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城門立柱祝文 1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상언성문 기둥 세운 것에 대한 祝文이다. 성첩을 이루고 사대문에 기둥을 세우니, 길이 경사스러운 일을 내려주고 상서롭지 못한 일은 꾸짖어 사라지게 해 달라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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榮華山祈雨祝文(1641,代地主作) 1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상언榮華山에서 祈雨祭를 올릴 때의 祝文으로, 군수를 대신하여 지었다. 오랜 가뭄으로 보리가 마르고 벼가 말라서 불쌍한 백성들은 모두 굶주려 병이 들 것이라 하였다. 가랑비가 잠시 내렸으나 끓는 솥을 적실 수도 없을 정도였다고 하였다. 정성은 보잘 것 없지만 성대한 비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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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城祈雨祝文(1641,代地主作) 13 / 기록자료>고도서 / 이상언山城에서 祈雨祭를 올릴 때의 祝文으로, 군수를 대신하여 지었다. 농사는 때가 있으니, 지금이 가장 시급하다고 하였다. 보리는 이삭을 맺고 벼는 싹이 나려고 하며, 뽕나무와 삼이 왕성하려고 하는데 滋養이 없으면 어떻게 생장하겠는가라고 하였다. 이제 비오는 시기가 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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悟理洞新居地神告由文(1644) 1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상언悟理洞 새 집터의 토지신에게 고유한 글이다. 그윽하고 고요한 곳에서 여생을 즐기려고 行義山 悟理洞에 자리 잡았다고 하였다. 바위로 문을 막고 샘물을 정원에 끌어대고, 몇 칸 집을 지으니 지낼 만하다고 하였다. 이제 신이 도우시고 더욱 엄하게 보호해 주시어, 맹수가 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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穿井告由文(宰㫌善時) 1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상언우물을 팔 때 올린 告由文으로 㫌善郡守로 있을 때 지은 것이다. 홍수가 지나고 난 다음 모래와 돌이 가득 쌓여 언덕을 이루어 우물이 막혀버려서, 백성들은 목이 말라도 인근에서 물을 구할 수 없었다고 하였다. 그래서 새 관아의 동쪽, 公館의 북쪽에 땅을 열어서 공사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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穿井再告由 15 / 기록자료>고도서 / 이상언우물을 팔 때 두 번째 올린 告由文이다. 고을 사람들이 마음을 모으고 힘을 모아 우물을 팠는데, 물이 나오지 않아 다시 파게 되었다고 하였다. 水神(水伯)으로 하여금 물길을 나누고 黃媼을 인도하여 물길을 열게 해달라고 하였다. 이것은 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니, 많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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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先祖考靖難功臣襄僖公府君墓文 16 / 기록자료>고도서 / 이상언先祖 靖難功臣 襄僖公 李興商의 묘에 올린 祭文이다. 총명하고 민첩한 재주로 관직은 낮은 것을 싫어하지 않고 번거로운 일을 사양하지 않았으며, 근실하게 충성스러웠고 높은 지위에 있었으나 겸손하였다고 하였다. 세조를 도와 막힌 것을 틔워서 공적이 社稷에 남았고 후손에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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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五代祖考大護軍府君墓文 17 / 기록자료>고도서 / 이상언五代祖 大護軍의 묘에 올린 祭文으로 1657년(효종 8)에 지은 것이다. 선대의 사적은 家譜에 실려 있지만 영남으로 내려온 후 제사가 이어지지 못했다고 하였다. 조정에 벼슬하면서 길이 지나게 되고 혹은 산 아래를 지나면서도 진위를 알 수 없었다고 한다. 다행히 同宗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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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忘窩金公文 17 / 기록자료>고도서 / 이상언忘窩 金榮祖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小祥이 문득 다가오니 모습은 비록 멀어졌으나 그리움이 더욱 간절하다고 하였다. 지난번 昏朝(광해군) 때에 윤리가 날마다 무너졌을 때 크게 논의를 펼쳐 한 번 주장하였으며, 눈썹을 치켜뜨고 아침에 달려가고 저녁에 나아 갔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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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鶴沙金公文 18 / 기록자료>고도서 / 이상언鶴沙 金應祖(1587~1667)의 제사에 올리는 글이다. 金應祖는 자가 孝徵, 호는 鶴沙, 본관은 豐山이다. 西厓 柳誠龍과 旅軒 張顯光의 문인이다. 1613년(광해군 5)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나, 광해조 때 입사할 뜻을 두지 않고 爲己之學에 힘썼다. 1623년(인조 1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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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代義山書院儒生作) 19 / 기록자료>고도서 / 이상언鶴沙 金應祖의 제사에 올리는 글로 義山書院의 儒生들을 대신하여 지었다. 세월이 흘러 大祥이 다시 다가오니 산이 무너지는 듯한 애통함이 더욱 깊다고 하였다. 이 의산서원은 공이 경영하여 건립한 것으로, 도산서원의 學規에 따라 선비를 양성하였다고 하였다. 온 사림이 공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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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沈城主德祖(長世)文 19 / 기록자료>고도서 / 이상언城主인 沈長世(1594~1660)의 제사에 올리는 글이다. 심장세는 본관이 靑松, 자는 德祖, 호는 覺今堂이다. 李适의 난이 일어나자 임금을 호종해서 禁府都事가 되었으며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강화도까지 扈駕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봉화에 와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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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朴上舍文 20 / 기록자료>고도서 / 이상언朴上舍의 제사에 올리는 글이다. 고상한 절개를 지켜 향당에서 추숭 받았고,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그 재주를 다 편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팔순에도 강건하여 백세를 기다렸더니 한 번 병에 걸려 세상을 마쳤다고 하였다. 저자는 객지에 있다가 돌아오니 벌써 小祥이 지났으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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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水雲朴丈文 2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상언水雲 朴丈의 제사에 올리는 글이다. 부친과 같은 해에 태어났기 때문에 부친을 여읜 후로 부친처럼 존경하였다고 하였다. 늙어서도 양친을 잘 모셨으며 선조의 碑碣을 손수 세웠으며, 가난하고 의지할 데 없는 사람을 잘 보살폈다고 하였다. 덕을 쌓고 장수를 누렸으니 五福 중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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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全善山子綏文 2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상언全益禧(1598~1659)의 제사에 올리는 글이다. 全益禧는 자가 子綏, 호는 雪月堂‧望日堂, 본관은 沃川이다. 愚伏 鄭經世의 문인으로 문과 급제하였고, 正言‧司憲府持平‧봉산군수‧善山府使를 역임하였다. 正言으로 재직 당시 金自點의 죄를 탄핵하다가 북방 외직으로 좌천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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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張上舍得卿(龍遇)文 2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상언張龍遇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伊山舊院에서 만나 형제의 義를 맺은 지 46년이 되었다고 하였다. 올해 늦봄에 草谷에 모였는데, 공이 가장 늦게 도착하였고 초췌한 모습이 예전과 달랐다. 공은 웃으며 “가난은 병이 아니고, 조카를 만나니 다행이다. 새로 은혜 받은 경사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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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金遜卿文 23 / 기록자료>고도서 / 이상언金時敏(1578~?)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遜卿은 그의 字이고, 호는 一忄+龍齋, 本貫은 豊山, 忘窩 金榮祖의 아들이고, 鶴峯 金誠一은 외조부이다. 壽職으로 繕工監役이 되었다. 부친 忘窩의 청백함과 학봉 김성일의 風烈을 한 몸에 모았다고 하였다. 어려서부터 이미 老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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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伯氏追齋公文 2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상언伯氏 李崇彦(1592∼1666)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李崇彦의 자는 容伯, 호는 追齋·晩醒이다. 1617년(광해군 9)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1631년(인조 9) 문과에 급제하였다. 成均典籍‧淮陽都護府使‧寶城郡守 등을 역임하였다. 세월은 빠르게 흘러 大祥이 돌아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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悼亡兒宣意文 2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상언죽은 아들 李宣意를 애도하는 글이다. 19년 동안 사랑했던 마음을 가지고, 4~5개월 눈물로 보낸 고통을 너는 이미 알 것이라고 하였다. 하늘이 내리신 수명에 장단이 있으나 아침에 마주하여 밥 먹고 오전에 갑자기 떠날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라고 하였다. 너의 이름을 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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忠奴金福永訣文 26 / 기록자료>고도서 / 이상언충직한 노복 金福永을 永訣하는 글이다. 너의 智慮와 너의 忠勤은 士大夫 중에서도 쉽게 찾을 수 없으나, 천예의 족속에서 태어나 끝내 불행하였다고 하였다. 재주 없는 주인을 만나 이미 너의 추위와 굶주림을 구하지 못하였고, 노쇠한 지경에서도 또한 네가 눈 감는 것을 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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萬松居士李公墓碣銘 28 / 기록자료>고도서 / 이상언李老一(1600~1665)의 묘갈명이다. 공은 휘가 老一, 자는 五元, 본관은 加平이다. 부친이 노년에 아들 하나를 얻었다 하여 ‘老一’로 이름을 지어 기쁨을 기념하였다고 한다. 모친의 의롭고 방정하라는 가르침을 받들어 스승을 좇아 학문에 힘쓰고 입신양명하는 데 뜻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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嘉善大夫漢城府右尹鶴沙先生金公行狀 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상언鶴沙 金應祖(1587~1667)의 행장이다. 자는 孝微이고, 본관은 豊山이다. 虛白堂 金楊震의 증손인 悠然堂 金大賢의 아홉 자제 중 여섯째 아들이다. 16세 때 부친을 여의고 줄곧 백형(奉祖)의 훈도를 받으며 성장하였다. 權斗文·權虎臣에게 글을 배우고, 17세 때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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容巖權公行狀 3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상언容巖 權國柱(1597~1657)의 행장이다. 공은 자가 公立, 호는 容巖, 본관은 醴泉이다. 1597년(선조 30) 普門의 文巖에서 태어났다. 10세에 스승을 모시고 수학하였고, 제자백가에 능통하였으며, 특히 書法에 뛰어났다. 공은 너그러운 성품과 방정한 태도로 훌륭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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祖考省吾堂先生家狀 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상언조부 李介立(1546∼1625)의 家狀이다. 자는 大中, 호는 省吾臺·櫟峯, 본관은 慶州, 禦侮將軍 竣의 아들이다. 金誠一의 문인이다. 지보면 대죽리에서 태어나 용문면 하금곡리로 옮겨 살았다. 1567년(명종 22)에 진사가 되었고, 부모 병환에는 대변 맛을 보아 병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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宜人東萊鄭氏家狀 19 / 기록자료>고도서 / 이상언부인 宜人 東萊鄭氏(1596~1634)의 家狀이다. 의인은 어릴 적부터 아름답고 유순하였으며, 부모의 뜻을 잘 따랐다. 성품이 영민하고 식견이 있었다. 출가하여서는 상자에 소장하고 있던 것을 아끼지 아니하고 팔아서 토지를 마련하여 부군이 공부에 힘쓰도록 하였다. 농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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家狀(1704) 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상언손자 李華翊이 쓴 가장으로 자세한 내용은 앞의 저자 소개에 나와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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墓碣銘(幷叙) 6 / 기록자료>고도서 / 이상언權相圭가 쓴 저자의 묘갈명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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輓詞 8 / 기록자료>고도서 / 이상언洪汝河, 李玄逸, 金賓+灬, 權晩, 李希楙가 쓴 만사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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贈遺 9 / 기록자료>고도서 / 이상언鶴沙 金應祖의 詩 3수, 六友堂 朴檜茂의 詩 2수, 權國梁의 詩가 실려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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跋(1955) 10 / 기록자료>고도서 / 이상언1955년에 鄕後生 宣城 金晦鎭이 썼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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跋 1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상언10대손 李雲頀가 썼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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跋 1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상언10대손 李進頀가 썼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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丁酉生同庚案序(1853) / 기록자료>고도서 / 이상언1853년(철종 4)에金洙根(1798~1854)이 쓴 글로, 저자 이상언과 같은 해(丁酉, 1597)에 태어난 사람들이 계를 맺고서 교유한 내력을 기록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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同庚契座目 / 기록자료>고도서 / 이상언저자와 계를 맺고 교유한 인물의 명단을 태어난 월일 순으로 기록한 것이다. 기록된 인물은 모두 41인이며, 그 중에서 저자는 여덟 번째에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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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만일고 / 기록자료>고도서 / 김혜송만일고(松灣逸稿) 松灣 金寭의 문집. 木版本, 序: 黃蘭善(1908), 跋: 柳欽睦‧金萬源(1908), 重刊跋: 金肅源‧金直源(1925), 2卷 1冊: 四周雙邊, 半郭 20.1×16.1㎝, 有界, 10行 19字, 註雙行, 上下內向二葉花紋魚尾; 31.5×22.0㎝.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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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옹일고 / 기록자료>고도서 / 고세장낭옹일고(浪翁逸稿) 浪翁 高世章의 문집. 石版本, 序: 權相圭(1933), 跋: 高彦經‧高氵+敬, 3卷 2冊: 四周雙邊, 半郭 18.6×15.2㎝, 10行 20字, 註雙行, 上下向二葉花紋魚尾; 30.1×21.0㎝. 서문은 蔡山 權相圭가 썼고, 발문은 저자의 旁裔孫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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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 기록자료>고도서 / 고세장壬戌仲春蒙恩譴有碧潼之命臨行次諸友疏行時贈別韻, 謫中用前韻換押寄諸友, 送雲甲姪還鄕賦懷, 月夜聞隣琴, 見門前柳色, 望鴨江, 獨坐, 步出川邊賞花還登西門樓有作, 生朝述懷, 次洪命三(永錫)贈韻, 附原韻, 次自復堂權公(時憲)韻, 輓木齋洪先生, 蒙宥還鄕伯氏公已下世感而有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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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南書院請額疏 3 / 기록자료>고도서 / 고세장尙州에 있는 도남서원의 사액을 청하는 疏로, 저자의 학문적 계통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 이 소를 올리기에 앞서 사액을 청하는 소를 올린 적이 있었는데, 이에 대해 당시 예조판서 桂村 李之翼(1625∼1694)이 여러 가지 妄說을 지어내었으니, 그것은 바로 유생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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斥李珥成渾從祀文廟疏(1681) 6 / 기록자료>고도서 / 고세장저자의 정치적 입장을 살펴볼 수 있는 장문의 疏이다. 牛溪 成渾과 栗谷 李珥의 문묘 종사를 청하는 소와 그것을 반대하는 소는 前代에 여러 차례 있어왔는데, 당시에 儒生 李延普 등이 상소하여 문묘 종사를 청하자 숙종은 이를 윤허하였고, 이에 대해 저자는 이들의 문묘 종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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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木齋洪先生 1 / 기록자료>고도서 / 고세장木齋 洪汝河(1621∼1678)가 孝宗 연간에 유배를 당했을 무렵에 보낸 편지로 추정되는데, 그가 편찬한 儀禮考證에 대한 추숭의 내용이다. 저자는 그 중에서 몇 가지 사항을 뽑아내어 강습하는 자료로 삼고자 하였다. 의례고증이란 책은 현존 여부를 알 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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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上舍正則(楷) 1 / 기록자료>고도서 / 고세장負暄堂 金楷(1633∼1716)에게 답한 편지로, 40세가 넘었다는 점과 疏頭라는 말을 통해서 볼 때 1681년에 李珥와 成渾의 문묘 종사를 배척하는 소를 쓸 때에 보낸 것으로 추정된다. 주위 사람들의 염려가 있기는 하지만, 소인배들처럼 위험이나 억압을 겁내지 않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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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正則 2 / 기록자료>고도서 / 고세장이이와 성혼의 문묘 종사를 배척하는 疏의 내용이 두서를 갖추고 있으니, 이를 통해 주상의 마음을 되돌리고 邪說을 불식시킴으로써 公論이 실추되지 않게 하고, 문묘가 더럽혀진 것을 깨끗이 씻게 된다면 吾道의 다행이요 士林의 경사일 것이라고 하였다. 특히 한양을 비롯하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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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李君則(東標) 2 / 기록자료>고도서 / 고세장懶隱 李東標(1644∼1700)에게 보낸 편지로, 이이와 성혼의 문묘 종사를 배척하는 疏에 관한 내용이다. 肅宗이 두 사람의 문묘 종사를 윤허한 것은 李延普가 주상의 총명을 은폐시키고 나라를 업신여긴 데서 나온 것이므로, 자신은 이를 좌시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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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蔡文叟(獻徵) 3 / 기록자료>고도서 / 고세장蔡獻徵에게 답한 편지로, 저자가 문묘 종사를 반대하는 疏를 올린 일로 유배지로 떠가는 길에 채헌징이 元瑞와 함께 송별하러 왔으나 길이 어긋나서 만나지 못함을 아쉬워하였다. 채헌징의 호는 愚軒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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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伯兄 3 / 기록자료>고도서 / 고세장유배지에서 지내는 저자가 고향에 있는 백형에게 보낸 편지로, 집안 일을 잘 다스리고 계시면 언젠가 화락하게 지낼 날이 올 것이라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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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姪兒雲甲 4 / 기록자료>고도서 / 고세장조카 雲甲에게 보낸 편지로, 유배지에서 백형의 부음을 듣고 슬퍼하는 내용으로 보인다. 상을 당한 조카에게 과도하게 슬퍼하여 생명을 손상시키는 지경에 이르지 말아서 終始之孝에 유감이 없도록 할 것이며, 어머니를 잘 保養하면서 서로 만날 날을 기약하자고 타일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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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蔡上舍(翊夏)文 4 / 기록자료>고도서 / 고세장성균관생원 舟巖 蔡翊夏(1633∼1676)를 추도하는 제문이다. 비슷한 연배에 가까운 곳에 살면서 20여 년 동안 종유하며 친근하게 지냈던 일을 회상하였다. 채익하는 蔡克明의 아들로, 近始齋 金垓(1555~1593)의 孫壻이자 野逸齋 金光岳(1591~1648)의 사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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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仲父通仕郞府君文 5 / 기록자료>고도서 / 고세장저자의 仲父[高爾行, 1599∼?]가 돌아가신지 58일째 되던 날에 지은 제문이다. 孝友와 敦睦이 뛰어나 宗族과 鄕黨에서 추앙을 받은 일과, 백부[高爾節, 1596∼1653]가 돌아가신 뒤 저자의 아버지와 함께 지내며 동고동락했던 일과, 1665년(현종 6)에 아버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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祖考通訓大夫行豊基郡守府君行年記 7 / 기록자료>고도서 / 고세장저자의 조부인 泰村 高尙顔(1553∼1623)의 일대기를 연보 형식으로 정리한 글로, 태촌집에도 수록되어 있다. ◦1553년(1세, 명종 8) 龍宮에서 태어남. ◦1558년(6세, 명종 13) 入學함. ◦1559년(7세, 명종 14) 白石 姜霽(1549∼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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言行拾遺 1 / 기록자료>고도서 / 고세장進士 安東人 負暄堂 金楷가 저자의 아들 高雲五의 청탁을 받고서 지은 글이다. 저작 연대는 저자의 사후 10년이 되는 1700년(숙종 26) 무렵으로 추정된다. 아래의 疏行時贈別, 謫碧潼時贈別, 輓詞, 祭文 등에 金楷의 이름이 모두 들어 있다는 점을 통해서도 알 수 있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