지 못한 채 夭折하였고, 차남은
    출처 : 유교넷
  • 416776

    先考府君墓誌 23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해
    저자의 아버지 金光灝의 墓誌다. 내용은 앞의 묘갈명에 자세하다.
    출처 : 유교넷
  • 416777

    行狀 24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해
    立齋 鄭宗魯(1738~1816)가 지은 저자의 行狀이다. 내용은 앞의 저자소개에 자세하다.
    출처 : 유교넷
  • 416778

    墓碣銘 26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해
    淸臺 權相一(1679~1759)이 지은 저자의 墓碣銘이다. 내용은 앞의 저자소개에 자세하다.
    출처 : 유교넷
  • 416779

    성서집 / 기록자료>고도서 / 이상언
    성서집(城西集) 城西 李尙彦의 문집. 石印本, 序:鄭宗鎬, 跋: 金晦鎭(1955)‧李雲頀‧李進頀, 6卷 3冊: 四周雙邊, 半郭 20.3× 14.2㎝, 有界, 10行 20字, 上下向二葉花紋魚尾; 30.3× 20.8㎝. 후손 李雲頀가 저자가 남긴 원고를 수집하여 간행
    출처 : 유교넷
  • 416780

    / 기록자료>고도서 / 이상언
    次李晦叟山居壁上韻(四五六七言),次尹應三(湯聘)壁上韻(二首),次李丈(景白)賞心軒韻,新巖敬次退溪先生韻,送李學士(光胤)南行,次李德叟船遊韻(二首),見龜城娥有感(幷序), 次黃德游寒泉精舍韻(二首), 次盆梅韻, 次萬松堂十二韻, 朴詹伯新居次李器成(元圭)韻, 詠懷(二首), 次孫正(必
    출처 : 유교넷
  • 41678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상언
    山居卽事, 寒食有感, 感懷(二首), 上野臺, 夜坐有賦, 閑居偶題(二首), 王考諱日有感, 雪積, 元日帖門(二首), 春帖(二首), 秋興, 寓庄夜坐, 記興(二首), 獨坐偶吟, 寄韓都事, 春日有感, 獨坐感詩, 苦懷, 謾興, 自笑, 述懷(二首), 秋夜有感, 秋懷, 種柿結實已熟
    출처 : 유교넷
  • 41678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상언
    詠史(太公, 夷齊, 屈原, 伍員, 申生, 豫讓, 扶蘇, 蒙恬, 四皓, 項籍, 外黃兒, 韓信, 張良, 賈誼, 朱雲, 蕭望之, 王嘉, 馬援, 龔勝, 薛方, 楊雄, 申屠蟠, 楊彪, 臧洪, 諸葛亮, 陶潛, 謝朏, 沈約, 沈攸之, 斛律光, 魏徵, 張九齡, 狄仁傑, 五王, 岳飛
    출처 : 유교넷
  • 416783

    關東錄 / 기록자료>고도서 / 이상언
    出東門有感, 途中, 檜巖寺, 望寶盖山, 長安寺, 宿松蘿菴, 次梅月堂韻, 到楡店寺, 萬瀑洞, 題降仙亭, 洛山寺觀月出,山中獨行忽聞水邊有人聲往見之則有兩人對酌貌甚寬閒余雖未能飮强到數盃爲賦一律白樹書之,與山人普應下山至豐巖李廣文之元家宿草堂明日普應還山書以贈之, 次壁上韻, 寓九淵洞小菴
    출처 : 유교넷
  • 416784

    與韓而恕(忠彦,1655) 30 / 기록자료>고도서 / 이상언
    韓忠彦에게 보낸 편지이다. 한충언은 호가 明谷이고, 許穆의 문인이다. 병자호란의 치욕을 듣자 저서를 불사르고 두문불출하였다. 편지에서 먼저 계씨의 초상에 대해 애통한 심정을 토로하였다. 그리고 집안에 혼례가 있어서 물감[水柿]을 구하고 있는데, 좀 보내주기를 부탁하는
    출처 : 유교넷
  • 416785

    與趙應敎(威鳳,1662) 30 / 기록자료>고도서 / 이상언
    趙威鳳에게 보낸 편지이다. 1659년(효종 10)에 만났다가 이별할 때에는 다음해 봄에 다시 찾아오리라 기약했으나, 질병과 우환이 있어서 의도와는 달리 어기게 되었다고 했다. 춘부장 趙絅이 지은 조부의 墓誌銘을 읽고 감격했다고 하였다. 大人君子의 손을 빌어 조부의
    출처 : 유교넷
  • 416786

    與權壽甫(鼈) 3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상언
    權鼈(1589~1671)에게 보낸 편지이다. 권별은 본관이 醴泉, 자는 壽甫, 호는 竹所이다. 權文海의 아들이다. 아버지의 학통을 계승하여 성리학을 연구하면서 檀君朝鮮부터 고려 말까지의 왕실 사적과 光海君 이전까지의 인물 1,074명에 대한 列傳을 집대성한 󰡔海東雜
    출처 : 유교넷
  • 416787

    與鄕校諸生 3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상언
    향교의 여러 유생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本郡의 고질적 병폐는 선비의 기풍이 더욱 심하여, 어질고 두터우며 친밀하고 화목한 의리가 없고, 다투고 힐난하는 그릇된 점이 있는 것이라 하였다. 먼저 향교의 임원에 대한 운영상의 문제점을 지적하였고, 다음은 서원의 제향에 대해
    출처 : 유교넷
  • 416788

    又 3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상언
    향교의 여러 유생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향교의 규율을 적용하여 벌은 공정하면서도 엄격하게 적용하겠다고 하였다. 李抉雲과 李炫의 처결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출처 : 유교넷
  • 416789

    兵使到界禮狀 3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상언
    병마절도사가 경계에 도착하였을 때 올린 禮狀이다. 위엄스런 의장대를 앞세우고 병마절도사가 도착하니, 약속을 엄밀하게 지키고 제갈량처럼 군사를 조련하겠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416790

    本郡鄕選題辭 3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상언
    본군 鄕試에 선발된 자를 품평한 글이다. 權昌震은 才器가 일찍 이루어졌고 학식이 있다. 典故에 매우 능숙하여 여러 가지 업무를 종합하여 잘 처리하여 향당에서 추앙하고 존중하는 자라고 하였다. 朴施雨는 정밀하고 강직한 자질로 문예를 성취하였고, 시행하는 일마다 옳지
    출처 : 유교넷
  • 416791

    廣西記事 3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상언
    鷄林君 李興商(?∼1465)의 묘소가 廣州 下西道 栍伊里에 있는데 저자가 그 곳에 갔던 일을 기록한 것이다. 이흥상은 蔭補로 判繕工監事 등을 지냈고, 1453년(단종 1)에 義禁府鎭撫로 癸酉靖難에 공을 세워 靖難功臣 3등이 되었고 中樞院副使에 올랐으며 鷄林君이 되었다
    출처 : 유교넷
  • 416792

    報巡營文(1664,宰咸安時) 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상언
    咸安군수 시절에 巡營에 보고한 글이다. 趙任道(1585~1664)가 죽자 조정에 알려 賻儀를 내려 달라고 청한 것이다. 조임도는 본관이 咸安, 자는 德勇, 호는 澗松堂이다. 군에 거주하는 趙任道의 인품과 학문은 이웃 고을의 士友들도 숭앙하였고, 당시 文穆公 鄭逑선생
    출처 : 유교넷
  • 416793

    呈府伯文(代安東儒生作) 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상언
    안동부사에게 올리는 글로 안동의 유생들을 대신하여 지었다. 本郡의 裵晉龜의 효행을 진달하여 旌閭를 청한 글이다. 증조모가 병들었을 때 정성을 다해 간호하였으며, 아비가 痰眩症으로 쓰러져 기절하였을 때 斷指하여 소생시켰다고 하였다. 어려운 가정형편에 봉양을 극진하게
    출처 : 유교넷
  • 416794

    呈巡營文(代郡民作) 6 / 기록자료>고도서 / 이상언
    巡營에 올리는 글로 郡民을 대신하여 지었다. 선정을 베푼 안동부사가 임기가 만료되자, 유임을 청하는 글이다. 朴郡守는 성품이 어질고 덕이 있어 백성을 사랑하기를 부모가 자식을 돌보는 것과 같이 하였으며, 가뭄이 들었을 때 어려움을 잘 넘겨 온 고을이 편안하게 지낼
    출처 : 유교넷
  • 416795

    栢麓里社廟宇上樑文 7 / 기록자료>고도서 / 이상언
    栢麓里社의 사당을 지을 때의 上樑文이다. 백록리사는 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 해저리에 있었던 사당으로 1652년(효종 3)에 세웠다. 상량한 후에 유학이 일어나고 훌륭한 인재가 나오며, 성대한 덕이 배양되는 곳이 되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416796

    三峯書院合享溫溪李先生奉安文 9 / 기록자료>고도서 / 이상언
    三峯書院에 溫溪李先生을 合享하기 위해 위패를 奉安하는 글이다. 三峯書院은 1654년(효종 5) 영주에 創建하였고, 三路 金爾音‧溫溪 李瀣‧金盖國‧金隆 등 四賢을 제향하고 있다. 李瀣(1496∼1550)는 자가 景明, 호는 溫溪, 본관은 眞城.이다. 1528년(중종
    출처 : 유교넷
  • 416797

    榮川 鄕賢祠(1645년에 건립)에 忘窩 金榮祖(1577~1648)를 合享하기 위해 위패를 奉安한 글이다. 후에 龜江書院으로 승격되었다. 金榮祖는 자가 孝仲, 호는 忘窩, 본관은 豐山이다. 1612년(광해군 4) 增廣文科에 급제하고, 承文院正字를 거쳐 典籍에 승진하였
    출처 : 유교넷
  • 416798

    常享祝文 10 / 기록자료>고도서 / 이상언
    향사할 때 항상 사용하는 축문이다. “영특하고 밝은 그릇이요 강직하고 바르게 지켰네. 맑고 깨끗하게 지켜 우리 후배들에게 열어 주었네.”라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416799

    曾祖考禦侮將軍府君墓立石告由文 1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상언
    曾祖考 李竣의 묘에 비석을 세울 때 올린 告由文이다. 조부 李介立의 숙원이었던 증조부의 묘비를 이제 세우게 되었다고 하였다. 영령께서는 특별히 나약한 자손을 불쌍히 여기시고, 선조의 뜻에 부합하도록 길이 비석을 보호하여 훼손되지 않도록 해 달라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416800

    城機修築時告城隍文(宰咸安時) 1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상언
    城機를 수축하고 城隍神에게 고하는 글로 함안군수로 있을 때 지은 것이다. 神은 사람에게 의지하고 사람은 성곽에 붙으니, 사람이 진실로 안정되지 못하면 神 또한 어디에도 의탁할 곳이 없을 것이라 하였다. 성곽이 무너지고 변하였기 때문에 왕명을 받들어 좋은 날을 받아서
    출처 : 유교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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