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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416901

    請歸覲疏(1678,書狀官赴燕時) 7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해일
    1678년(숙종 4) 辨誣 書狀官으로 연경을 갔다가 와서 70고령의 아버지를 歸覲하기를 간청하는 소이다.
    출처 : 유교넷
  • 416902

    使還後請歸覲疏 7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해일
    70고령의 아버지를 歸覲하기를 다시 간청하는 소이다.
    출처 : 유교넷
  • 416903

    辭左承旨疏(1689,八月進香副使命下時) 8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해일
    迎慰使로 임명을 받아 병으로 허약해진 몸으로 겨우 송도까지 나아갔다가 와서 복명했는데, 또 迎勅使로 임명되니 자꾸 병으로 사임할 수도 없는 형편이고 하여, 아예 체직시켜 주기를 원한다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416904

    伸救李端夏啓(1672,持平時) 9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해일
    李端夏가 永安尉 洪柱元의 賜祭文을 지으면서 사용한 “拿問하라는 명이 있었다.”라는 말이 당론을 부식한다고 하여 罪案을 꾸민 것은 부당한 권모술수라고 주장하면서 국문하라는 명령을 거두기를 청하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416905

    伸救李翊相啓(1673,掌令時春塘臺榻前獨啓) 9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해일
    당시 吏曹參議로 있던 李翊相을 파직 추방하라는 명령을 거두어들일 것을 요청하는 계이다. 전일 憲官들이 이조판서에 趙昌基를 擬望하지 않은 데에 다른 의도가 있어서가 아니라, 위로는 임금의 뜻을 억측해서 아뢸 수 없고 아래로는 지금껏 이어오던 규례를 가볍게 고칠 생각이
    출처 : 유교넷
  • 416906

    請尹時慶拿問定罪啓(上同) 10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해일
    前都事 尹時慶이 요망한 첩을 거느리고 家道를 壞亂하여 자녀 간에 까닭 없는 수상한 병으로 죽은 사람이 여섯 일곱에 달하고 생존자도 죽음의 문턱을 내왕하는데, 妖妾의 흉계는 無所不至이고 윤시경은 亡子婦가 呈狀을 하려는 것을 억눌러 하지 못하게 한 소행이 발고인의 초사로
    출처 : 유교넷
  • 416907

    避嫌啓(1673年6月) 10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해일
    병으로 言官의 책임을 수행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이를 면하게 해줄 것을 호소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음으로써 할 수 없이 직임을 수행하던 중, 예조판서 趙珩이 疏를 올려 자신이 疏로써 조정을 배척했다고 무고하려 한다는 소문을 듣고 피혐을 위해서라도 체직이 불가피함을 호
    출처 : 유교넷
  • 416908

    牌不進後避嫌啓(1673年7月) 11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해일
    사직소가 받아들여지지 않고 召牌가 내려지므로, 우선 앓고 있는 병이 낫기를 기다려 出肅하기로 하면서 부득불 逋慢의 죄를 지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아뢰는 계이다.
    출처 : 유교넷
  • 416909

    判中樞府事 金壽恒의 파직을 주청하는 합계로, 대사헌은 金徽이고 司諫 李沃‧持平 李沆‧正言 權瑍‧李瑞雨 등이 참여하였다. 김수항은 賓廳에서 예를 논의하던 신하로 이미 벌을 받았으니 마음을 고쳐 聖朝에 보답할 도리를 생각해야 마땅할 터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아직까지 宗
    출처 : 유교넷
  • 416910

    전 영의정 金壽興을 서용하기로 한 결정을 취소하기를 요청하는 합계로, 대사간은 李宇鼎이고 司諫 柳命賢 등이 연명하여 참여하고 있다. 범죄 가운데 예송 당시 빈청에서 예를 논의하던 대신보다 더 중한 것이 없는데, 김수흥은 禮經은 속이기 어렵다는 것을 잘 알 면서도 권신
    출처 : 유교넷
  • 416911

    請宋時烈亟施正刑啓 14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해일
    島棘罪人 宋時烈을 빨리 正刑에 처할 것을 요청하는 계이다. 송시열은 君父를 폄하하고 박대했으며 宗統을 괴란한 窮兇極惡으로, 島棘 부처된 지 6년에 흉심을 뉘우치지 않고 다시 소를 올려 국본을 위태롭게 하고, 그 黨與에 서신을 보내어 지극히 무도한 말을 하여 재기의 음
    출처 : 유교넷
  • 416912

    請寢南二星放敘之命啓 14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해일
    甲寅禮訟의 결과 죽은 효종의 비 仁宣王后를 위한 인조의 계비인 慈懿大妃의 복은 기년복이고, 己亥禮訟 때 효종을 위한 자의대비의 복을 기년복으로 결정했던 송시열의 예론은 잘 못된 것으로 판정됨으로써, 당시 남인 측 예론의 관점으로는 시비가 이미 정해졌다고 판단하고 있었
    출처 : 유교넷
  • 416913

    請李東亨遠竄啓 15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해일
    송시열을 伸救하는 소장을 올린 李東亨을 遠配付處하기를 요청하는 계이다. 이동형의 悖戾한 언사는 송시열의 제자로 師生間의 의리만을 알고 君臣間의 의리를 모르는 소치로, 비록 應旨라 하더라도 반드시 주벌해야 마땅하다는 주장이다.
    출처 : 유교넷
  • 416914

    請寢崔鳴吉陞祔宗廟庭享收議之命啓 16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해일
    丙子·丁丑 연간에 청나라와 화의를 주장한 故 相臣 崔鳴吉을 문묘에 陞祔할 것을 수의하라는 명령을 철회할 것을 요청하는 계이다. 당시의 일은 갑자기 발생한 일로 화급한 상황에서 임기응변이 불가피했다 하더라도, 화의를 주장한 사람의 공이라고는 도저히 볼 수는 없다는 논리
    출처 : 유교넷
  • 416915

    1677년(숙종 3) 3월 과거는 부정부패의 총집결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大提學 閔點의 아들 閔周道는 부정행위를 위해 무려 다섯 명을 고용했는데, 답안작성자, 책을 보고 문장을 불러주는 자, 답안지에 옮겨 적는 자, 이 답안지를 시험장 안으로 던져 넣는
    출처 : 유교넷
  • 416916

    請寢移設豊儲倉給基造家之命啓 18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해일
    공주의 딸에게 豊儲倉 옛 터에 집을 지어 주라는 명령을 철회해 줄 것을 요청하는 계장이다. 공주의 딸은 공주와도 다를 뿐 아니라, 公倉의 터는 사사로이 남에게 줄 수 있는 물건도 아닌데다 허다한 인가가 훼철되는 폐단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이유로 들었다.
    출처 : 유교넷
  • 416917

    請星州牧使李壽曼罷職啓(正言朴紳聯名) 19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해일
    성주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을 처리하는 牧使 李壽曼의 안일한 태도를 주벌하여 파직하기를 요청하는 계이다.
    출처 : 유교넷
  • 416918

    請禁宮家築堰兼罪監築人啓 19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해일
    黃海道 信川郡 聲月 坊地에 宮家에서 쌓았다고 하는 방조제가 있었다. 어떤 사기꾼이 주인 없는 황무지라고 궁가에 속여서 고하여 일을 시작한 뒤, 주인 있는 田地가 모두 그 가운데 들어가게 되므로 원망이 그 사람에게 집중되자 도망쳤다. 그리고 보를 쌓을 때 감독했던 趙氏
    출처 : 유교넷
  • 416919

    請理山郡守吳得周遞罷啓 20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해일
    최근 새로 理山郡守에 임명된 吳得周는 별 이력도 없는 별군이었는데, 갑자기 목민관이 되었으니, 그 연유가 의심스럽고 백성에게 해를 끼치게 될까 염려스럽다는 이유를 들어 파직을 요청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416920

    당일 備忘記에 기록된 ‘오늘 政院과 玉堂은 大殿에 문안한 글을 수정하지 말고 올리라’는 명령과 ‘중궁전 내관을 국문하라’는 명령을 거두어줄 것을 요청하는 계이다.
    출처 : 유교넷
  • 416921

    再啓 20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해일
    위의 내용을 다시 요청하는 계이다.
    출처 : 유교넷
  • 416922

    請寢中宮殿出處私第之命啓 21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해일
    1689년(숙종 15) 元子定號 문제를 발단으로 환국이 초래되어 서인이 축출되고 남인 세력이 집권하게 되었는데, 이즈음 숙종의 계비 仁顯王后 閔氏를 폐서인하는 명령이 떨어졌다. 이 계는 이러한 명령을 취소하기를 요청하는 내용으로, 󰡔서경󰡕의 “성인이 인륜에 지극한
    출처 : 유교넷
  • 416923

    請寢李湜削黜之命啓 21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해일
    玉堂의 차자에 대한 비답이 지엄한 가운데 당시 應敎였던 李湜을 削黜하라는 명이 있어 이 명령을 거두어 줄 것을 요청하는 계이다. 이 역시 숙종이 왕비를 廢庶人 하라는 명령을 내린 것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대소 신료들이 모두 각자의 성심을 진달한 바, 요약컨대 모두
    출처 : 유교넷
  • 416924

    再啓 22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해일
    위의 계에 대한 비답으로 “번거롭게 하지 말라.”라는 명령이 있었으나, 같은 논리로 다시 한 번 설득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416925

    辨誣使行復命啓(1679,上使福平君㮒) 22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해일
    1678년(숙종 4)부터 다음 해까지 辨誣書 일들을 대강 추려서 보고한 문서이다. 12월 24일 북경에 도착하여 27일 방물을 진납한 뒤, 무료한 시간이 한참 허비된 후 다음 해 2월 7일에야 예부에 들어가 12일 午門 앞에서 禮를 행하고, 13일 頒賞 후 下馬宴을
    출처 : 유교넷
  • 416926

    附禮部辨誣陳奏回啓 25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해일
    1678년(숙종 4) 10월 13일 자로 조선국왕이 進奏한 奏辭에 明朝의 野史 󰡔十六朝紀󰡕가 자신의 先祖를 헐뜯어 무함한 것이 말할 수 없을 정도이므로, 聖朝에서 이를 伸雪해 주고 󰡔明史󰡕를 새로 편수할 때에는 특별히 1623년(인조 1) 莊穆王[仁祖] 등극과
    출처 : 유교넷
  • 416927

    燕行日記 27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해일
    1678년(숙종 4) 10월 長陵辨誣進賀謝恩兼冬至使行의 書狀官으로 燕京을 가라는 명을 받아 동월 27일 방물을 싸서 30일 慕華館에서 숙배하고 弘濟院에 이르러 친지들과 작별하고 새벽에 떠나, 1679년(숙종 5) 정월 초하룻날 天安門을 통과하여 皇極殿에서 皇帝를 알현
    출처 : 유교넷
  • 416928

    燕行日記續(正使朴泰尙書狀官成瓘)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해일
    1689년(숙종 15) 10월 진향부사로 다시 연경을 가라는 명을 받아, 11일 拜表慕華館査對到弘濟院에서 朝野의 인사들과 작별하고 떠난 뒤, 12월 16일 진향을 하고 황제의 하사품을 수령하여, 1690년(숙종 16) 2월 초 7일 복명 입시한 후 밤이 깊어서 돌아오
    출처 : 유교넷
  • 416929

    家狀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해일
    長子 金履萬(號 鶴皐)이 지었다. 내용은 앞에 인물 설명과 동일하다. 7세손 輝漢이 자손들에 대한 기록을 추가한 부분이 첨부되어 있다.
    출처 : 유교넷
  • 416930

    墓碣銘(幷序) 9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해일
    한양조씨 趙鍾弼이 지었다. 위 가장과 대동소이하다.
    출처 : 유교넷
  • 416931

    賜祭文(1692年9月18日) 12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해일
    모두에 숙종 임금이 예조정랑 조세항을 파견하여 죽은 경주부윤 김해일의 혼령에게 제사지내라고 효유하였다는 간단한 설명이 붙은 제문이다. 가정에서는 효성과 우애를 다하였고, 조정에서는 충성을 다하되, 특히 두 번이나 연행의 중책을 완수한 점을 강조했다. 숙종 임신년은 저
    출처 : 유교넷
  • 416932

    祭文 12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해일
    모두 4편을 실었다. 제문 쓴 이는 玉山書院士林 生員 李德玄‧張命杰‧仲兄 兌一‧再從弟 時一 등이다.
    출처 : 유교넷
  • 416933

    贈遺 15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해일
    辨誣進賀謝恩兼冬至使의 書狀官과 進香使의 副使의 직임으로 두 번 연경을 갈 때 朝野의 친지들에게서 받은 시문을 등재한 것인데, 지은 이는 金聲久, 李玄錫, 權大運, 柳命堅, 洪重鼎, 李夏徵, 柳英立, 李文興, 李明鎭, 權瑍, 李華鎭, 權晟, 金楷, 南垕, 仲兄 兌一,
    출처 : 유교넷
  • 416934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해일
    9대손 金誠鎭이 1916년에 쓴 발문이다. 김성진의 族曾祖인 鶴西 金樂誾이 유문을 수습한 뒤에 간행하려고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사망하였고, 그 뒤 김성진이 鶴西 金樂誾의 아들 輝漢과 논의하여 재차 교정을 거쳐서 상하 2책으로 편성하여 간행하게 된 경과를 기록하
    출처 : 유교넷
  • 416935

    학고집 / 기록자료>고도서 / 김리만
    학고집(鶴皐集) 鶴皐 金履萬의 문집. 木版本, 11卷 6冊: 四周雙邊, 半郭 21.3×15.9㎝, 有界, 10行 20字, 上下內向二葉花紋魚尾; 30.3×20.8㎝. 문집에 대한 序文과 跋文은 실려 있지 않고 저자가 저술한 작품들과 다른 사람들이 쓴 행장 등이 附錄
    출처 : 유교넷
  • 416936

    석란유고 / 기록자료>고도서 / 장용
    석란유고(石欄遺稿) 石欄 張瑢의 문집. 石印本, 序: 黃土+憲(1904), 2卷 1冊: 四周雙邊, 半郭 15.7×20.2㎝, 有界, 10行 18字, 註雙行, 上下向二葉花紋魚尾; 30.0×20.5㎝. 1904년(광무 8)에 承文院副正字 平海黃氏 黃土+憲(1874~?
    출처 : 유교넷
  • 416937

    추담집 / 기록자료>고도서 / 성만징
    추담집(秋潭集) 秋潭 成萬徵의 문집. 木活字本, 8卷 3冊: 四周雙邊, 半郭 21.6×16.9㎝, 有界, 10行 20字, 註雙行, 上下內向二葉花紋魚尾; 28.9×20.8㎝. 이 문집에는 서문과 발문이 없어서 간행연대를 알 수 없다. 문집의 체제는 일반적인 형태를
    출처 : 유교넷
  • 416938

    구당집 / 기록자료>고도서 / 조목수
    구당집(舊堂集) 舊堂 趙沐洙의 문집. 木活字本, 10卷 5冊: 四周雙邊, 半郭 22.5×16.3㎝, 10行 21字, 註雙行, 上下內向二葉花紋魚尾; 31.4× 21.2㎝. 서문과 발문이 없어 간행연대와 경위는 확실하지 않다. 卷1에 시 137수, 歌 1편, 卷2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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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16939

    / 기록자료>고도서 / 조목수
    次鄭逸人士仰(宗魯)北溪田家雜興韻,與柳士極氵 奎夜話養堂占律贈別,讀書偶吟,看心經, 觀物吟, 又吟一律兄弟聯句, 感興絶句, 俗離遊山時次行中登字韻, 到淸溪吟一律, 次寄趙明叔(文逵), 次族兄季明氏(炳然)韻呈黃嶺旅榻, 立春又呈一律, 己酉秋夕寓感, 遊安義華林洞君子亭, 詠重修悟昨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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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16940

    / 기록자료>고도서 / 조목수
    南野先生朴公(孫慶)輓, 輓金子河(中柱), 輓審幾堂黃公(啓熙), 輓姜知事, 輓金持平, 輓金正言(埅), 輓金參判(夢華), 姜晉恩君(必岳)輓, 樊巖蔡文肅公(濟恭)輓, 輓李剛齋(承延), 輓李進士(夤泰), 輓洪進士光之(天休), 輓柳公(聖霖), 輓盧丈(漢文), 輓盧丈(斗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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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16941

    / 기록자료>고도서 / 조목수
    誄金澤卿(兌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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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16942

    擬應旨疏(1795) 1 / 기록자료>고도서 / 조목수
    천재지변이 거듭되어 국왕이 求言하는 교지를 내린 데 따른 상소이다. ‘의응지소’라는 제목으로 보아 소를 올린 것 같지는 않다. 저자는 관직을 지내지 않은 초야의 선비로서, 천재지변을 초래한 정치상의 잘못이나 君德의 부족 등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다고 하였다. 그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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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16943

    上小山先生李公(光靖) 7 / 기록자료>고도서 / 조목수
    저자가 이광정에게 보낸 편지이다. 저자가 상주 사림을 대신해 봉산서원 추향시 봉안문을 이광정에게 부탁해 받았다. 그런데 당시 두 賢人의 사적이 많지 않아 1, 2가지 빠진 곳이 있어, 봉안문을 수정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없어서 몇 구를 상의 없이 고치고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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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16944

    上樊巖蔡相國 8 / 기록자료>고도서 / 조목수
    저자가 번암 채제공에게 보낸 편지이다. 영남 유림이 임자년에 만인소를 올린 이후, 다시 한 번 임오의리를 천명하라는 상소를 올리려고 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채제공이 만류하였다. 당시 이 상소의 疏頭였던 저자가 상소를 올리려 했던 이유 등을 설명하는 한편, 상소를 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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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16945

    答鄭士仰 9 / 기록자료>고도서 / 조목수
    정종로가 特除로 사헌부지평에 임명되자, 저자에게 出仕 여부를 물어온데 대한 답장이다. 저자는 군자의 出處가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요즘 신하들은 임금을 공경하는 도리를 아는 자가 많지 않은 것 같다고 하면서, 임금의 特恩을 갚기 위해 출사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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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16946

    答鄭士仰 10 / 기록자료>고도서 / 조목수
    저자가 정종로에게 보낸 답장이다. 정종로가 저자의 부탁으로 글을 지어 보내준 데 대해 감사해하며 쓴 글이다. 그가 쓴 글이 너무 정중하고 사실을 자세하게 기록해, 子姪이 모두 감격해 하고 있다는 것, 정종로의 문장과 행동거지가 더욱 노성해진 것 같다는 내용 등이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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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16947

    與鄭士仰 11 / 기록자료>고도서 / 조목수
    저자가 정종로에게 글을 부탁하며 쓴 편지이다. 저자 문중에 연이은 상고가 있어 경황이 없다는 말로 시작하고 있다. 이어 저자의 증조 이래 3대의 문적을 수습하지 못해 죄송하다면서, 이번에 문자를 수습하려고 하니 정종로에게 그와 관련된 글을 써달라고 부탁하고 있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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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16948

    與鄭士仰 12 / 기록자료>고도서 / 조목수
    저자가 정종로에게 부탁한 글의 완성 여부를 묻는 편지이다. 마마가 창궐하는 시기에 건강 여부를 물은 다음, 초고의 보완이 마무리 되었는지 묻고 있다. 이어 저자 가문의 족보가 완성단계에 있기 때문에 완성된 글을 인편에 보내달라고 부탁하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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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16949

    與南宗伯(漢朝) 14 / 기록자료>고도서 / 조목수
    저자가 남한조에게 ‘自慊’의 의미를 묻는 편지이다. 저자가 자겸에 대해 남들과 다른 해석을 하자, 친우들이 주자의 견해를 써서 보내주었다. 그렇지만 저자가 보기에 주자의 주장도 친우와 저자의 견해 모두를 받아들인 것 같았다. 따라서 남한조의 견해는 어떤지 다시 한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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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16950

    與南宗伯 15 / 기록자료>고도서 / 조목수
    저자가 남한조에게 「戒懼章」의 의미를 묻는 편지이다. 저자는 봄에 있었던 도남서원 강회가 매우 의미 있는 모임이었음을 강조하고, 정종로와 남한조 형제의 학문이 완성 단계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하였다. 이어 「계구장」 해석에 대한 저자의 견해를 밝히고 남한조의 의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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