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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416851

    墓誌銘(幷序) 2 / 기록자료>고도서 / 고세장
    宣城人 孤山 李惟樟(1625∼1701)이 지은 묘지명으로, 저자의 立志가 貧賤이나 威武에도 절대 굴하지 않을 만큼 확고하였음을 부각시켰다. 즉, 󰡔孟子󰡕에 언급된 “뜻있는 선비는 죽어서 구렁에 버려질 것을 잊지 않고, 용맹한 선비는 싸우다가 그 머리를 잃을 것을
    출처 : 유교넷
  • 416852

    家狀(1719) 4 / 기록자료>고도서 / 고세장
    族孫 高漢羽가 지었다. 자세한 내용은 글 앞의 저자 소개에 나와 있다.
    출처 : 유교넷
  • 416853

    墓碣銘(幷序) 7 / 기록자료>고도서 / 고세장
    義城人 某溪 金鴻洛(1863~1943)이 지은 묘갈명으로, 지혜가 周密하고 학문이 넓고 행실이 뛰어나고 지조가 확고하다고 평하였다. 冑孫 高永鍵과 傍孫 高氵+敬이 청탁하였다.
    출처 : 유교넷
  • 416854

    贈遺 疏行時贈別 10 / 기록자료>고도서 / 고세장
    이이와 성혼의 문묘 종사를 반대하는 소를 올리기 위해 떠날 적에 지인들이 지어준 贈別試이다. 金楷, 李東標, 蔡獻徵, 權明仲, 李君式, 族孫 漢瞻, 權協, 兪厚卿, 族姪 徽世, 李後甲, 族孫 漢羽, 金世欽, 權憕, 李基華, 成文夏, 李德徵, 洪道翼, 郭以貞, 朴子威,
    출처 : 유교넷
  • 416855

    贈遺 謫碧潼時贈別 14 / 기록자료>고도서 / 고세장
    이이와 성혼의 문묘 종사를 반대하는 소를 올렸다가 평안도 碧潼으로 유배를 갈 적에 지인들이 지어준 증별시이다. 李惟樟, 金仁仲, 金世銑, 安晉石, 李東標, 成文夏, 韓塾, 金健, 金侃, 宋世甲, 姜渭擧, 具世英, 朴斗寅, 族孫 漢羽, 李善哉, 李永鴻, 楊聖和 등 17
    출처 : 유교넷
  • 416856

    輓詞 18 / 기록자료>고도서 / 고세장
    洪相文, 李在憲, 洪相民, 金楷, 李萬枝, 南極柱, 李在隆, 金宇泰, 權憕, 申弼成, 洪相勛, 蔡仁起, 族孫晉厚, 全五盆, 安善徵, 安晉石, 金后+山, 尹商老, 李世興, 權恂, 金健, 金命基, 姜象先, 蔡先甲, 蔡後甲, 鄭之鍵, 族孫 海翼, 鄭自謙, 李冑興, 李葆英,
    출처 : 유교넷
  • 416857

    祭文 25 / 기록자료>고도서 / 고세장
    潁濱書堂儒生, 道南書院儒生, 洪相民, 金楷, 申弼成, 權以儞, 族孫 漢羽, 族孫 師錫, 族姪 雲翮, 族姪 雲翼, 從姪 雲驥, 姪子 雲甲雲瑞 등 12인이 지은 제문이다.
    출처 : 유교넷
  • 416858

    潁皐社奉安文 39 / 기록자료>고도서 / 고세장
    영고사는 저자의 조부인 태촌 고상안과 저자를 배향하기 위하여 南石亭 곁 潁水에다 건립한 사당으로, 이 글은 영고사에 저자의 위패를 봉안하면서 지은 글이다. 영고사는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었다가 1992년에 3칸 규모의 맞배지붕 기와집으로 중건하였다.
    출처 : 유교넷
  • 416859

    常享祝文 39 / 기록자료>고도서 / 고세장
    完山人 定齋 柳致明(1777∼1861)이 지은 상향 축문으로, 雪月같은 거동에 뜻을 굳게 지켜서 그 유풍이 늠름하여 백세토록 추앙한다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416860

    / 기록자료>고도서 / 고세장
    旁裔孫 高彦經(1866~1952)이 지은 발문이다. 저자의 일생 중에서 潁濱書堂을 이건하여 선비들을 기른 공과 道南書院의 사액을 이룬 일과 이이와 성혼의 문묘 종사 반대를 청했던 일이 가장 두드러지는 점으로, 우뚝한 절개를 엿볼 수 있다고 하였다. 저자 사후 260여
    출처 : 유교넷
  • 416861

    / 기록자료>고도서 / 고세장
    旁裔孫 高氵+敬이 지은 발문으로, 저자의 尊賢衛道의 정성과 斥異扶正의 공력을 추앙하였다. 출판 경위에 대한 언급은 위의 高彦經의 발문과 대동소이하다.
    출처 : 유교넷
  • 416862

    묵재집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시화
    묵재집(默齋集) 默齋 金始鏵의 문집. 木版本, 跋: 金鎭河‧權敦淵, 3卷 1冊: 四周雙邊, 半郭 19.6×16.2㎝, 10行 20字, 註雙行, 上下內向二葉花紋魚尾; 31.8×20.7㎝. 5代孫 鎭河와 外孫 權敦淵이 쓴 발문에 의하면, 1728년(영조 4) 李麟佐의
    출처 : 유교넷
  • 416863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시화
    過壯巖書院有感, 讀大學, 病中述懷, 族會次韻, 贈別權(大衡), 元日謹次栗亭從祖(堯錫)韻, 哭柳姑叔寓軒(世鳴), 留別安吉甫(日履), 默齋心語二絶(幷小序), 閑居偶吟, 與成士休景瑞士貢共賦, 次羅進道(學山)宋孝于韻, 送吳復初之茂長, 挽金文伯(斐然), 次斗巖立春韻, 自警,
    출처 : 유교넷
  • 416864

    默齋序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시화
    ‘黙’이라는 글자로 堂號를 정한 까닭은 곧음을 두텁게 하고 허물을 줄이고자 하는 뜻이 있었음을 밝히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416865

    書金秀才(弘烈)古詩冊後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시화
    秀才 金弘烈이 伯父와 함께 瘡疾을 피해서 新川에 오게 되어 만난 적이 있었는데, 빈 책을 가져와서는 古人들의 詩를 抄錄하려고 하였으니 시를 배우고자 하는 뜻이 있었다고 전하면서 무릇 시는 性情으로부터 시작하였으니 心志가 敦厚한 사람은 그 言辭가 평화롭고 심지가 輕躁한
    출처 : 유교넷
  • 416866

    書三峯志後 2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시화
    1711년(숙종 37) 봄에 여러 父老들이 鶴沙 金應祖(1587~1667)의 遺訓을 받들어 명하니 이에 修撰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牧隱 李穡(1328~1396)과 陽村 權近(1352~1409) 등의 文集과 집안에 전해져 내려오는 약간의 글을 모았으며, 동생인 始鑌이
    출처 : 유교넷
  • 416867

    遊淸凉山錄 3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시화
    1695년(숙종 21) 3월 27일 朴孟瞻과 출발하여 權德甫‧李應奎‧金鳴世와 두 아들 등을 만나고, 다음날 다시 金獜祥과 그의 두 아들‧權漢均 등을 만났으며, 전에 함께 가려고 약속했던 李誠叟와 그의 從姪인 萬華 등을 만나 함께 淸凉山을 유람하고 기록한 글이다. 도중
    출처 : 유교넷
  • 416868

    默齋銘 8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시화
    ‘黙齋’라고 堂號를 정한 까닭이 내게 입이 있는데 지켜내지 못하고 망령되게 하여 舜처럼 말을 삼가지 못하니 경계하기 위한 것이라고 적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416869

    屋漏銘 8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시화
    옛 성현들도 작고 누추한 공간에서 지내는 것을 오히려 높게 평가하였는데, 자신이 어찌 감히 머무를 수 없겠냐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416870

    社稷壇祈雨文(代地主作) 8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시화
    社稷壇에서 祈雨祭를 지낼 때 地主를 대신하여 지어준 글이다.
    출처 : 유교넷
  • 416871

    鐵呑山 9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시화
    鐵呑山에서 기우제를 지낼 때 지은 글로, 신령스러운 기운을 지닌 철탄산에서 제를 올리니 비를 내려 달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416872

    又 9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시화
    鐵呑山에서 기우제를 지낼 때 지은 글이다.
    출처 : 유교넷
  • 416873

    靈芝山 10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시화
    靈芝山에서 기우제를 지낼 때 지은 것으로 신령스러운 기운을 지닌 영지산에서 제를 올리니 비를 내려 달라는 내용을 담은 글이다.
    출처 : 유교넷
  • 416874

    洞神祠移建文 10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시화
    洞神祠를 북쪽으로는 道山과 남쪽으로는 鶴駕山을 마주하고 있는 좋은 곳으로 移建하였으니 질병의 기운은 멀리하고 水災와 旱災도 모두 없게 해 달라는 내용을 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416875

    祭始祖伽倻王墓文 1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시화
    시조 伽倻王께 올리는 제문이다. 왜적의 침입과 같은 외적인 요인으로 인하여 시조에 대한 제사를 이제까지 올리지 못한 것이 대대로 한이 되었으며, 王考 때에 이르러서도 뜻은 있었으나 마침내 이루지 못하다가 이제야 비로소 후손된 도리를 하게 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416876

    祭柳寓軒(世鳴)文(代伯父) 12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시화
    寓軒 柳世鳴에게 올리는 제문으로 伯父를 대신하여 지은 것이다. 字는 爾能이고, 號는 寓軒이며, 柳雲龍의 曾孫이다. 1660년(헌종 1) 進士試에 합격하고, 1675년(숙종 1) 增廣文科에 병과로 급제하여 史官과 吏曹佐郞 등을 거쳐 持平과 校理 등을 역임하였다. 公忠道
    출처 : 유교넷
  • 416877

    祭具(時英)文(代作) 13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시화
    具時英에게 올린 제문으로 타인을 대신하여 지은 것이다. 次男이 변을 당하고 長男마저 세상을 떠나서 혈혈단신 孫子만을 남겨 놓고 세상을 떠나는 심정이 매우 침통했을 것이라고 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416878

    祭李韓卿(齊良)文 14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시화
    李齊良에게 올린 제문이다. 봄이 와서 정원 가득히 꽃이 만발하여도 그대가 없이 나 홀로 지켜볼 수밖에 없으니 그 슬픔이 너무도 크다고 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416879

    黃豁翁(復圭)葬日望奠文 15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시화
    豁翁 黃復圭의 장례 날에 올린 글이다. 생전에는 자연의 이치를 따르고 사후에는 편안히 쉬는 것이 세상의 이치인데, 자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으니 서운한 감은 없겠지만 그래도 떠나보내는 슬픔이 너무나도 크다고 전하였다.
    출처 : 유교넷
  • 416880

    祭族祖栗亭公(堯錫)文 16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시화
    族祖 栗亭公 金堯錫에게 올린 제문이다. 학문에도 전념하여 많은 책을 두루 읽으시고 후배들의 교육에도 남달리 노력하셨는데 이렇게 세상을 떠나시니 일찍 부친을 잃은 상황에서 누구를 의지하여 살아가야 할 지 막막한 심정이라고 하면서 그 슬픔을 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416881

    祭從弟(始鉉)文 17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시화
    從弟 金始鉉을 위해 지은 제문이다. 19세라는 어린 나이로 부모와는 수 백리나 떨어진 四顧無親의 먼 타양에서 세상을 떠났으니 그 슬픔이 더욱 더 크다고 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416882

    祭家弟成伯文 18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시화
    동생인 金成伯을 위해 지은 제문이다. 26세라는 나이로 뜻을 펼치지도 못하고 後嗣도 없이 세상을 떠난 동생을 위해 지은 것으로 작년 4월 갑자기 시작된 기침이 점점 더 악화되어 끝내는 세상을 떠난 동생의 죽음을 애통해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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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16883

    高祖考勿巖先生家狀 20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시화
    高祖 金隆(1549~1594)의 家狀이다. 字는 道盛이고, 호는 勿巖이며, 본관은 咸昌이다. 高祖는 漢珍이고, 曾祖는 諟敬이며, 祖父는 龜息이고, 부친은 應麟이다. 어머니는 玄風郭氏 子保의 딸이다. 1549년(명종 4) 12월 29일에 태어났으며, 어려서부터 성인의
    출처 : 유교넷
  • 416884

    家狀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시화
    曾孫 龍煥이 쓴 家狀이 실려 있다. 내용은 행장과 비슷하다.
    출처 : 유교넷
  • 416885

    行狀 4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시화
    柳道獻(1835~1909)이 쓴 行狀이 실려 있다. 자세한 내용은 글 앞의 저자 소개에 나와 있다.
    출처 : 유교넷
  • 416886

    墓碣銘(幷序) 8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시화
    李中麟이 撰한 저자의 墓碣銘이 실려 있다. 내용은 행장과 비슷하다.
    출처 : 유교넷
  • 416887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시화
    五代孫 鎭河가 쓴 발문이 실려 있다. 1728년(영조 4) 李麟佐의 亂이 일어나자 義幕으로 달려 갔으며, 詩를 통해서 ‘痛哭邦家事 難洗嶺南羞’라 하고 ‘丹心不逐蒼顔老 半夜篝燈草檄文’이라는 글을 남기기도 하였다고 한다.
    출처 : 유교넷
  • 416888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시화
    外孫 權敦淵이 쓴 발문이 실려 있다. 후손 鎬相이 遺文을 정리하고는 청하여 외손된 책임을 다하고자 마침내 사양하지 못하고 삼가 글을 올린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416889

    단계집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해일
    단계집(檀溪集) 檀溪 金海一의 문집. 木版本, 序: 李晩煃, 跋: 金誠鎭(1916), 4卷 2冊: 四周雙邊, 半郭 20.1×17.4㎝, 有界, 10行 20字, 註雙行, 上下內向二葉花紋魚尾; 32.0×20.2㎝. 저자의 9대손 金誠鎭이 쓴 발문에 의하면, 김성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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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16890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해일
    檀溪卜居四絶, 檀溪閑詠, 兄弟巖, 垂綸巖, 濯足巖,遊馬巖改名龍巖有題二絶,陪伯氏(南一)散步溪上次天字韻, 次從弟應如(台一)韻三首, 訪水雲亭遺址次仲氏(兌一)韻(亭柳西厓先生所建), 次朴雲堂(泰華)述懷見寄韻(1664),贈權司諫啓卿(迪)之任忠州,仲氏遠臨檀溪次寄贈前韻奉別南歸, 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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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16891

    燕行錄(1678,長陵辨誣書狀時)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해일
    臨津別伯氏還京,過松都有感,宿平壤舘, 望箕子墓, 留安州明日將渡淸川江, 次永柔使君沈(良弼)韻, 龍川遇雪, 龍灣客舘二絶, 聞笛, 聞角, 余於今行頗持二戒上副使每以風情太薄爲戱戱題一絶,將渡龍灣,露宿九連城, 夢歸家, 踰靑石嶺到狼子山對月, 阿彌庄路上口占,登迎春寺巖上佛殿,迎春寺望遼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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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16892

    燕行續錄(1869)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해일
    西郊餞席, 到平山送兒亨萬還京, 瑞興馬上, 發黃州, 安州夜思, 發安州, 淸川江値雨雪, 聞伯氏南歸吟呈, 次書狀贈侄秀萬韻, 次正使絶句, 又次正使二首, 經安市城二絶, 次正使韻, 到松站始聞鷄聲, 甜水站冬至夜, 次書狀韻二首, 次正使韻 又次正使韻二首, 過迎春寺次戊午書狀時韻, 遼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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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16893

    與張君玉(瑱)書 14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해일
    張瑱에게 보낸 편지이다. 자신이 외출하고 없는 사이에 다녀간 벗이 지방관이 되어 떠나게 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이를 축하한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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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16894

    答張君玉 14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해일
    張瑱에게 답한 편지이다. 객지에서 家書를 보고 親患이 오래되어 약을 쓰고 계신다는 소식을 접하고 초조한 심정을 형언할 수 없다는 말을 전하였다. 今明間 과거보려는 儒生들이 당도하면 자신의 去就가 분명해 질 터이니, 그 때 봐서 한 번 만나 소회하도록 하고 우선 서신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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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16895

    寄子亨萬 14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해일
    아들 亨萬에게 보낸 편지이다. 수 천리 먼 곳에서 소식이 막혀 궁금하다는 말과 방금 永平府에 당도했는데 마침 고국으로 돌아가는 謝恩使 일행을 만나 몇 자 소식 전한다는 말, 이후 6~7일 뒤면 玉河館에 당도할 것이라는 말, 冬至使 일행을 26일이나 27일 쯤에 만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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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16896

    答子亨萬 15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해일
    아들 亨萬에게 답한 편지이다. 북안으로 구휼을 위해 관아를 떠나 있는 동안 아들에게 편지를 받고 써 보낸 답서이다. 떠나온 목적은 이루었고 다음날 떠나 이틀 뒤 관아로 돌아갈 계획이라는 말, 곧 다시 업무로 인해 영해로 갈 계획이라는 말 등을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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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16897

    答子履萬 15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해일
    燕行을 가는 길에 平壤에 당도해서 받은 아들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맏아들이 당도했는지 묻는 내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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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16898

    辭掌令兼陳戒疏(1673)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해일
    아무 공로가 없는 사람으로 새로운 命을 받들기가 염치없는 일인데다, 신병으로 직임을 사양하는 내용이 앞에 있다. 遷陵의 擧措는 국가의 커다란 변동에 관련되는 일로, 거기에 불미한 일이 있다면 그 선후를 따져서 공정하게 죄과를 따져야 하는데, 내관 尹完에게만 유독 輕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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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16899

    乞暇省墳仍辭副郊理疏 3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해일
    성묘를 위해 휴가를 얻어 떠났다가 병이 심해져서 이 기회에 사직을 구하는 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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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16900

    辭獻納兼陳時獘疏 4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해일
    본래 체질이 허약하여 어릴 적부터 걸핏하면 병이 발작하는데다 최근에는 더위를 먹어 병상에 쓰러져 누워 있는 형편으로 臣子의 직임을 해 낼 도리가 없으므로 체직을 간청하면서 시무에 대한 몇 가지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服裝 器皿을 호사하는 일, 쌀을 썩혀 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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