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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475201

    월인석보 권23(月印釋譜 卷二十三) / 조선 세조 5년(1459) / 1권 1책 / 목판본/왕실본 / 김종규 / 서울 종로구 / 선장
    『월인석보(月印釋譜)』는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과 『석보상절(釋譜詳節)』을 합하여 세조 5년(1459)에 편찬한 불교대장경이다. 석보는 석가모니의 연보, 즉 그의 일대기라는 뜻으로 세종 28년(1446) 소헌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아들인 수양대군(후의 세조)이 불교서적을 참고하여 한글로 번역하여 편찬한 것이 곧『석보상절』이다. 세종 29년(1447) 세종은 『석보상절』을 읽고 각각 2구절에 따라 찬가를 지었는데, 이것이 곧 『월인천강지곡』이다. 본서는 세조 때 처음 간행된 초간본으로, 1권 1책이며 제 23권이다. 내용은『월인천강지곡』기(其) 497~524까지 28수(首)가 실려있고 여기에 해당하는『석보상절』의 내용을 해설부분으로 싣고 있다. 『석보상절』 권 23과는 달리 『법원주림(法苑珠林)』 권 30과 『석가보(釋迦譜)』 권2ㆍ4, 『목련경(目蓮經)』, 『우란경(盂蘭經)』 등에서 부분 인용되어 있고, 『불설미륵대성불경(佛說彌勒大成佛經)』이 협주(夾注)로 국역되어 있다. 『월인석보』는 한글 창제 직후에 간행된 산문으로서 국어국문학 연구와 불교 경전의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출처 : 문화재청
  • 475202

    초조본 대승아비달마잡집론 권14(初雕本 大乘阿毗達磨雜集論 卷十四) / 고려시대(11세기) 추정 / 1권 1첩 / 목판본/대장도감본 / 아단문고 / 서울 중구 / 절첩장
    대장경의 논장(論藏)에 편입된 경전으로 본래 무착의 제자 사자각(師子覺)이 찬술한 <대승아비달마집론(大乘阿毘達磨集論)>에 대해 안혜(安惠)보살이 주석한 것을 저본으로 당나라 현장(玄奘)이 한역(漢譯)한 불경을 고려시대 대장도감(大藏都監)에서 목판으로 간행한 초조대장경(初雕大藏經)이다. 이 경론은 무착의 제자 사자각(師子覺)이 찬술한 <대승아비달마집론(大乘阿毘達磨集論)>에 대한 주석서를 안혜(安惠)가 혼합하여 편찬한 것이다. 법상의 명목(名目) 등이 잘 설명되어 있어서, 옛날부터 <대승아비달마집론(大乘阿毘達磨集論)>과 함께 도처에서 널리 인용되었다. 보통 경전은 본사분(本事分)과 결택분(決擇分)으로 2분되어 있으며, 각 분은 4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 강태영본은 제2분의 결택분 중 제3품인 <득품>에 해당되는 경전을 수록하고 있으며, 전체 16권 중에 권14의 1첩이다. 권수에는 경제(經題) 아래로 ‘보(寶)’란 함차번호가 표시되어 있으며, 다음 행에는 논집자인 안혜(安惠)와 한역자인 현장의 이름이 2행에 걸쳐 소자로 각입되어 있다. 그 다음 행에 ‘결택분중득품제삼지이(決擇分中得品第三之二)’라는 품제(品題)가 보이고, 다음 행으로부터 본문이 시작되고 있다. 형태적 특징을 살펴보면, 이 책(권14)은 모두 27장으로 접련되어 있는데, 접은 한 장(張)의 길이는 가로 31.0cm, 세로12.2cm이다. 한 장은 모두 23행으로 1절(折)은 6행씩 접혀 있으며, 한 행은 14자씩 배자되어 있다. 판식은 상하단변으로 권자본이나 접장본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형식이다. 판수제(板首題)에는 약서명(略書名)과 권수표시(卷數) 및 장수(張數) 표시가 기재되어 있다. 장수(張數) 표시(表示)는 장1에서 26까지는 ‘문(文)’으로 표시되어 있으나, 맨 끝 27장만은 ‘장(張)’으로 표시되어 있어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일반적으로 초조본(初雕本) 고려대장경에서의 장수(張數)의 표시는 대부분 ‘장(丈)’이란 용어로 많이 표기되고 있다. 그리고 경문 가운데 14장 17행, 22장 17행, 26장 1행 등에 ‘경(竟)’자의 말획(末劃)이 결획(缺劃)되어 있는 특징을 보이고 있는데, 이는 송나라 태조의 익조(翼祖)의 이름자가 피휘(避諱)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초조본 간행시에 송판대장경의 일부가 그대로 복각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자체는 구양순체를 근간으로 불교경전에 걸 맞는 장중한 전형적인 해서체(楷書體)이다. 지질은 고려 초기로부터 중기 사이에 불경을 인출할 때 사용한 닥나무(楮皮)로 만든 상품 인경지(印經紙)이다. 초조본은 13세기 전반에 몽고의 병난으로 부인사에 보관된 목판이 소실되었던 까닭에 모두가 11~12세기 사이에 인출되었다. 강태영본은 지질과 먹색 등으로 보아 11세기에 판각하고 인출한 초간본으로, 보존상태는 비교적 양호하다. 이 책은 초조본으로 우리나라 인쇄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법상종의 소의 경전으로 논집부에 관한 불교학 연구에도 귀중한 내용을 담고 있어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출처 : 문화재청
  • 475203

    월인석보 권25(月印釋譜 卷二十五) / 조선 세조 5년(1459) / 1권 1책 / 목판본/왕실본 / 보림사 / 전남 장흥군 / 선장
    석가의 일대기와 그의 공덕을 칭송하는 내용을 국역하고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의 ‘월인’ 과 석보상절(釋譜詳節)의 ‘석보’ 두자를 취하여 책 이름으로 삼아 세조 5년(1459) 목판으로 간행한 책이다. 보림사본은 권25로 밝혀졌는데, 현재 남아 있는 월인석보 가운데 마지막 권에 해당된다. 종래에 석보상절(釋譜詳節)이 권24로 끝나고 있다는 사실로 보아, 월인석보(月印釋譜) 역시 권24가 마지막 권으로 파악하고 있었으나, 보림사에서 권25가 발견됨으로서 이러한 추정을 무색케 하고 있다. 이러한 가치를 지닌 보림사본 월인석보(권25)는 불교학 및 중세국어 연구에 있어서 여러 중요한 사실을 지니는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출처 : 문화재청
  • 475204

    월인석보 권15(月印釋譜 卷十五) / 조선 세조 5년(1459) / 1권 1책 / 목판본/왕실본 / 순창군 / 전북 순창군 / 선장
    석가의 일대기와 그의 공덕을 칭송하는 내용을 국역하고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의 ‘월인(月印)’ 과 《석보상절(釋譜詳節)》의 ‘석보(釋譜)’ 두자를 취하여 책 이름으로 삼아 세조 5년(1459) 목판으로 간행한 책이다. 《석보상절》과 《월인천강지곡》은 세종 때 간행된 바 있으며, 이때 세조의 적극적인 노력이 깃들어 있음도 알 수 있다. 조선은 ‘숭유억불(崇儒抑佛)’을 표방한 국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세조는 왕위에 등극하자마자 태조대왕을 비롯한 역대선왕들의 호불(好佛)성향보다도 더욱 확고하게 불경의 편찬, 국역, 간행사업 등에 강한 의지를 천명하여, 마침내 조선조에 전무후무한 불경간행 기관인 ‘간경도감(刊經都監)’을 설치하였던 인물이었다. 이처럼 그가 불경간행 사업에 굳은 뜻을 두고 있는 연유는 표면적으로는 그의 모친인 소헌왕후(昭憲王后) 심씨(沈氏)와 아들 명덕(德宗)의 명복을 기원함을 표방하고 있으나, 내면적으로는 왕위 등극 과정에서 사사된 어린 조카 단종과 사육신 등 많은 신하의 죽음에 대한 정신적인 고통과 인생의 무상함에서 벗어나고자 이에 적극적인 후원자가 되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이러한 세조의 의지가 반영된 간행사업 이었던 까닭에 정인지를 비롯한 많은 신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등극 초기로부터 해인사(海印寺)에서 대장경(大藏經) 50부를 인쇄하였다. 한편으로는 《금강경(金剛經)》과 《영가집(永嘉集)》을 교정(校定)케 하고 《증도가(證道歌)》 언해본을 간행하더니, 세조 5년(1459)에 이르러 《월인석보》를 직접 주관하여 편찬 간행하였다.
    출처 : 문화재청
  • 475205

    월인석보 권20(月印釋譜 卷 二十) / 조선 세조 5년(1459) / 1권1책 / 목판본/왕실본 / 임흥재 / 서울 성북구 / 선장
    석가의 일대기와 그의 공덕을 칭송하는 내용을 국역하고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의 ‘월인(月印)’ 두 자와 「석보상절(釋譜詳節)」의 ‘석보(釋譜)’ 두 자를 취하여 서명으로 삼아서 세조 5년(1459)에 목판으로 간행한 국역불경. 목판본 1권 1책. 임흥재 소장. 보물 제745∼11호. 이 책의 저본인 「석보상절(釋譜詳節)」은 수양대군이 세종의 명에 따라 석가의 일대기(釋譜) 중 요긴한 내용을 상세히 다루고(詳), 요긴하지 않은 것은 생략하여(節) 세종 29년(1447)에 편찬(編纂)한 것이며,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은 세종이 수양대군이 지어 올린 「석보상절(釋譜詳節)」을 보고 그 내용에 맞추어 부처의 공덕을 칭송하여 읊은 것으로 세종 30년(1448) 무렵에 간행된 바 있다. 이처럼 이 책의 저본은 이미 세종 때 편찬 간행된 바 있으며, 이때 세조의 적극적인 노력이 깃들어 있음도 알 수 있다. 이 책은 현재까지 발견된 「월인석보」 전 25권 중에 아직까지 복본이 없는 유일본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책이다. 비록 중앙의 일부가 결락되어 있어 아쉬움을 주고 있으나, 불교학 또는 불교판본학 연구는 물론 중세국어 및 문학 연구에 매우 귀중한 자료로 주목을 받고 있다.
    출처 : 문화재청
  • 475206

    성석린 고신왕지(成石璘 告身王旨) / 조선 태종 2년(1402) / 1건 / 국왕문서/교령류 / 성배현 / 전북 진안군 / 낱장
    이 문서는 태종 2년(1402) 11월에 성석린(成石璘, 1338∼1423)에게 내려진 사령장이다. 성석린은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으로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자수(自修), 호는 독곡(獨谷)이다. 공민왕 6년(1357) 과거에 급제한 후 여러 벼슬을 지냈다. 늘 검소한 생활을 즐겼으며, 초서를 잘 쓰고, 이제현이 그의 재능을 인정하여 국사를 편수하면서 항상 글을 짓게 할 만큼 글 솜씨가 뛰어났다. 시호는 문경(文景)이다. 성석린은 정종 2년(1400)에 소위 '제 2차 왕자의 난'을 평정하고 방원을 왕위에 오르게 한 공로로 익대좌명공신(翊戴佐命功臣) 3등에 녹훈되어 창녕부원군(昌寧府院君)에 봉해졌다. 다음해인 1402년 10월에는 영의정부사로 임명되었고, 같은 해 11월 17일에는 영의정부사겸판개성유후사사(領議政府事兼判開城留後司事)로 임명되었는데, 이 왕지는 바로 이에 대한 사령장이며, 다음날인 18일자로 내려진 것이다. 문서의 첫머리에 ‘왕지(王旨)’라고 쓰여져 있으며, 연호 위에 [조선국왕지인(朝鮮國王之印)]이 찍혀 있다. 모두 7행의 초서로 쓰여져 있는데, 보존상태는 비교적 양호하다. 이러한 사령장은 당사자 한 사람의 승진 과정과 경력을 연구함에 긴요할 뿐만 아니라 그 밖에도 서체와 어보(御宝)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출처 : 문화재청
  • 475207

    감지은니대방광불화엄경 정원본 권34(紺紙銀泥大方廣佛華嚴經 貞元本 卷三十四) / 고려 충숙왕 복위 6년(1337) / 1권 1축 / 필사본/사경 / 호림박물관 / 서울 관악구 / 권자장
    화엄경은 부처님이 설(說)한 광대방정(廣大方正)하고 화려장엄(華麗莊嚴)한 대승불교(大乘佛敎)의 대표적 경전이다. 이 책은 진본(晉本)과 주본(周本)의 화엄경 입법계품(入法界品)만을 당(唐) 정원(貞元) 연간에 반야(般若)가 다시 재번역하여 40권 본으로 엮은 것이다. 이 사경(寫經)은 정원화엄사경을 감지(紺紙)에 은니(銀泥)로 사성(寫成)하여 꾸민 것 중 권 제34의 영본(零本) 1축(軸)이다. 고려 충숙왕 복위 6년(1337)에 최안도(崔安道)가 처 구씨(具氏)와 함께 발원하여, 돌아가신 부모의 명목을 빌고 자기 부부의 공덕을 쌓기 위해 사성한 것의 일부이다. 그 중 권 제31ㆍ34의 2축이 같은 불복(佛腹)에서 나왔는데, 사성기(寫成記)가 있는 권 제31의 1축은 (호암미술관 소장) 국보 제215호로 지정되었고, 사성기가 없는 권 제34의 1축은 분리되어 호림박물관에 소장되었다. 두 사경을 대사할 때 원필(圓筆)의 송설서섭(松雪書法)으로 유려하게 은니로 쓴 경문과 짙은 감색으로 정성들여 품위있게 만든 감지의 솜씨, 그리고 황금으로 도금하여 화려하게 장식한 권축(卷軸) 등이 모두 꼭 같다. 다만 변상도(變相圖)에서 그린 사람에 따른 섬세도에 차이가 나타날 뿐이다. 이러한 공통점에 의해 본 사경의 사성 시기는 권 제31과 같이 충숙왕 복위 6년(1337)으로 추정된다.
    출처 : 문화재청
  • 475208

    감지금니대방광불화엄경입불사의해탈경계보현행원품(紺紙金泥大方廣佛華嚴經入不思議解脫境界普賢行願品) / 고려 충숙왕 복위 3년(1334) / 1첩 / 필사본/사경 / 호림박물관 / 서울 관악구 / 절첩장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보현행원품(普賢行願品)은 진본(晉本)과 주본(周本)의 입법계품(入法界品)만을 당(唐)나라의 정원(貞元) 연간에 반야(般若)가 재번역하여 엮은 40권본이다. 약칭하여‘ 보현행원품(普賢行願品)’ 혹은 ‘사십화엄경(四十華嚴經)’, ‘정원화엄경(貞元華嚴經)’이라 일컫기도 한다. 이 사경은 감지(紺紙)에 금니(金泥)로 사성(寫成)한 것 중 권 제34의 영본(零本) 1첩이 전래된 것이다. 사성기(寫成記)ㆍ변상도(變相圖)ㆍ경문과 장식된 표장(表裝)을 완전하게 갖춘 고려 장식경(裝飾經)이다. 사성기에는 자선대부(資善大夫) 장작원사(將作院使) 안새한(安賽罕)이 고려 충숙왕 복위 3년(1344) 9월에 부모의 훈육에 대한 은혜를 마음속으로 간절하게 생각하고, 아울러 황제ㆍ황태후ㆍ태자 등의 은덕에 대하여도 지성껏 발원하여 화엄경 일부 81권을 사성함을 밝혀 주고 있다. 경문은 감지에 가늘게 금사란(金絲欄)을 그어 이어 붙이고 한 장에 42항 17자씩 원필(圓筆)의 송설체(松雪體) 서법으로 유려하게 필서하였으며, 그 끝에 ‘원통(元統) 2년 갑술 9월일에 쓴 것임’을 표시하고 있다. 개인의 발원 사경임에도 그 품격이 뛰어나고 고려 사경으로서의 격식을 완전히 갖추고 있는 수작이다.
    출처 : 문화재청
  • 475209

    상지금니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橡紙金泥大方廣圓覺修多羅了義經) / 고려 공민왕 6년(1357) / 2권 1첩 / 필사본/사경 / 호림박물관 / 서울 관악구 / 절첩장
    이 사경은 상지에 금니(金泥)로 앞면에 당(唐)나라 때 불타다라(佛陀多羅) 번역의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大方圓覺修多羅了義經)과 서천(西天) 지공화상(指空和尙)의 문수최상승무생계법(文殊最上乘無生戒法)을 쓰고, 뒷면에 육조화상(六祖和尙)의 법보단경(法寶壇經)을 써서 1첩으로 한 것이다. 권머리에 원각경의 제명(題名)을 금니로 크게 쓰고, 한 장의 광곽 21.5의 첩지를 6절한 것 중 1절지에는 먼저 호법선신(護法善神)인 신장상(神將像)을 그렸으며, 다음의 5절지에는 원각경의 설법도(說法圖)를 금니로 묘사하고 있다. 염색이 연한 상지에 금니로 그렸기 때문에 도상(圖像)이 선명하게 보이지 않지만, 그 묘사는 매우 섬세정치(纖細精緻)하고 우아미려(優雅美麗)하다. 경문(經文)은 상하단변의 두 변 사이에 가는 금니사란(金泥絲欄)을 긋고 먼저 원각경을 한 장에 42항 19자씩 18장에 금니 필서(筆書)하여 마친 다음, 사성기(寫成記)를 실었다. 고려 공민왕 6년(지정 17,1357)에 시주자 최적(崔迪)ㆍ일장(一莊)이 김청(金淸)ㆍ계심(戒心)과 함께 발원, 경 소지자인 계항(戒桁)을 위해 사성한 것임을 밝히고 있다. 이 사경은 평민이 발원하여 사성한 경이므로 필사의 형식과 세련미, 그리고 사경을 만든 솜씨와 품위가 떨어지지만 서민의 개인 공덕경(功德經)인 점에서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출처 : 문화재청
  • 475210

    감지은니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37(紺紙銀泥大方廣佛華嚴經 周本 卷三十七) / 고려시대(14세기) / 1권 1첩 / 필사본/사경 / 호림박물관 / 서울 관악구 / 절첩장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은 부처님이 설한 광대방정(廣大方正)하고 화려장엄(華麗莊嚴)한 대승불교(大乘佛敎)의 대표적 경전이다. 이 사경(寫經)은 당(唐)나라 측천무후(則天武后)의 무주(武周)시대 실차난다(實叉難陀) 등이 새로 번역한 80권본 화엄경 가운데 권 제37을 감지에 은니(銀泥)로 사성(寫成)한 영본(零本) 1첩(帖)이 전래된 것이다. 경문은 금니(金泥)로 위와 아래에 단변을 긋고 그 사이에 금니의 세사란(細絲欄)을 친 다음, 한 장에 42항 17자씩 13장 2절까지 원필(圓筆)의 송설체(松雪體) 서법으로 유려하게 은니 필서(筆書)하고 있다. 표지는 감색 바탕 위에 금니로 자모쌍선(子母雙線)을 가장자리에 돌리고 그 안에 세로로 3개의 보상화(寶相華)를 꽉 차게 그려 배치한 다음, 그 둘레에 잎을 그려 장식하였다. 그리고 앞 표지에는 중앙 장방형의 자모쌍선 안에 경 이름ㆍ권차(卷次)를 금니로 필서하고 그 위에 개법장진언(開法藏眞言)의 부호를 표시하였으며, 장방형의 위와 아래에 연화를 그려 장식하고 그 아래 부분의 둥근 감색 바탕 안에 역본(譯本) 표시인 ‘周(주)‘자를 금니로 써서 꾸몄다. 이 사경은 같은 박물관에 소장된 보물 제752호 《감지금니대방광불화엄경입불사의해탈경계보현행원품정원본<권 34>(紺紙金泥大方廣佛華嚴經入不思議解脫境界普賢行願品貞元本<卷 三十四>》에 못지 않은 정교한 작품이나 사성기(寫成記)가 없는 것이 아쉽다. 사경 전체의 품격으로 미루어 볼 때, 14세기 전반기의 사성으로 감식된다.
    출처 : 문화재청
  • 475211

    감지은니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5~6(紺紙銀泥大方廣佛華嚴經 周本 卷五~六) / 고려시대(14세기) / 2권 1첩 / 필사본/사경 / 호림박물관 / 서울 관악구 / 절첩장
    이 사경(寫經)은 당나라 실차난타(實叉難陀)가 한역한 80권본 화엄경 가운데 권 제5와 제6을 14세기 전기에 감색 종이에 은니(銀泥)로 사성한 2권 1첩본이다.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이라고 하는 화엄경은 석가모니가 성도한 깨달음의 내용을 그대로 설법한 경문으로 법계 평등(法界平等)의 진리를 증오(證悟)한 부처의 만행(萬行)과 만덕(萬德)을 칭양하고 있다. 이 화엄경은 전체 39품 가운데 세주묘엄품(世主妙嚴品)의 마지막과 여래현상품(如來現相品)의 내용이다. 이 사경은 변상도와 감지의 색깔, 은니로 쓴 본문의 글씨 그리고 표지의 장엄 등으로 보아 고려시대 사경의 전성기인 14세기 전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출처 : 문화재청
  • 475212

    감지금니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 권7(紺紙金泥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 卷七) / 고려시대(14세기) / 1권 1첩 / 필사본/사경 / 호림박물관 / 서울 관악구 / 절첩장
    능엄경(楞嚴經)은 온갖 번뇌로부터 해탈의 경지에 이르게 하는 요의(了義)를 설한 경전이다. 이 능엄사경(楞嚴寫經)은 당(唐) 시대 반랄밀제(般剌蜜帝)가 번역하고 미가석가(彌伽釋迦)가 역어(譯語)하고, 방융(房融)이 필수(筆受)한 것에 의하여 감지에 금니(金泥)로 사성(寫成)한 것 중 권 제7 영본(零本) 1첩이 전래된 것이다. 변상도(變相圖)가 없고, 경문(經文)은 제12장 2절 이하가 결락되어 묵서(墨書)로 보충하고 있다. 경문은 금니 상하단변의 두 변 사이 22.8cm에 가는 금니사란(金泥絲欄)을 긋고 한 장에 42항 17자를 금니로 필서하고 있다. 비록 경문이 결락되었지만, 원필(圓筆)의 송설체(松雪體) 서법으로 쓴 경문은 필력이 유려하고 정교하여 그 품이 돋보인다. 이 사경은 감지를 정제한 솜씨와 진한 황금색으로 유려 정교하게 쓴 경문의 서법, 그리고 경 표지를 미려하게 장식한 면으로 볼 때 14세기 전반기에 사성된 것으로 보인다.
    출처 : 문화재청
  • 475213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1(初雕本 大方廣佛華嚴經 周本 卷一) / 고려시대(11세기) / 1권 1축 / 목판본/대장도감본 / 경기도박물관 / 경기 용인시 / 권자장
    이 책은 당나라 실차난타(實叉難陀)가 번역한 『화엄경(華嚴經)』 80권 가운데 제 1권이다. 고려시대 목판본으로 현종 때(재위 1011~1031) 부처님의 힘으로 거란의 침입을 극복하고자 만든 초조대장경 가운데 하나이다. 권두(卷頭)는 홍경(弘景) 등의 표전문(表箋文)부터 시작하여 신역팔십화엄경(新譯八十華嚴經)의 총목차(總目次)가 칠처구회순(七處九會順)으로 39품명(品名)과 80권차(卷次)가 수록되고, 이어 천책금륜성신황제(天冊金輪聖神皇帝)의 서문(序文)에 이어서 세주묘엄품(世主妙嚴品)이 시작되고 있으며, 권말(卷末)에는 「성역이년세차을해(699) 십월팔일역필」(「聖曆二年歲次乙亥(699) 十月八日譯畢 」)에 이어 석범본자(釋梵本者)ㆍ역어자(譯語者)ㆍ필수자(筆受者)ㆍ증의자(證義者)의 명단(名單)이 열기(列記)되어 있다. 이 책은 초조대장경으로, 이후에 만들어진 해인사대장경(재조대장경 또는 고려대장경)과 비교해 볼 때 몇 가지 차이점이 있다. 목판의 새김이 정교한 반면에 해인사대장경과 글자수가 다르고 간행연도를 적은 기록은 없으며, 군데군데 피휘(避諱:문장에 선왕의 이름자가 나타나는 경우 공경과 삼가의 뜻을 표시하기 위하여 글자의 한 획을 생략하거나 뜻이 통하는 다른 글자로 대치하는 것)와 약자(略字)가 나타난다. 또 초조대장경은 책의 장수를 표시하는데 대체로 ‘장(丈)‘자나 '폭(幅)'자를 쓰는 데 비해 해인사대장경은 ‘장(張)‘자로 통일되어 있다. 이 책에서도 '경(敬)'자의 한 획이 빠져있는 점, 각 장의 글자수가 23항(行) 14자로 해인사대장경의 24항(行) 17자와 다른 점, 책의 장수 표시로 '장(丈)'자를 쓰고 있는 점, 간행기록이 없는 점 등에서 초조대장경의 특징을 살필 수 있다. 각자(刻字)는 정교(精巧)하고, 글자의 묵색(墨色)이 시커멓게 윤(潤)이 나며, 지질(紙質)이 자못 고박(古樸)한 11세기(世紀) 인출(印出)의 정각본(精刻本)이다. 초조대장경(初雕大藏經)의 주본화엄경(周本華嚴經)은 총 80권 중 11권이 국내(國內)에서 발견되었으나, 제 1권은 이것이 유일본(唯一本)으로서 초조판(初雕板)의 원형(原形)을 살필 수 있는 귀중(貴重)한 자료이다.
    출처 : 문화재청
  • 475214

    감지금니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46(紺紙金泥大方廣佛華嚴經 周本 卷四十六) / 고려시대(14세기) / 1권 1축 / 필사본/사경 / 통도사성보박물관 / 경남 양산시 / 권자장
    이 책은 당나라 때 실차난타(實叉難陀)가 번역한 80권짜리 주본화엄경(周本華嚴經)을 저본으로 감지(紺紙)에 금니(金泥)로 사성한 고려사경이다. 현재 통도사 성보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이 사경(寫經)은 당나라 측천무후 때 실차난타(實叉難陀)가 번역한 80권본 주본 화엄경 가운데 권46의 경문을 감지(紺紙)에 금니로 사성(寫成)한 1축에 해당된다. 장정은 마치 두루마리처럼 펼쳐 볼 수 있는 권자본(卷子本) 형태로 고려사경 중에는 비교적 희귀하나, 앞의 표지가 떨어져 나가 그 표지의 형식이나 사경배경을 알 수 없는 점이 아쉽다. 권수에는 금니로 그려진 변상도가 실려 있는데, 이 변상도는 보살에 둘러쌓인 부처님이 설법하는 장면이 선묘로 묘사되어 있으며, 사주의 테두리에는 금강저(金剛杵)를 형식화하여 장엄하고 있다. 변상도의 우측에는 경제(經題)가 쓰여져 있고 그 아래로 ‘주(周)’가 기재되어 있어 바로 이 사경이 주본 화엄경을 저본으로 사성되었음을 알 수 있으며, 다음 행의 우측 상단에 ‘불불사의법품제삼십삼지일(佛不思議法品第三十三之一)’이란 품제(品題)가 표시되어 있다. 이 사경의 제작시기는 감지(紺紙)에 금니로 쓰인 형식, 변상도(變相圖)와 표지화 및 사경 기법(技法), 그리고 장축의 특징 등으로 보아 대략 고려후기 14세기에 조성된 사경으로 추정된다.
    출처 : 문화재청
  • 475215

    남명천화상송증도가(南明泉和尙頌證道歌) / 고려 고종 26년(1239) / 1책 / 목판본/사찰본 / 김종규 / 서울 종로구 / 선장
    이 책은 주자본(鑄字本) 『남명천화상송증도가』를 최의에 의해 고려 고종 26년(1239)에 번각한 판본이다. 당나라의 승려 현각(玄覺)이 지은 선종(禪宗)의 지침서인 「증도가(證道歌)」의 각 구절 끝에 송나라의 남명선사(南明禪師) 법천(法泉)이 7자 3구씩 총 320편을 읊어붙여 증도의 깊은 뜻을 구체적으로 밝힌 책인데, 닥종이에 찍은 목판본으로 크기는 세로 27.5cm, 가로 16.6cm이다. 책머리에는 1077년에 오용천용(吳庸天用)이 지은 서문이, 권말에는 1076년에 축황(祝況)의 후서(後序)가 실려 있다. 그 뒤에 최이(崔怡)가 주자본을 중조(重彫)한 기록이 붙어 있다. 이에 의하면 선종에서 「증도가(證道歌)」가 매우 중요한 책임에도 불구하고 전해지지 않자 금속활자본을 또다시 새겨냄으로써 후대에 오래 전하기 위해 만들었음을 밝혔다. 이 판본은 글자에 나뭇결이 나타나고 있어 후쇄본임을 알 수 있으나, 새김이 정교하여 13세기 초기 주자본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이 판본은 비록 목판본이지만 고려시대 활자인쇄의 시기와 성격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로 매우 중요하게 평가되고 있다.
    출처 : 문화재청
  • 475216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 / 조선 태종 1년(1401) / 10권 5책 / 목판본/왕실본 / 국립중앙박물관 / 서울 용산구 / 선장
    능엄경(楞嚴經, 당(唐) 반랄밀제(般刺密帝) 역, 송 계환(戒環) 해석)은 온갖 번뇌로부터 해탈의 경지에 이르는 요의(要義)를 설(說)한 경전이다. 이 판본은 조선 태조가 신총(信聰)에게 특대자(特大字)를 쓰게 하여 새기게 한 10권 5책 전질이 전래된 것이다. 권말에 있는 권근(權近)의 발문(跋文)에 의하면 조선 태조가 태상왕(太上王)으로 있던 태종 1년(건문 3, 1401)에 신총대사에게 큰 자 능엄경을 쓰게 하여 어람(御覽)하고 판각하게 하여 보시(布施)한 것이다. 이 판본은 신총대사의 독특한 필서체로 판서본(板書本)을 써서 정교하게 새긴 조선 초의 독자적인 판본이다. 이 외에도 보물 제959호 기림사(祇林寺)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복장(腹藏) 전적에 같은 판본이 전한다. 이외에 신총대사가 필서한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이 보물 제968호로 지정되어 있다.
    출처 : 문화재청
  • 475217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언해) 권1(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諺解) 卷一) / 조선 세조 7년(1461) / 1권1책 / 활자본/금속활자본 / 조병순 / 서울 중구 / 선장
    금강경ㆍ원각경ㆍ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과 함께 불교 전문강원의 사교과(四敎科) 과목으로 채택되어 학습되는 불경을 조선 초기에 우리말로 번역하여 조선 세조 때 을해자(乙亥字)로 인출한 언해본. 금속활자본(을해자) 1권 1책(결본). 성암고서박물관(조병순) 소장. 보물 제760호. 이 능엄경에 관한 우리 나라 고승의 주석서로는 고려시대 보환(普幻)의 ‘능엄경신과 (楞嚴經新科)’ 2권과 ‘수능엄경환해산보기(首楞嚴經環解刪補記)’ 2권, 조선후기 유일(有一)의 ‘능엄경사기(楞嚴經私記)’ 1권과 의첨(義沾)의 ‘능엄경사기’ 1권 등이 현존하고 있으며, 고려 소자본 능엄경을 비롯하여 조선시대에 간경도감에서 편찬한 언해본을 비롯하여 다양한 판본이 전래되고 있다. 우리나라에 현재까지 전해오는 가장 오래된 것으로는 1235년에 이승광(李勝光)등이 간행한 판본으로, 현재 해인사에 그 목판이 전하고 있다. 그리고 1309년에 소자(小字)로 간행된 묵서구결이 들어 있는 호접장본(蝴蝶裝本), 1372년에 안성 청룡사(靑龍寺)에서 간행한 고려 간본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1401년에 남송판을 복각한 대자판본, 사찰본 중의 최고본인 1443년의 성달생(成達生)의 발문이 있는 전라도 화암사판(花岩寺板) 등의 한문본이 보인다. 1461년에 원나라 유측의 능엄경 회해본을 을해자로 간행한 국역활자본과, 1462년에 간경도감에서 세조의 명으로 언해하여 간행한 것이 있다. 이밖에도 전국의 사찰에서 16종이상 개판되었을 만큼 널리 유통되었던 불경이다. 성암고서박물관(조병순) 소장의 해제본은 바로 세조 7년(1461) 주자소에서 을해대ㆍ중ㆍ소자와 한글활자로 인출한 언해본 전 10권 중 권1의 1책에 해당된다. 전후의 표지는 최근에 새로 비단으로 개장한 것으로 보아, 불복(佛腹)에서 발견된 책으로 보인다. 이 책의 전체 크기는 36.6cm×25.2cm이다. 권수에는 변상도는 없이 바로 급남(及南)이 쓴 ‘수능엄경요해서(首楞嚴經要解序)’가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은 세조의 명으로 언해 편찬되어 주자소에서 한자 및 한글활자로 간행된 활자본이다. 한글활자는 정방형의 고딕체의 소자로 쓰여 있으며, 방점(傍點)이 붙어 있어 한글 창제 무렵의 국어의 특징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이 책에는 을해대ㆍ중ㆍ소자와 한글활자가 혼용되고 있어 조선초기의 인쇄사 연구에 있어서 귀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출처 : 문화재청
  • 475218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언해)권2,5(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諺解) 卷二, 五) / 조선 세조 7년(1461) / 2권 2책 / 활자본/금속활자본 / 서울대학교 / 서울 관악구 / 선장
    《대불정여래밀인수증료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은 선(禪)을 닦아 감각작용에서 유발되기 쉬운 온갖 번뇌로부터 해탈의 경지에 이르게 하는 요의(要義)를 설한 경전으로, 부처님의 말씀을 머릿속으로만 이해하는데 그치지 않고 자신이 직접 경험하여 얻을 것을 주요사상으로 하고 있다. 당(唐)의 반자밀제(般剌密帝)가 번역하고, 송(宋)나라 계환(戒環)이 해설하여 10권본으로 엮은 것이다. 흔히 ‘대불정수능엄경(大佛頂首楞嚴經)’, ‘수능엄경(首楞嚴經)’ 혹은 ‘능엄경(楞嚴經)’이라 일컫는다. 대(大)는 ‘체(體)’이고 불정(佛頂)은 ‘구경각(究竟覺)’이니, 대불정(大佛頂)은 경전의 법체(法體)이다. 여래밀인수증료의(如來密因修證了義)는 ‘여래의 비밀한 인(因)을 닦아서 증득할 요의체(了義體)’라는 뜻이다. 제보살만행수능엄(諸菩薩萬行首楞嚴)은 ‘여러 보살들이 이타행(利他行)을 닦음에 미세한 번뇌를 끊어 자타의 수행을 구족한다’는 의미이다. 이 책은 전 10권 중 권2와 권5에 해당하며, 원래 세종 31년(1449)에 수양대군이 왕명으로 번역에 착수한 후 마무리를 못하고 미루어 오다가 세조 7년(1461)에 유명한 승려와 유학자들을 총동원하여 완성하고 찍어낸 것이다.
    출처 : 문화재청
  • 475219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언해)권7,8(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諺解) 卷七, 八) / 조선 세조 7년(1461) / 2권 2책 / 활자본/금속활자본 / 동국대학교 / 서울 중구 / 선장
    세조 7년(1462)에 세종대왕의 뜻을 받들어 당대의 고승과 유학자를 동원하여 국역하여 주자소에서 을해자(乙亥字)로 간행한 국역본 능엄경(國譯本 楞嚴經)이다. 당나라 반자밀제(般刺密帝)가 번역하고 송나라의 계환(戒環)의 해가(解) 붙어 있는 10권 가운데 제 7권과 8권이다.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은 줄여서 '대불정수능엄경', '대불정경', '수능엄경', '능엄경' 등으로 부른다. 우리나라에서는 금강경, 원각경, 대승기신론 등과 함께 강원의 사교과(四敎科) 과목으로 채택되어 학습되고 있을 정도로 귀중하게 여기는 경전이다. 이 경전은 자신에게 불성이 내재되어 있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여래의 진실한 지견을 얻어 깨달아야 한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다. 이를 위해 마음의 실상이 무엇인지, 깨달음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밝히고, 몸과 마음이 둘이 아니며 오음(색(色), 애(受), 상(想), 행(行), 식(識)등 마음의 작용)이 모두가 허망하며, 세간의 모든 법이 모두 여래장의 미묘한 진여성(眞如性)의 작용이라 하여 마음의 영원불멸성(永遠不滅性)을 깨닫도록 가르치고 있다. 이렇게 여래장, 업, 육근(六根), 육식 관세음보살(六識 觀世音菩薩)의 화현(化現) 등과, 깨달음의 세계로 진입하는 방법, 해탈을 위한 능엄주, 보살의 수행 등의 내용을 지니고 있다. 이 경전은 대ㆍ소승 뿐 아니라 밀교사상(密敎思想)과 선정(禪定)을 역설하고 있어 선종(禪宗)에서도 중요시하는 경전이다. 부처님의 말씀을 머리 속으로 이해하는데 그치지 않고 자신이 직접 체득하여 힘을 갖는 것을 기본사상으로 하고 있으며, 스님들이 수련하는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배우는 경전이다. 이 능엄경 국역본은 원래 세종의 명으로 세종 31년(1449)에 수양대군이 번역에 착수한 것인데, 마무리를 못하고 미루어 오다가 세조 7년(1461)에 유명한 승려와 유학자들을 총동원하여 완성하고 을해자로 찍어낸 것이다. 이 을해자본은 간경도감(刊經都監) 국역 불경 간행의 기준이 되었다.
    출처 : 문화재청
  • 475220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언해)권7~8, 9~10(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諺解) 卷七∼八, 九~十) / 조선 세조 7년(1461) / 4권 2책 / 활자본/금속활자본 / 세종대왕기념사업회 / 서울 동대문구 / 선장
    능엄경(楞嚴經, 당(唐) 반랄밀제(般剌蜜帝) 역, 송(宋) 계환(戒環) 해석)은 모든 번뇌의 근원은 욕망이며 이 욕망은 망상에서 생겨나며 망상을 끊는 방법 등 번뇌로부터 해탈의 경지에 이르도록 설(說)한 경전이다. 흔히 ‘대불정 수능엄겸’, ‘수능엄경’, ‘능엄경’이라 일컫고 있으며 우리나라 불교 강원에서 필수과목으로 강의 하고 있는 경전이다. 이 판본은 계환의 해석본에 의거, 조선 세조 7년(1461)에 국역하여 10권으로 엮어 을해자(乙亥字)로 찍어낸 400 부 가운데 하나로 권 제7ㆍ8의 1책과 권 제9ㆍ10의 1책이 전래된 것이다. 이 국역본은 본래 세종 31년(1449) 왕명으로 수양대군(首陽大君)이 착수한 것이나 완성시키지 못하고 뒤로 미루어졌다. 그러다가 세조 7년 5월 회암사(檜巖寺)의 불사에서 석가분신사리의 출현이 있었을 때, 효령대군(孝寧大君)이 다시 그 국역의 완성을 세조에 주청함에 혜각존자 신미(信眉)ㆍ한계희(韓繼禧)ㆍ김수온(金守溫) 등에 국역과 교정을 명하여 완성을 보게 된 것이다. 인출은 세조 원년(1455) 강희안(姜希顔)의 글씨를 자본(字本)으로 만든 을해자의 큰자ㆍ 중간자ㆍ 작은자를 사용하고, 한글은 이 능엄경 국역본을 찍기 위해 새로 주조한 한글 활자를 사용하여 세조 7년에 이루어졌다. 그리고 초인하여 거듭 교정하고 주서(朱書)로 바로잡은 다음 책머리에 ‘校正(교정)’의 도장을 찍었다. 권 제10에는 세조 7년 9월에 본 능엄경을 다시 번역 교정하여 완성시킨 내용의 국한문 발(跋)이 있어, 특히 중요시 되고 있다. 이 을해자 인본의 내용을 거듭 교정하여 간경도감(刊經都監)이 세조 8년(1462)에 다시 간행해 낸 것이 최초의 목판본 능엄경언해(楞嚴經諺解)이며, 그 체제가 이후 한문언해본의 규범이 되었다. 따라서 이 을해자 능엄경 국역본은 역경사(譯經史)에 있어 귀중한 자료가 된다. 을해자 국역의 전래본은 현재 권 제7∼10(보물 제763호) 외에 권 제1(보물 제760호)은 조병순, 권 제2ㆍ5(보물 제761호)는 서울대학교 규장각, 권 제3ㆍ7ㆍ8(보물 제762ㆍ948호)은 동국대학교 도서관, 권 제4ㆍ7ㆍ8(보물 제973)은 이양재, 권 제6(보물 제1049호)은 최영란이 각각 소장하고 있다.
    출처 : 문화재청
  • 475221

    중국에서 찬술된 위경으로 알려져 있으나 금강경 ‧ 원각경 ‧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과 함께 불교 전문강원의 사교과(四敎科) 과목으로 채택되어 학습되는 불경으로 조선 초기에 국문으로 번역하여 조선 세조 때 간경도감에서 목판으로 간행한 불경. 목판본(간경도감판) 8권 8책(권 1, 5 결본). 강태영 소장 보물 제764호. 이 불경은 인도의 나란타사에서 비장하여 인도 이외의 나라에는 전하지 말라는 왕명에 의해 당나라 이전에는 중국 및 우리나라에 전래되지 않았다고도 하며, 따라서 중국에서 후대에 찬술된 위경(僞經)이라는 설이 지배적이다. 지금도 우리나라의 일부 선종사찰에서는 이 경의 제7권에 수록된 수능엄다라니를 외우는 것을 매일의 일과로 삼고 있으며, 원명은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이며, 줄여서 ‘대불정수능엄경’ 또는 ‘능엄경’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 불경은 본래 모두 10권으로 편성되어 있다. 우리나라에 현재까지 전해오는 가장 오래된 것으로는 고려 고종 22년(1235)에 이승광(李勝光)등이 간행한 판본으로, 현재 해인사에 그 목판이 전하고 있다. 그리고 고려 충선왕 1년(1309)에 소자(小字)로 간행된 묵서구결이 들어 있는 호접장본(蝴蝶裝本), 공민왕 21년(1372)에 안성 청룡사(靑龍寺)에서 간행한 고려간본 등이 알려져 있다. 조선시대 태종 1(1401)년에 남송판을 복각한 대자로 쓰여진 판본, 그리고 사찰본 중에 최고본은 세종 25(1443)년에 성달생(成達生)이 정서하여 전라도 화암사(花岩寺)에서 간행된 한문본이 보인다. 세조 7년(1461)에 세조의 명으로 능엄경 계환해본을 주자소에서 을해자로 간행한 국역활자본과, 1462년에 간경도감에서 세조의 명으로 국역활자본을 수정하여 간행한 것이 있다. 이밖에도 전국의 주요 사찰에서 16종 이상 개판되었을 만큼 널리 유통되었던 불경이다. 이처럼 능엄경은 다양한 판종을 가지고 있는데, 강태영본은 바로 세조 8년(1462)에 간경도감에서 목판으로 간행한 국역본 전 10권 중 권2~4, 6~10의 8권 8책(결본)에 해당된다. 전후의 표지는 능화문(菱花紋)이 주로 조선전기에 사용된 당초문양으로 보아 원상(原狀)으로 보이며, 표제는 목판으로 인쇄한 제첨에 ‘대불정수능엄경(大佛頂首楞嚴經)’이란 약서명이 기입되어 있으며, 이 책의 전체 크기는 33.3cm×23.0cm이다. 권8의 앞표지를 넘기면, 권두서명이 2행에 걸쳐 기재되어 있고, 3행에 ‘계환 해(戒環 解)’란 주해자의 표시가 보이고 있다. 특히 권수서명 아래의 난외에는 ‘교정(校正)’이란 인기가 날인되어 있어 교정이 완료된 판본임을 확인케 한다. 그리고 간경도감본 능엄경의 형태적 특징을 살펴보면, 변란은 사주쌍변으로 판면에는 계선(界線)이 있으며, 광곽의 크기는 세로 22.3cm×18.5cm이다. 인쇄면은 반엽을 기준으로 9행이며, 매 행은 본문 한자와 한글이 혼합되어 17자씩 배자되어 있으며, 그리고 협주(夾註)는 소자 쌍행으로 되어 있다. 중앙의 접힌 부분의 판심부에는 상하에 대흑구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고, 그 사이에 상하로 흑어미가 서로 내향하고 있다. 그리고 어미 사이에 ‘능엄경(楞嚴經)’ 라는 판심제가 보이고 있으며, 그 아래로 권수 및 장수가 표시되어 있다. 권10의 말미에는 <음석(音釋)>이 부기되어 있는데, 여기에는 ‘요해(要解)’ㆍ‘의해(義解)’ㆍ‘회해(會解)’ㆍ‘집주(集註)’ 등의 항목으로 출전이 구분 수록되어 있다. 지질은 세종 때부터 불경을 인쇄할 때에 흔히 사용되었던 가는 가로발문이 들어 있는 얇은 저지(楮紙)가 주로 사용되고 있으나 간헐적으로 볏짚이 혼합된 고정지도 보이고 있으며, 종이의 표면은 도침이 매우 잘되어 있는 느낌을 주고 있다. 자체는 대자는 매우 해정한 해서체로 세조의 친필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전체적으로는 안진경의 필의가 느껴진다. 한글자체는 당시의 활자본에서 보여 주고 있는 것과 같이 정방형의 고딕체의 소자로 쓰여 있다. 물론 한글에는 방점(傍點)이 붙어 있어 한글 창제 무렵의 국어의 특징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 책은 세조의 하명으로 국역한 능엄경을 간경도감에서 1462년에 간행한 국역불경으로, 중세국어 연구에 매우 귀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어 완질본은 국보로 지정되어 있을 정도이다. 또한 형태적 특징이 가장 정형적으로 잘 갖추어 있는 간경도감 판본으로 조선 전기의 불경판본 연구에 있어 매우 귀중한 목판본이다.
    출처 : 문화재청
  • 475222

    대불정여래밀인수증료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언해)-1.권5, 8, 9(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諺解) 卷五, 八, 九) / 조선 세조 8년(1462) / 3책 / 목판본/간경도감본 / 서울대학교규장각 / 서울 관악구 / 선장
    《대불정여래밀인수증료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은 선(禪)을 닦아 감각작용에서 유발되기 쉬운 온갖 번뇌로부터 해탈의 경지에 이르게 하는 요의(要義)를 설한 경전으로, 부처님의 말씀을 머릿속으로만 이해하는데 그치지 않고 자신이 직접 경험하여 얻을 것을 주요사상으로 하고 있다. 《대불정여래밀인수증료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은 흔히 ‘대불정수능엄경(大佛頂首楞嚴經)’, ‘수능엄경(首楞嚴經)’ 혹은 ‘능엄경(楞嚴經)’이라 일컫는다. 대(大)는 ‘체(體)’이고 불정(佛頂)은 ‘구경각(究竟覺)’이니, 대불정(大佛頂)은 경전의 법체(法體)이다. 여래밀인수증료의(如來密因修證了義)는 ‘여래의 비밀한 인(因)을 닦아서 증득할 요의체(了義體)’라는 뜻이다. 제보살만행수능엄(諸菩薩萬行首楞嚴)은 ‘여러 보살들이 이타행(利他行)을 닦음에 미세한 번뇌를 끊어 자타의 수행을 구족한다’는 의미이다. 이 책은 당(唐)의 반자밀제(般剌密帝)가 번역하고, 송(宋)나라 계환(戒環)이 풀이한 것을 세조8년(1462)에 간경도감(刊經都監)에서 목판으로 찍어낸 국역본으로, 전체 10권 10책 가운데 남아있는 권5, 권8, 권9의 3책이다.
    출처 : 문화재청
  • 475223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2. <권 1, 4, 4>(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 <卷 一, 四, 四>) / 조선 세조 8년(1462) / 3권 3책 / 목판본/간경도감본 / 서울대학교규장각 / 서울 관악구 / 선장
    《대불정여래밀인수증료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은 선(禪)을 닦아 감각작용에서 유발되기 쉬운 온갖 번뇌로부터 해탈의 경지에 이르게 하는 요의(要義)를 설한 경전으로, 부처님의 말씀을 머릿속으로만 이해하는데 그치지 않고 자신이 직접 경험하여 얻을 것을 주요사상으로 하고 있다. 《대불정여래밀인수증료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은 흔히 ‘대불정수능엄경(大佛頂首楞嚴經)’, ‘수능엄경(首楞嚴經)’ 혹은 ‘능엄경(楞嚴經)’이라 일컫는다. 대(大)는 ‘체(體)’이고 불정(佛頂)은 ‘구경각(究竟覺)’이니, 대불정(大佛頂)은 경전의 법체(法體)이다. 여래밀인수증료의(如來密因修證了義)는 ‘여래의 비밀한 인(因)을 닦아서 증득할 요의체(了義體)’라는 뜻이다. 제보살만행수능엄(諸菩薩萬行首楞嚴)은 ‘여러 보살들이 이타행(利他行)을 닦음에 미세한 번뇌를 끊어 자타의 수행을 구족한다’는 의미이다. 당(唐)의 반자밀제(般剌密帝)가 번역하고, 송(宋)나라 계환(戒環)이 해설하여 10권본으로 엮은 것을 세조 8년(1462)에 간경도감(刊經都監)에서 간행하였는데, 이 책은 그 판을 후대에 다시 찍은 것이다. 권4에 찍힌 학열(學悅)이 교정을 보았다는 도장과 지질(紙質) 및 인쇄상태로 보아 성종 즉위 기간(1470~1494)에 인쇄된 것으로 추정된다.
    출처 : 문화재청
  • 475224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29(初雕本 大方廣佛華嚴經 周本 卷二十九) / 고려시대(11세기) / 1권 1축 / 목판본/대장도감본 / 대한불교천태종 구인사 / 충북 단양군 / 권자장
    이 책은 당나라 실차난타(實叉難陀)가 번역한 주본(周本) 『화엄경(華嚴經)』의 고려시대 목판본으로 현종 때(재위 1011~1031) 부처님의 힘으로 거란의 침입을 극복하고자 만든 초조대장경 가운데 하나이다. 이 책은 총 80권 제 29권이다. 닥종이에 찍은 목판본으로 종이를 길게 이어붙여 두루마리(권자본 : 卷子本)로 제본되어 있다. 전체 크기는 세로 28.5㎝, 가로 891.0㎝이다. 본서는 초조대장경으로 이후에 만들어진 해인사고려대장경과 비교해 볼 때 몇 가지 차이점이 있다. 이 판본은 23항(行) 14자(字)인 반면에 해인사대장경 판본은 24항(行) 17자(字)로 되어 있고 해인사판본에 있는 간행기록이 이곳에는 없다. 그리고 '경(敬)자'에 피휘(避諱:문장에 선왕의 이름자가 나타나는 경우 공경과 삼가의 뜻을 표시하기 위하여 글자의 한 획을 생략하거나 뜻이 통하는 다른 글자로 대치하는 것)가 되어있다. 또 초조대장경은 책의 장수를 표시하는데 대체로 ‘장(丈)’자나 ‘폭(幅)’자를 쓰는 데 비해 해인사대장경은 ‘장(張)’자로 통일되어 있다. 각자(刻字)는 정교하고, 글자의 묵색(墨色)이 시커멓게 윤이 나며, 지질(紙質)이 자못 고박(古樸)한 11세기 인출의 정각본(精刻本)이다. 초조대장경의 원형을 살필 수 있는 자료로서 고려불교사와 인쇄사에 가치가 있는 자료이다.
    출처 : 문화재청
  • 475225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3. <권 2, 3, 6, 7, 10>(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 <卷 二, 三, 六, 七, 十>) / 조선 세조 8년(1462) / 5권 5책 / 목판본/간경도감본 / 서울대학교규장각 / 서울 관악구 / 선장
    《대불정여래밀인수증료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은 선(禪)을 닦아 감각작용에서 유발되기 쉬운 온갖 번뇌로부터 해탈의 경지에 이르게 하는 요의(要義)를 설한 경전으로, 부처님의 말씀을 머릿속으로만 이해하는데 그치지 않고 자신이 직접 경험하여 얻을 것을 주요사상으로 하고 있다. 《대불정여래밀인수증료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은 흔히 ‘대불정수능엄경(大佛頂首楞嚴經)’, ‘수능엄경(首楞嚴經)’ 혹은 ‘능엄경(楞嚴經)’이라 일컫는다. 대(大)는 ‘체(體)’이고 불정(佛頂)은 ‘구경각(究竟覺)’이니, 대불정(大佛頂)은 경전의 법체(法體)이다. 여래밀인수증료의(如來密因修證了義)는 ‘여래의 비밀한 인(因)을 닦아서 증득할 요의체(了義體)’라는 뜻이다. 제보살만행수능엄(諸菩薩萬行首楞嚴)은 ‘여러 보살들이 이타행(利他行)을 닦음에 미세한 번뇌를 끊어 자타의 수행을 구족한다’는 의미이다. 당(唐)의 반자밀제(般剌密帝)가 번역하고, 송(宋)나라 계환(戒環)이 해설하여 10권본으로 엮은 것을 세조 8년(1462)에 간경도감(刊經都監)에서 간행하였는데, 이 책은 그 판을 후대에 다시 찍은 것이다. 판각(板刻)이나 인쇄 조건 및 지질(紙質) 등으로 미루어, 정현대비가 성종(成宗)의 명복을 빌기 위해 경전을 간행했던 연산군 1년(1495)에 인쇄된 것으로 추정된다.
    출처 : 문화재청
  • 475226

    묘법연화경 권4~7(妙法蓮華經 卷四∼七) / 조선 세종 30년(1448) / 1책 / 목판본/사찰본 / 강태영 / 서울 중구 / 선장
    이 책은 구마라집(鳩摩羅什)이 번역한 묘법연화경, 곧 법화경에 계환(戒環)의 주해본을 저본으로 조선시대 명필가인 성달생 형제가 쓴 정서본을 바탕으로 궁중에서 효령과 안평대군의 발원으로 세종 30년(1448)에 목판으로 간행한 불경. 목판본 권4~7의 4권1책(결본). 강태영 소장. 보물 제766호. 법화사상의 핵심 경전인 법화경은 한국 불교계의 근본경전의 하나로서 불교전문강원의 수의과(隨意科)과목으로 채택되어 강의되고 있으며, 화엄경과 함께 한국불교 사상의 확립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 경전이다. 현존하는 수ㆍ당대의 돈황본(敦煌本) 사경은 물론 송대의 판본은 대부분이 구마라집 한역본을 저본으로 하였으며, 이에 따라 일찍이 우리나라에 전래된 사경 및 판경 또한 이 번역본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현존하는 우리나라에서 간행된 판본류에는 대장경에 편입된 2종의 역본을 제외하고 모두가 이 28품 7권본인 구마라집의 한역본(漢譯本)을 저본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도 확인된다. 이처럼 구마라집에 의해 번역된 법화경은 그 내용이 모두 28품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현재의 우리나라 유통본은 대개 모두 7권본으로 장축(裝軸) 또는 제책(製冊)되어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목판으로 간행된 가장 오래된 법화경은 최근에 전라남도 영광의 불갑사 명부전의 시왕상에서 권3 일부가 발견되었는데, 고려대장경 및 그 이후에 간행된 고려본과는 권두제의 특징이 상이한 점으로 보아 초조대장경 간행 이전 시기인 고려 초기의 판본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리고 대표적 초기 고려본은 성암본과 연대본이 있으며, 이들 판본에는 각필(角筆)부호가 발견되어 주목되고 있다. 고려 중기 이후에 간행된 판본은 계환(戒環)의 주해가 들어 있는 송나라 판본계통이 비교적 많이 남아 있으며, 휴대의 편리를 도모한 소자본도 등장하고 있다. 특히 조선시대에 이르러 비로소 우리나라의 독자적 판본이 다수 출현하는 현상을 보이고 있는데, 현재 대략 160여종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으며, 이들 판본의 계통은 참여주체나 간행수단에 따라 성달생체판계 ‧ 갑인자판계 ‧ 을해자판계 ‧ 대자본계 ‧ 간경도감본계로 크게 가름된다. 이처럼 다양한 판종 중에 강태영본은 조선초기 명필가로 성삼문의 조부인 성달생과 성개(成槪) 형제가 노스님들의 독서 편리를 위해 중자로 판서본을 써서 세종 4년(1422)에 대자암에서 판각한 목판에서 후대에 인출한 판본으로 추정된다. 이 책은 전 7권 중 권4에서 권7의 1책으로 결본 상태이며, 선장으로 제책되어 있다. 책의 크기는 29.5cm×17.8cm이다. 표지는 조선전기의 능화문양이 드러나는 원상(原狀)으로 보이나 훼손되어 본래 제첨 자리에 새로 ‘法華經’으로 표제를 묵서하였으며, 우측에는 ‘정통무진(1448)간안평대군제발본(正統戊辰(1448)刊安平大君題跋本)’이란 동일인의 서체로 쓰여진 지기(識記)가 역시 묵서되어 있다. 권수에는 변상도 2장이 수록되어 있으며, 이어 권4의 권수서명을 보면, 제1행에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이며, 다음 행에 “온릉개원연사비구 계환 해(溫陵開元蓮寺比丘 戒環 解)”라는 기록으로 보아, 이 책이 송나라 계환의 주해본을 저본으로 간행되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권4의 말미에는 ‘추봉좌찬성양경처이씨(追封左贊成楊景妻李氏)’라는 공덕주의 이름이 보이고 있으며, 그 뒤장에 ‘효령대군(孝寧大君)’ㆍ‘안평대군(安平大君)’ㆍ‘영흥대군(永興大君)’을 비롯하여 여러 명의 시주질이 보이고 있으며, 각수로는 ‘정심(正心)’ㆍ‘연해(衍海)’ㆍ‘해월(海月)’ 등이 기재되어 있다. 또한 권5의 말미에도 많은 시주명이 보이고 있다. 그리고 권7의 말에는 안평대군이 1448년(정통 13)에 친히 짓고 직접 쓴 발문이 실려 있고, 이어서 같은 해에 성균생원 양윤손(梁尹孫)이 직접 쓴 발문도 수록되어 있다. 이 발문은 비록 3장에 불과하지만, 매우 정교하게 판각되어 있어 안평대군의 진적이 희귀한 지금에 와서는 그의 서법의 특징을 살펴 볼 수 있는 매우 귀중한 자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처럼 안평대군의 친필 발문이 판각되어 있는 강태영본의 형태적 특징을 살펴보면, 변란은 사주단변으로 되어 있으며, 반엽을 기준으로 반곽의 크기는 21.0cm×13.5cm이다. 본문에는 계선은 보이지 않고, 전체 10행으로 되어 있는데, 한 행의 경문은 20자씩으로 배자되어 있다. 중앙의 판심부에 어미는 없으나, 판심제는 위쪽에 ‘법’(法)이란 약칭이 기재되어 있어 다른 계통의 판본에서 보이는 ‘법화(法華)’ 또는 ‘법화경(法華經)’과는 구분되며, 아래로 권수 및 장수 표시가 나타나 있다. 지질은 조선초기 불경 인출에 주로 사용되었던 인경지로 매우 얇은 저지의 특성을 보이고 있다. 자체는 태종 5년(1405)에 성달생 형제가 쓴 안심사판이나 세종 4년(1422)에 쓴 대자암판에서 보이는 서체와 매우 유사한 특징을 보이고 있는데, 이들은 조선전기에 풍미한 송설체의 대가들로 알려져 잇는 인물이다. 그러나 권7의 말미에 수록되어 있는 발문에 이에 관한 언급은 보이지 않고 있으며, 또한 간기도 기재되어 있지 않아서 정확한 간행 사실을 알 수 없는 실정이다. 그래서 발문을 쓴 시기로 간행연대를 추정하고 있으며, 아무래도 서울과 가까운 지역에서 간행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책은 조선시대 성달생과 성개 형제가 서사한 판본을 저본으로 1448년에 판각 간행한 것으로 추정된다. 비록 표지에 일부 훼손이 나타나 있으나, 후미에 안평대군이 친히 쓴 발문이 수록되어 있는 점, 그리고 현재 이 책이 유일본으로 알려져 있어 일찍이 보물로 지정되었다. 따라서 조선초기 서예사 및 불교판본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생각된다.
    출처 : 문화재청
  • 475227

    묘법연화경 권4∼7(妙法蓮華經 卷四∼七) / 조선 세종 30년(1448) / 4권 1책 / 목판본/목판본 / 김소현 / 경기 성남시 / 선장
    이 책은 구마라집(鳩摩羅什)이 번역한 법화경에 계환(戒環)의 주해본을 저본으로 조선시대 명필가인 성달생 형제가 쓴 정서본을 바탕으로 궁중에서 효령과 안평대군의 발원으로 1448년에 목판으로 간행한 불경. 목판본 권4~7의 4권1책(결본). 김소현 소장. 보물 제766-2호. 법화사상의 핵심 경전인 법화경은 한국 불교계의 근본경전의 하나로서 불교전문강원의 隨意科 과목으로 채택되어 강의되고 있으며, 화엄경과 함께 한국불교 사상의 확립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 경전이다. 이 경은 예로부터 모든 경전들 중의 경전으로 인정받았고, 초기 대승경전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불경으로 화엄경ㆍ금강경과 더불어 불교의 대표적 대승경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경전은 법화사상을 담고 있는 천태종의 근본경전으로, 이를 흔히 ‘법화경(法華經)’으로 약칭하여 불리고 있다. 본래의 원서명은 “삿다르마 푼다리카 수트라 saddharma-pundarika-sutra”로 알려져 있으며, 그 의미는 ‘백련꽃과 같이 올바른 가르침을 주는 경전’으로 풀이한다. 일반적으로 법화경의 성립 연대는 다른 대승경전처럼 확실치 않으나, 대략 3차에 걸쳐 기원후 2세기 중엽까지는 소품 단위로 결집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법화경은 여러 차례의 역경과정을 거쳐서 완성된 한역본으로는 3종이 남아 있는데, 그 중 406년에 구마라집에 의해서 번역된 한역본이 가장 널리 유통되고 있다. 한역자 구마라집(鳩摩羅什)은 기원후 350년에 중앙아시아의 구차[庫車=龜玆]에서 태어나 409년에 중국의 장안에서 열반하였다. 그는 장안의 서명각(西明閣)과 소요원(逍遙園)에 머물면서 불교경전의 번역에 몰두하여 35부 294권을 완역했다. 그의 많은 역경 중에는 406년에 번역된 법화경이 포함되어 있다. 현존하는 수ㆍ당대의 돈황본(敦煌本) 사경은 물론 송대의 판본은 대부분이 이 구마라집 번역본을 저본으로 하였으며, 이에 따라 일찍이 우리나라에 전래된 사경 및 판경 또한 이 번역본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구마라집에 의해 번역된 법화경은 그 내용이 모두 28품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현재의 우리나라 유통본은 대개 모두 7권본으로 장축(裝軸) 또는 제책(製冊)되어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목판으로 간행된 가장 오래된 법화경은 최근에 전라남도 영광의 불갑사 명부전의 시왕상에서 권3 일부가 발견되었는데, 고려대장경 및 그 이후에 간행된 고려본과는 권두제의 특징이 상이한 점으로 보아 초조대장경 간행 이전 시기인 고려 초기의 판본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리고 대표적 초기 고려본은 성암본과 연대본이 있으며, 이들 판본에는 각필(角筆)부호가 발견되어 주목되고 있다. 고려 중기 이후에 간행된 판본은 계환(戒環)의 주해가 들어 있는 송나라 판본계통이 비교적 많이 남아 있으며, 휴대의 편리를 도모한 소자본도 등장하고 있다. 특히 조선시대에 이르러 비로소 우리나라의 독자적 판본이 다수 출현하는 현상을 보이고 있는데, 현재 대략 160여종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으며, 이들 판본의 계통은 참여주체나 간행수단에 따라 성달생체판계ㆍ갑인자판계ㆍ을해자판계ㆍ대자본계ㆍ간경도감본계로 크게 가름된다. 이처럼 다양한 판종 중에 해제 대상본은 조선 초기 명필가로 성삼문의 조부인 성달생과 성개(成槪) 형제가 노스님들의 독서 편리를 위해 중자로 판서본을 써서 인출한 판본이다. 이 책은 전 7권 중 권4에서 권7의 1책으로 결본 상태이며, 선장으로 제책되어 있으며, 책의 크기는 29.2㎝×18.0cm이다. 표지는 후대에 다시 개장한 것으로 표제는 묵서하였으나 훼손되어 잘 보이지 않고 있다. 권수에는 변상도 2장이 수록되어 있는데, 그 내용은 호법선신인 위타천존상(偉陀天尊像)과 영산정토변(靈山淨土變)이다. 이어 권4의 권두서명을 보면, 제1행에 “妙法蓮華經”이며, 다음 행에 “溫陵開元蓮寺比丘 戒環 解”라는 기록으로 보아, 이 책이 송나라 계환의 주해본을 저본으로 간행되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권4의 말미에는 ‘追封左贊成楊景妻李氏’라는 공덕주의 이름이 보이고 있으며, 그 뒤장에 ‘孝寧大君’ㆍ‘安平大君’ㆍ‘永興大君’을 비롯하여 여러 명의 시주질이 보이고 있으며, 각수로는 ‘正心’ㆍ‘衍海’ㆍ‘海月’ 등이 기재되어 있다. 또한 권5의 말미에도 많은 시주명이 보이고 있다. 그리고 권7의 말미에는 안평대군이 1448년(정통13)에 친히 짓고 직접 쓴 발문이 실려 있고, 이어서 같은 해에 성균생원 양윤손(梁尹孫)이 직접 쓴 발문도 수록되어 있다. 이 발문은 비록 3장에 불과하지만, 매우 정교하게 판각되어 있어 그 후 안평대군의 삶의 역정에 따라 그가 남긴 진적(眞跡)이 희귀한 지금에 와서는 그의 서법의 특징을 살펴볼 수 있는 매우 귀중한 자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 책은 조선시대 성달생과 성개 형제가 서사한 판본을 저본으로 1448년에 판각 간행한 것이다. 비록 표지에 일부 훼손이 나타나 있으나, 후미에 안평대군이 친히 쓴 발문이 수록되어 있는 점, 그리고 현재 이 책은 한동안 아단문고본(보물766호)이 유일본으로 알려져 있어 중시되었다. 따라서 이 책은 조선 초기 서예사 및 불교판본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출처 : 문화재청
  • 475228

    몽산화상법어약록(언해)(蒙山和尙法語略綠(諺解)) / 조선 세조 13년(1467) / 1책 / 목판본/간경도감본 / 동국대학교 / 서울 중구 / 선장
    세조 13년(1467)에 간경도감(刊經都監)에서 펴낸 국역본 『몽산화상법어약록』이다. 『몽산화상법어약록』은 원나라의 유명한 승려였던 몽산화상의 법어 가운데 고려의 보제존자(普濟尊者)가 필요한 대목만 가려 뽑고 토를 달아 놓았다. 이를 혜각존자 신미(信眉)가 한글로 풀어 썼는데, 언제 펴냈는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다. 아마도 세조 13년(1467)에 나온『목우자수심결(牧牛子修心訣)』에 신미가 풀이한 법어가 들어 있는 것으로 보아 그 무렵에 간경도감(刊經都監)에서 간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성종 3년(1472)에 인수대비(仁粹大妃)의 발원(發願)으로 인출(印出)해 낸 인본(印本)부터 권수제(卷首題) 다음의 혜각존자(慧覺尊者) 신미역해(信眉譯解)가 완전히 삭제되어 있는데, 이것은 삭제되지 않았다. 이 『몽산화상법어약록』은 승려들의 수행에 있어 길잡이 구실을 하며 조선시대에 널리 유통되었다. 이 책은 조선 전기에 한글로 풀이하여 간행한 불교서적 중의 하나로서, 불교사 뿐만 아니라 초기 훈민정음 연구에도 귀중한 자료가 된다.
    출처 : 문화재청
  • 475229

    몽산화상법어약록(언해)(蒙山和尙法語略錄(諺解)) / 조선 성종 3년(1472) / 1책 / 목판본/간경도감본 / 세종대왕기념사업회 / 서울 동대문구 / 선장
    이 책은 원나라 몽산(蒙山) 덕이(德異)의 법어(法語)를 혜각존자(慧覺尊者) 신미(信眉)가 번역하고 주해(註解)하여 새긴 목판에서 성종 3년(1472)에 찍어낸 불분권 1책의 목판본이다. 이 책은 우리나라 고승과 친밀한 교류를 하였고 우리나라 불교계에 영향을 많이 끼친 원나라 고승인 몽산화상(蒙山和尙)의 법어(法語:불교의 바른 도리를 설하는 말이나 불교에 관한 글)를 간략하게 줄여 적은 놓은 책이다. 권말에 있는 김수온(金守溫)의 발문(跋文)의 의하면, 이 판본은 인수대비가 인경불사를 할 때 찍은 200부 가운데 한부임을 알 수 있다. 권수 첫 장을 제외하고는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출처 : 문화재청
  • 475230

    목우자수심결(언해)(牧牛子修沁訣(諺解)) / 조선 세조 13년(1467) / 1책 / 목판본/간경도감본 / 서울대학교규장각 / 서울 관악구 / 선장
    고려시대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이 저술한 수심결(修心訣)을 조선초기 세조가 비현합(丕顯閤)에서 구결(口訣)하고 신미(信眉)가 이를 번역한 것을 세조 3년(1467)에 간경도감(刊經都監)에서 간행한 불서이다. 이 책은 현재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는 판본으로 주요 내용은 정혜쌍수(定慧雙修)ㆍ돈오점수(頓悟漸修)를 주장한 것으로, 고려 불교의 중흥자인 지눌이 마음 닦는 비결을 제시한 선이론서(禪理論書)이다. 이 책의 권수에는 또한 신미가 구결하고 국역한 <환산정응선사시몽산법어(皖山正凝禪師示蒙山法語)>ㆍ<동산숭장주송자행각법어(東山崇藏主送子行脚法語)>ㆍ<몽산화상시중(蒙山和尙示衆)>ㆍ<고담화상법어(古潭和尙法語)> 등 사법어가 합철되어 있다. 규장각본의 서지적 특징을 살펴보면, 이 책은 상하 불분권 1책으로 선장의 형태로 장정되어 있다. 표지는 문양 및 장침한 실선으로 보아 후대에 개장된 듯 비교적 양호하다. 표제는 ‘목우자수심결(牧牛子修心訣)’으로 묵서되어 있으며, 이면에는 ‘경성대학도서(京城大學圖書)’라는 장서인(藏書印)이 날인되어 있다. 권수에는 혜각존자 신미가 구결하고 국역한 <법어(法語)>가 수록되어 있으며, 그리고 이어서 신미가 국역한 <목우자수심결>이 합철되어 있는데, 경우에 따라 제본할 때 이의 선후가 바뀐 판본도 있다. 판식(板式)의 특징을 보면 변란(邊欄)은 사주쌍변(四周雙邊)으로 되어 있으며, 반곽의 크기는 19.0cm×13.0cm이며, 반엽은 9항으로 한 항은 17자씩 배자되어 있다. 항 사이에는 계선이 간혹 나타나 있으나, 일정하게 분명하지는 않은 상태이다. 중앙의 판심부에는 상하에 대흑구가 보이며, 또한 그 사이로 상하 흑어미(黑魚尾)가 서로 내향하고 있다. 상어미 아래에는 ‘법어(法語)’ 또는 ‘수심결(修心訣)’이란 판심제가 보이고 있는데, 판심제 아래에는 장수가 표시되어 있다. 책의 전체 크기는 22.8cm×16.5cm이며, 인쇄면의 글자의 완결이 전혀 나타나고 있으므로 초간본으로 보이며, 전체적으로는 양호한 상태이다. 이 책의 말미에는 “성화삼년정해세 조선국간경도감 봉교조조(成化三年丁亥歲朝鮮國刊經都監奉敎雕造)”라는 간기(刊記)가 기재되어 있고, 그 다음 행에는 판서자(板書者)인 안혜(安惠)ㆍ유환(柳睆)ㆍ박경(朴耕)의 이름이 차례로 수록되어 있다. 자체는 한글은 정방형 고딕체로 쓰여 있으며, 한문은 원필(圓筆)의 안진경체의 필의가 보인다. 지질은 얇게 뜬 저지로 조선 초기 세종에서 성종연간에 주로 사용되었던 인경지(印經紙)이다. 이 책은 조선 초기의 명필가 안혜(安惠)ㆍ유환(柳煐)ㆍ박경(朴耕) 등이 정성껏 써서 간경도감에서 판각한 정각본(精刻本)이다. 선 수행의 필독서이며, 세조가 불경간행을 위하여 설치한 간경도감에서 간행한 국역본 가운데 하나로 간경도감판의 특징 및 초기의 훈민정음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서울대학교 규장각외에 호암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이를 저본으로 사찰에서 복각한 판본이 여러 종이 현재 남아 있다.
    출처 : 문화재청
  • 475231

    반야바라밀다심경략소(언해)(般若波羅蜜多心經略䟽(諺解)) / 조선 세조 10년(1464) / 1책 / 목판본/간경도감본 / 서울대학교규장각 / 서울 관악구 / 선장
    당나라 법장(法藏)이 찬술한 <반야심경약소(船若心經略疏)>에 송나라 중희(仲希)가 찬술한 <현정기(顯正記)>를 저본으로 효령대군(孝寧大君)과 한계희(韓繼禧) 등이 세조의 명으로 국역(國譯)하여 1464년에 간경도감(刊經都監)에서 목판으로 간행한 국역불경이다. ‘반야심경(船若心經)’이란 의미는 ‘지혜의 빛에 의해서 열반의 완성된 경지에 이르는 마음의 경전’으로 풀이할 수 있다. ‘심(心)’은 일반적으로 심장(心臟)으로 번역되는데, 이 경전이 크고 넓은 반야계(般若系) 여러 경전의 정수를 뽑아내어 응축한 것이라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 이 경은 수백 년에 걸쳐서 편찬된 반야경전의 중심 사상을 260자로 함축시켜 서술한 경으로 불교의 모든 경전 중 가장 짧은 것에 속하며, 한국불교의 모든 의식(儀式) 때 반드시 독송되고 있다. 경전의 끝에는 본문의 내용을 총괄적으로 신비롭게 나타낸 진언(眞言)인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보제 사바하(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 娑婆訶)가 있다. 예로부터 진언은 그 신비성을 깨뜨릴 우려가 있다고 하여 번역하지 않았으나, 인도의 제바보살(提婆菩薩)은 “간다 간다. 저쪽으로 간다. 결정코 피안에 갔다. 도심(道心) 있는 중생이여”라고 번역하였다. 신라의 원측법사(圓測法師)는 “훌륭하도다 훌륭하도다. 저 피안은 훌륭하도다. 각(覺)이 다 끝났도다.”라고 번역하여 이 경의 성격을 분명히 하였다. 현재 알려지고 있는 이 심경에 대한 한국인의 주석서로는 신라시대 원측의 <반야심경소(般若心經疏)> 1권과 <반야바라밀다심경찬(般若波羅蜜多心經贊)> 1권, 원효(元曉)의 <반야심경소(般若心經疏)> 1권, 태현(太賢)의 <반야심경고적기(般若心經古迹記)> 1권과 <반야심경주(般若心經註)> 2권 등이 있다. 이 가운데 현존본은 원측의 <반야심경소(般若心經疏)> 1권뿐이며, 원효의 소는 최근에 복원되었다. 또한 최근에는 수십 종의 번역본 및 해설서가 간행되어 있다. 이처럼 불교의 공(空)사상을 핵심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이 책은 조선 세조 때 간경도감에서 간행되어 현재 서울대 규장각과 동두천시 소재의 자재암(自在庵)에 2곳에 소장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규장각본은 전체적으로 양호하나, 표지는 지질과 실선으로 보아 근래에 새로 개장한 것으로 보인다. 표제는 ‘반야심경(般若心經)’으로 묵서되어 있고, 그 아래로 ‘주서(注序)’라고 기재되어 있어 이 책의 성격을 알려주고 있다. 권수에는 ‘반야심경소현정기병서’라는 서제(序題)가 기재되어 있고, 다음 행에 ‘진운사문석 중희 술(晋雲沙門釋 仲希 述)’이란 저자표시가 보인다. 이 역자표시 위에는 ‘방종현장(方鍾鉉章)’이란 장서인이 날인되어 있어, 이 책이 본래 서울대 국문과 교수를 역임했던 일사(一蓑) 방종현교수의 소장본임을 알 수 있다. 권말에는 한계희(韓繼禧)의 발문이 수록되어 있는데, 발문의 말미 일부가 또한 잘려있다. 그러나 자재암본과 비교해 보았으나 별다른 내용상의 변화는 없는 공백부분이다. 권말의 한계희(韓繼禧)의 발문에 의하면, 효령대군(孝寧大君) 보(補)와 한계희가 왕명으로 <반야심경소(般若心經疏)>를 국역하고 당시 교종판사(敎宗判事)인 해초(海超) 등 고승과 대군의 교정을 거쳐 간경도감에서 간행한 것이다. 한계희 발문은 천순 8년(1464)에 쓰인 것으로 기재되어 있으므로 이때 인출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권말의 한계희 발문 다음에는 <관세음보살여의마니다라니(觀世音菩薩如意摩尼陀羅尼)>가 13행에 걸쳐 보입(補入)되어 있다. 규장각본의 판식(板式)의 특징을 보면 변란은 사주쌍변(四周雙邊)으로 되어 있으며, 반곽의 크기는 21.5cm×14.5cm이며, 반엽은 8항으로 한 항은 19자씩 배자되어 있다. 행 사이에는 계선이 간혹 나타나 있으나, 일정하게 분명하지는 않은 상태이다. 중앙의 판심부에는 상하에 대흑구가 보이며, 또한 그 사이로 상하 흑어미(黑魚尾)가 서로 내향하고 있다. 상어미 아래에는 ‘심경(心經)’이란 판심제가 보이며, 그 아래에는 장수가 표시되어 있다. 책의 전체 크기는 27.8cm×18.8cm이며, 인쇄면의 글자의 완결이 전혀 나타나고 있으므로 초간본으로 보이며, 전체적으로는 양호한 상태이다. 자체는 한글은 정방형 고딕체로 작은 글씨로 쓰여져 있으며, 대자로 쓰여진 한문은 원필(圓筆)의 안진경체의 필의가 보인다. 판서자(板書者)는 1467년에 개판된 <수심결>에 안혜(安惠)ㆍ유환(柳睆)ㆍ박경(朴耕)의 이름이 수록되어 있는데, 자체가 유사하여 이들에 의해 정서(淨書)된 것이 아닌가 한다. 지질은 얇게 뜬 저지로 조선 초기 세종에서 성종연간에 자주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이는 인경지(印經紙)이다. 동일본인 자재암본에는 권수에 ‘금강경심경전(金剛經心經箋)’이 붙어 있어 이때 금강경언해와 동시에 간행된 판본임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조선 세조 10년(1464) 효령대군과 한계희 등이 왕명을 받아 간경도감(刊經都監)에서 간행된 불경이다. 다른 자재암판과 비교하여 비록 권수에 ‘금강경심경전(金剛經心經箋)’이 수록되어 있지 않고, 본문의 일부 잘려 있으나 보관상태가 양호하고, 목판의 새김이 정교하며 인쇄 상태가 좋은 판본이다. 이는 세조가 불경간행을 위하여 설치한 간경도감에서 간행한 국역본 가운데 하나로, 자재암 소장본과 더불어 간경도감판의 특징 및 초기의 훈민정음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출처 : 문화재청
  • 475232

    금강경삼가해 권1, 5(金剛經三家解 卷一, 五) / 조선 성종 13년(1482) / 2권 2책 / 활자본/금속활자본 / 세종대왕기념사업회 / 서울 동대문구 / 선장
    이 책은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에서 야보천로(冶父川老)의 송(頌), 종경(宗鏡)의 제강(提綱), 함허당 기화(涵虛堂己和)의 설의(說誼)를 뽑아 만든《금강경삼가해(金剛經三家解)》를 한글로 번역하여 활자로 찍어 낸 5권 가운데 2권이다. 본문(金剛經)은 정축자(丁丑字)로, 주석과 번역은 을해자(乙亥字)를 사용하여 성종 13년(1482)에 내수사(內需司)에서 찍어낸 것이다. 이 책의 초고는 세종 때 문종과 수양대군에 의해 완성되었으나 교정을 못하고 있던 중 성종때 고승 학조가 완성하였다. 정문대자(正文大字)는 세조 3년(1457)에 오가해정문(五家解正文)을 찍기 위하여 만든 정축자(丁丑宇)를 사용하였고, 중ㆍ소자는 세조 1년(1455)에 강희맹(姜希孟)의 글씨를 자본(字本)으로 만든 을해자를 사용하였다.
    출처 : 문화재청
  • 475233

    금강경삼가해 권2, 3, 4, 5(金剛經三家解 卷二, 三, 四, 五) / 조선 성종 13년(1482) / 4권 4책 / 활자본/금속활자본 / 서울대학교규장각 / 서울 관악구 / 선장
    《금강경삼가해(金剛經三家解)》는 조선 성종 때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密經)》에 대한 삼가(三家)의 해석을 합편하여 국역한 책이다. 불교의 주요경전의 하나인 《금강경(金剛經)》에 대한 삼가(三家) 즉, 야부(冶父), 종경(宗鏡), 기화(己和) 등 3인의 해설을 국역한 것으로 금속활자인 정축자(丁丑字)와 을해자(乙亥字)로 간행되었다.《금강경(金剛經)》은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密經)》이라고도 하는데, 조계종(曹溪宗)의 근본 경전으로서 금강석과 같이 견실한 지혜로 깨달음의 세계에 도달할 것을 주요사상으로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반야심경(般若心經)》 다음으로 많이 읽히는 경전이며, 《금강경삼가해(金剛經三家解)》는 이 《금강경(金剛經)》에 대한 3인의 해설을 붙인 것으로 야부의 송(頌), 종경의 제강(提綱), 기화의 설의(說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은 세조(世祖)의 명(命)으로 편찬(編纂)하기 시작하였으나 완성하지 못하다가 성종 13년(1482)에 세조비(世祖妃) 정희왕후의 명으로 승려 학조(學祖)가 교정ㆍ간행하였다. 본문은 금속활자인 정축자(丁丑字)로, 주해문(註解文)은 을해자(乙亥字)로 찍었다.
    출처 : 문화재청
  • 475234

    금강경삼가해 권1(金剛經三家解 卷一) / 조선 성종 13년(1482) / 1권 1책 / 활자본/금속활자본 / 보림사 / 전남 장흥군 / 선장
    이 책은 구마라집(鳩摩羅什)이 한역한 금강경(金剛經)의 본문과 야부 도천(冶父 道川)의 송(頌), 예장 종경(豫章 宗鏡)의 제강(提綱), 그리고 함허 득통(涵虛 得通)의 설의(說誼) 등 3가의 주해를 국역하여 성종 13년(1482) 금속활자를 사용하여 간행한 책이다. 본문은 구마라집의 역본을 양나라 소명태자에 의해서 32과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본문은 정축대자로, 본문 다음에 구성되어 있는 득통의 결의, 야부의 착어(著語)와 송, 종경의 제강과 송 등은 을해중자를 사용하였고, 구결(口訣)과 언해문은 모두 세조 7년에 주조된 한글활자를 이용하여 인쇄하였다. 이 책은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가 간행된 이후 세종의 숙원 사업이었던 금강경 언해사업이 세조 8년(1462) 먼저 본문과 육조의 해의(解義)만을 비로소 국역하여 간경도감(刊經都監)에서 간행하였으며, 금강경삼가해언해가 성종 13년에 금속활자본으로 인출됨으로써 비로소 세종의 유명을 이루게 되었다. 세종의 《금강경삼가해언해(金剛經三家解言解)》 편찬은 세종은 물론 문종, 세조, 성종에 이루는 4대왕에 걸쳐서 비로소 완성을 보게 되었다. 성종 13년(1482) 한계희와 강희맹이 지은 발문을 통해 편찬 및 간행 등의 전후사실을 알 수 있다. 모두 5권으로 간행되었는데, 현재까지 완질이 발견된 경우는 없으며, 특히 중세국어 연구에 중요한 사실을 제공하는 자료로서 일찍이 주목되었다.
    출처 : 문화재청
  • 475235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13(初雕本 大方廣佛華嚴經 周本 卷十三) / 고려시대(11세기) / 1권 1축 / 목판본/대장도감본 / 김종규 / 서울 종로구 / 권자장
    이 책은 당나라 실차난타(實叉難陀)가 번역한 『화엄경(華嚴經)』 80권 가운데 제13권이다. 화엄경 39품 가운데 제9품(第九品)인 광명각품(光明覺品)이 내용이다. 인쇄상태나 종이의 질 등 전체적인 품격으로 보아『초조본대방광불화엄경』주본 권1(국보 제256호), 권29(국보 제257호), 권74(국보 제279호), 권75(국보 제266호)와 같이 초조대장경이 만들어진 11세기에서 12세기 사이에 간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초조대장경은 이후에 만들어진 해인사대장경(재조대장경 또는 고려대장경)과 비교해 볼 때 몇 가지 차이점이 있다. 해인사대장경보다 글자수가 적고, 새김이 정교한 반면에 간행연도를 적은 기록은 없으며, 군데군데 피휘(避諱:문장에 선왕의 이름자가 나타나는 경우 공경과 삼가의 뜻으로 글자의 한 획을 생략하거나 뜻이 통하는 다른 글자로 대치하는 것)와 약자(略字)가 나타난다. 이 책의 경우에도 한 항(行)의 글자수가 14자로 해인사대장경의 17자와 구분되고, 대장도감본(大藏都監本)에 비해서 내용상(內容上) 이자(異字)는 없으나 동일한 자(字)에 있어 약자(略字)를 상당히 많이 쓰고 있고, 송태조(宋太祖)의 조부휘(祖父諱)인 '경(敬)」자'의 겸피자(兼避字)인 '경(竟)'자의 마지막 한 획을 생략하였다. 또 책의 장수를 표시하는데도 해인사대장경은 '장(張)'자로 통일되어 있는 것에 비해 초조대장경은 대체로 '장(丈)'자나 ‘폭(幅)’자가 쓰였다. 그리고 권수부분(卷首部分)에 감색(紺色)의 표지(表紙)가 일부 붙어있고 인쇄상태(印刷狀態)가 양호하다. 불교사와 인쇄조판술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이다.
    출처 : 문화재청
  • 475236

    금강경삼가해 권2(金剛經三家解 卷二) / 조선 성종 13년(1482) / 2권 1책 / 활자본/금속활자본 / 계명대학교 / 대구 달서구 / 선장
    불교의 주요경전의 하나인 《금강경(金剛經)》에 대한 삼가(三家) 즉 야부(冶父), 종경(宗鏡), 기화(己和) 등 3인의 해설을 국역한 것으로 금속활자인 정축자(丁丑字)와 을해자(乙亥字)로 간행되었다. 《금강경(金剛經)》은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密經)》이라고도 하는데, 조계종(曹溪宗)의 근본 경전으로서 금강석과 같이 견실한 지혜로 깨달음의 세계에 도달할 것을 주요사상으로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반야심경(般若心經)》 다음으로 많이 읽히는 경전이며 《금강경삼가해(金剛經三家解)》는 이 《금강경(金剛經)》에 대한 3인의 해설을 붙인 것으로 야부의 송(頌), 종경의 제강(提綱), 기화의 설의(說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은 세조(世祖)의 명(命)으로 편찬(編纂)하기 시작하였으나 완성하지 못하다가 성종 13년(1482)에 세조비(世祖妃) 정희왕후의 명으로 승려 학조(學祖)가 교정ㆍ간행하였다. 본문은 금속활자인 정축자(丁丑字)로, 주해문(註解文)은 을해자(乙亥字)로 찍었다.
    출처 : 문화재청
  • 475237

    선종영가집(언해)(禪宗永嘉集(諺解)) / 조선 연산군 1년(1495) / 2권 2책 / 목판본/간경도감본 / 동국대학교 / 서울 중구 / 선장
    세조 10년(1464)에 간경도감에서 목판에 새겨 낸 것인데, 권 상(卷 上)은 당시에 찍어 낸 것이고, 권 하(卷 下)는 연산군 1년(1495)에 정현대비가 성종의 명복을 빌기 위해 원각사에서 대대적으로 찍어낸 불서 가운데 하나로 간경도감 후쇄본이다. 이 『선종영가집(禪宗永嘉集)』은 당나라 영가 현각선사(永嘉 玄覺禪師)가 선수행(禪修行)에 있어 필요한 것을 적은 글에, 송나라 행정(行靖)이 주를 달고 정원(行靖)이 수정하여 항목별로 정리해 놓은 책이다. 이 판본은 세조(世祖)가 구결(口訣)를 달고 신미 등이 한글로 번역하여 간경도감에서 간행한 것이다. 권하의 권말에 고승 학조(學祖)가 쓴 간행기록이 목활자로 찍혀있다. 이 목활자는 성종의 명복을 빌기 위해 간행한 모든 경전에 똑같은 내용의 간행기록을 붙이기 위해 정교하게 만든 것으로 인경목활자(印經木活字)라고 부른다. 이 책은 인쇄가 정교하고 글자의 먹색에 윤이 나며, 종이의 질이 좋아 책의 품위가 돋보인다.
    출처 : 문화재청
  • 475238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蜜經) / 고려 충숙왕 복위 8년(1339) / 1첩 / 목판본/사찰본 / 염청자 / 서울 중구 / 절첩장
    이 책은 대승불교의 기본 경전인 금강경(金剛經)을 구마라집(鳩摩羅什)이 한역한 역본을 바탕으로 우리나라 고려 충선왕 3년(1311)에 강금강(姜金剛)의 시주로 휴대를 목적으로 소형소자본으로 개판(開板)한 것을 1339년에 인출(印出)한 수진본(袖珍本) 불경이다. 금강경은 벼락을 자르는 무궁한 지혜로써 그 근본을 삼고, 일체법무아(一切法無我)의 이치를 요지로 삼고 있다. 핵심사상은 우리에게 집착 없는 마음을 가지도록 하여 궁극적으로는 수행의 완성을 이루어 석가가 행한 보시의 정신을 구현하여 일체의 악업을 소멸하는 구제방법을 표방하고 있어, 공덕경으로 널리 유행하였던 것이다. 금강경이 우리나라에는 삼국시대의 불교유입 초기에 전래되었으며, 고려 중기에 지눌(知訥)이 불교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의 입법(立法)을 위해서 반드시 이 경을 읽게 한 뒤부터 널리 유통되었다. 공덕을 목적으로 남조의 황실을 중심으로 사찰에 널리 유통되어 수지독송(受持讀誦)되었던 사실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당시 백제는 무령왕(武寧王) 이후 남조의 양나라와 밀접한 교류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던 까닭에, 이 무렵에 금강경이 백제에 전래 유통되었던 것으로 보이며, 이러한 관계로 그 후 금판ㆍ동판(金板ㆍ銅板)에 사성되어 왕궁탑(王宮塔) 및 제석정사(帝釋精舍)의 목탑에 법사리의 용도로 시납되었던 사례가 있다. 판식(板式)의 특징을 살펴보면, 변란은 상하단변(上下單邊)이며, 접장본에서 흔히 나타나는 특징이다. 상하간의 광곽의 높이는 5.0cm이며, 전체 크기는 6.5cm이다. 판면에 계선(界線)이 없으며, 또한 판심(板心)과 어미(魚尾)도 보이지 않고 있다. 접은 한 면은 7항이며, 매항은 10자씩 배자되어 있다. 자체는 중국본 <보협인다라니경(寶瑩印陀羅尼經)>의 서체와 흡사하여 치졸한 느낌이 든다. 지질은 전형적인 고려시대의 저지이다. 전체적으로 인쇄 상태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인출 후 곧 바로 불복에 복장(腹藏)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권말에 각원박동원비구 달현(覺圓泊同願比丘 達玄), 영흥(永興), 회영(懷英), 천비(千備), 희인(希印), 행전(行全), 종신(宗信), 신사(信仕), 이기(李琦), 전대(田大), 동재(同在) 등의 이름이 보이고 있으며, 그 뒤에 발문, 3행에 걸쳐 범문, 이 범자다라니에 이어 부적이 수록되었으며,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은 인출기(印出記)가 실려 있다. 이 인출기를 보면, 이 책은 1311년에 판각한 판본을 저본으로 1339년에 강금강(姜金剛)의 시주로 복각한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본래 항시 휴대하여 재앙을 물리치기 위한 의도로 편리하게 부피를 줄이기 위하여 얇은 저지(楮紙)에 인출(印出)하고 상하 표지도 없이 경낭에 봉안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후 후쇄본은 불복에 복장용으로 시납한 경우도 있었던 것으로, 바로 이 책에 해당된다. 권수말(卷首末)의 특수한 판식(板式)과 세소자(細小字) 판각(板刻)의 정교(精巧)함, 그리고 보존상태가 좋은 점 등에서 서지학 및 미술사 연구에 매우 귀중한 자료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
    출처 : 문화재청
  • 475239

    평창 상원사 목조문수동자좌상 복장유물-1.정현조,의숙공주발원문(平昌 上院寺 木造文殊童子坐像 腹藏遺物-鄭顯祖,懿淑公主發願文) / 조선 선조 32년(1599) / 1건 / 사찰문서/기문류 / 월정사(유물전시관) / 강원 평창군 / 낱장
    이 발원문은 선조 32년(1599)에 녹색 계통의 명주에 붉은 색으로 필사한 낱장 1매이다. 1599년에 2구의 문주상(文殊像), 16구의 나한상(羅漢像)등 탱화(幀畵) 6폭, 조사진영(祖師眞影) 2폭을 중수(重修)했던 사실을 밝혀주고 있다. 이때의 중수(重修)는 지운(智雲)과 상원사대중(上院寺大衆), 진명(普明)등의 화주(化主)로 이룩되었으며, 그리고 석준(釋俊)과 원오(元悟)가 화사(畵師)로 참여하였다.
    출처 : 문화재청
  • 475240

    평창 상원사 목조문수동자좌상 복장유물-2.문수상등중수발원문(平昌 上院寺 木造文殊童子坐像 腹藏遺物-文殊像等重修發願文) / 조선 세조 12년(1466) / 1건 / 사찰문서/기문류 / 월정사(유물전시관) / 강원 평창군 / 낱장
    이 발원문(發願文)은 세조 12년(1466)에 담청색의 명주에 붉은 색으로 필사한 낱장 1매이다. 그 내용은 세조(世祖)의 둘째 딸인 의숙공주(懿淑公主)와 그의 남편 정현조(鄭顯祖)가 당시 임금인 세조(世祖)와 왕실의 수복(壽福)과 자기들의 득남을 위해서 석가여래(釋迦如來), 약사여래(藥師如來), 아미타불(阿彌陀佛), 문수보살(文殊菩薩), 보현보살(普賢菩薩), 미륵보살(彌勒菩薩), 지장보살(地藏菩薩), 십육응진(十六應眞), 천제석왕(天帝釋王)의 상(像)을 조성(造成)하여 오대산 문수사에 봉안했다는 내용이다. 이 발원문은 문수보살상 등 8구의 불ㆍ보살상 등 16구의 나한상(羅漢像)과 천제석(天帝釋) 상(像)이 1466年에 조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출처 : 문화재청
  • 475241

    평창 상원사 목조문수동자좌상 복장유물-3.백지묵서제진언(平昌 上院寺 木造文殊童子坐像 腹藏遺物-白紙墨書諸眞言) / 조선 세조 9년(1463) / 1축 / 사찰문서/기타류 / 월정사(유물전시관) / 강원 평창군 / 권자장
    이 책은 세조 9년(1463)에 백지에 검은 먹물로 쓴 두루마리 1축이다. 내용은 관세음보살월정마니수진언(觀世音菩薩月精摩尼手眞言)을 비롯한 66개의 대소진언(大小眞言)을 범자(梵字)로 필사한 것이다. 권말(卷末)의 필사기(筆寫記)에 의하면, 범서(梵書)는 선종(禪宗) 선사(禪師) 내호(乃浩)가 세조 9년(1463)에 필사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보존상태는 양호하나, 마지막 앞부분이 일부 결실되어 있으며, 지질은 양질의 중국 종이를 사용하였는데 당시 종이 사정이 좋지 않았던 때이므로 특별히 복장용(腹藏用)으로 사성(寫成)하기 위한 배려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출처 : 문화재청
  • 475242

    평창 상원사 목조문수동자좌상 복장유물-4.대방광불화엄경(권28)(平昌 上院寺 木造文殊童子坐像 腹藏遺物-大方廣佛華嚴經(卷二十八)) / 고려 말기~조선 초기 / 1첩 / 목판본/사찰본 / 월정사(유물전시관) / 강원 평창군 / 절첩장
    이 책은 동진(東晋)의 불타발타라(佛駄跋陀羅)가 번역한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60권본 가운데 권 제28로 고려 말에서 조선 초기에 간행한 것이다. 대방광불화엄경은 무한한 시공을 초월한 부처님을 아름다운 꽃으로 장식하는 것과 같이 대방광불의 세계를 장엄한 의미를 지니는 경전이다. 이 28권의 내용은 보현보살(普賢菩薩)이 주도하고 있는 십명품(十明品)과 십인품(十忍品)의 내용인데, 십명품(十明品)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는 지혜(善知他心智明) 등 열 가지 지혜를 밝음으로써 3세의 걸림 없는 지혜와 밝음을 얻는다는 내용이다. 십인품(十忍品)은 보살이 진실한 법을 들어도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겁내지도 않으며 믿고 이해하여 받아 지니며 사랑하고 좋아하며 그대로 따라 들어가 닦아 익혀 편히 머무는 음성을 따르는 인[수순음성인(隨順音聲忍)] 등 열 가지 인을 성취하여 걸림 없는 모든 인의 자리를 얻고 또 모든 부처님의 다함없고 걸림 없는 법을 얻는다는 내용이다. 불복장용(佛腹藏用)이기 때문에 앞뒤 표지가 제거되면서 권말 부분도 없어졌으나, 이 판본은 인쇄상태 등 간행조건으로 보아 12~13 세기에 간행된 사찰판본으로 추정된다.
    출처 : 문화재청
  • 475243

    평창 상원사 목조문수동자좌상 복장유물-5.오대진언(平昌 上院寺 木造文殊童子坐像 腹藏遺物-五大眞言) / 조선 성종 16년(1485) / 1권 1책 / 목판본/사찰본 / 월정사(유물전시관) / 강원 평창군 / 선장
    이 책은 당나라 불공(不空)이 번역한 대비심대다라니(大悲心大陀羅尼) 등 5가지 진언(眞言)을 범자(梵字), 한글, 한자 순으로 병서하여 성종 16년(1485)에 간행한 목판본 1책이다. 내용은 불공(不空)이 번역한 대비심대다라니(大悲心大陀羅尼), 근본다라니(根本陀羅尼), 수구다라니(隨求陀羅尼), 대불정다라니(大佛頂陀羅尼)와 불타파리(佛陀波利)가 번역한 불정존승다라니(佛頂尊勝陀羅尼) 등 5가지 다라니가 수록되어 있다. 이 판본은 인수대비의 다른 인경불사와는 달리 중국에서 진언집(眞言集)을 구하여 한글음역을 붙여 새롭게 정성을 기울여 정교하게 판각한 진언집이다. 이 책 말미(末尾)에 학조(學祖)의 발문에 의하면 성종 16년(1485)에 인수대비(仁粹大妃, 성종의 어머니)의 명으로 당나라 본을 구하여 간행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출처 : 문화재청
  • 475244

    평창 상원사 목조문수동자좌상 복장유물-6.묘법연화경(권1~3, 4~7)(平昌 上院寺 木造文殊童子坐像 腹藏遺物-妙法蓮華經(卷一~三, 四~七)) / 조선 정종 1년(1399) / 7권 2책 / 목판본/사찰본 / 월정사(유물전시관) / 강원 평창군 / 선장
    이 법화경은 후진(後秦)의 구마라습(鳩摩羅什)이 번역한 것을 송(宋)나라 계환(戒環)이 법화경의 내용을 나누어 주해를 부친 것으로, 정종 1년(1399)에 새기고, 세조년간(1455~1468)에 찍은 7권 2책의 목판본이다.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은 법화삼부경(法華三部經)의 하나이며, 가야성(迦耶城)에서 도를 이룬 부처가 세상에 나온 본뜻을 말한 것으로, 모든 불교 경전 가운데 가장 존귀하게 여겨지는 경전이다. 이 판본은 작은 글자로 아주 정교하게 간행된 것으로 권말에 남재(南在)의 발문에 의하면, 해린(海隣)이 정천익(鄭天益)과 이양(李穰) 등의 시주(施主)로 1년이란 기간이 걸려 정종 1년(1399)에 새긴 것이다.
    출처 : 문화재청
  • 475245

    평창 상원사 목조문수동자좌상 복장유물-7.묘법연화경(권1~7)(平昌 上院寺 木造文殊童子坐像 腹藏遺物-妙法蓮華經(卷一~七)) / 조선 태종 4년(1404) / 7권 1첩 / 목판본/사찰본 / 월정사(유물전시관) / 강원 평창군 / 절첩장
    이 법화경은 후진(後秦)의 구마라습(鳩摩羅什)이 번역한 것으로 태종 4년(1404)에 간행한 7권 1첩의 목판본이다.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은 법화삼부경(法華三部經)의 하나이며, 가야성(迦耶城)에서 도를 이룬 부처가 세상에 나온 본뜻을 말한 것으로, 모든 불교 경전 가운데 가장 존귀하게 여겨지는 경전이다. 이 판본의 표지는 감색이며, “묘법연화경합부(妙法蓮華經合部)"라는 제목이 금니(金泥)로 쓰여 있다. 이 책 말미에 보면 태종 4년(1404)에 간행하였다는 기록이 보이며, 7권을 1첩으로 첩장용으로 새겨 제본한 독송용 법화경이다.
    출처 : 문화재청
  • 475246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2, 75(初雕本 大方廣佛華嚴經 周本 卷二, 七十五) / 고려시대(12세기) / 2권 2축 / 목판본/대장도감본 / 호림박물관 / 서울 관악구 / 권자장
    이 책은 11세기(고려 현종 때) 거란의 침입이 계기가 되어 목판으로 간행한 초조대장경 가운데 하나이다. 이 책은 당나라 실차난타(實叉難陀)가 번역한 『화엄경』 주본(周本) 80권(卷) 가운데 제 2권과 제 75권 이다. 이 화엄경은 신역화엄경이라고 부르는데 모두 39품으로 되어있다. 제 2권도 세주묘엄품으로 화엄경의 서문에 해당된다. 그리고 권 제 75권은 선재동자가 53선지식을 찾아 나서는 입법계품의 일부이다. 이 75권에서는 '선재동자가 카필라성에 있는 서가아씨 코피카아라를 찾아 보살이 어떻게 나고, 죽는 속에서 중생을 교화하느냐'고 물었다. 이 화엄경은 매항(每行) 14자본(字本)인데, 재조본(再雕本)인 대장도감본(大藏都監本)은 24항(行) 17자본(字本)이고, 판수제(版首題)가 “주경 제2 제2폭 수(周經 第二 第二幅 垂)”로 되어 있으며, 권말(卷末)에 “을사세고려국대장도감봉칙조조(乙巳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의 간기(刊記)가 있는데, 이 초조본(初雕本)은 14자본(字本)이며 간기(刊記)는 없다. 본문(本文)에는 자구(字句)의 출입(出入)이 없고, 내용상(內容上) 다른 이자(異字)는 없으나 동일(同一)한 자(字)에 있어서 대장도감본(大藏都監本)에 비해 약자(略字)를 상당히 많이 쓰고 있음이 특징이며, 송태조(宋太祖)의 조부휘(祖父諱)인 ‘경(敬)’ 자(字)의 겸피자(兼避字)인 ‘경(竟)’이 결획(缺劃)되어 있다. 고려초조대장경(高麗初雕大藏經)가운데 하나로 인출시기(印出時期)는 12세기경으로 추정(推定)된다.
    출처 : 문화재청
  • 475247

    평창 상원사 목조문수동자좌상 복장유물-8.묘법연화경(권6~7)(平昌 上院寺 木造文殊童子坐像 腹藏遺物-妙法蓮華經(卷六~七)) / 조선 세조 1년(1455)~세조 14년(1468) / 2권 1책 / 활자본/금속활자본 / 월정사(유물전시관) / 강원 평창군 / 선장
    이 책은 후진(後秦)의 구마라습(鳩摩羅什)이 번역한 것을 송(宋)나라 계환(戒環)이 분과(分科)하여 주해(註解)를 붙인 묘법연화경 7권 중 세조년간(1455~1468)에 간행한 2권 1책의 목판본이다. 제 6권은 법화경을 듣고 따라 기뻐하거나 남에게 권하여 경을 듣게 하면 그 공덕이 한량이 없다하는 수희공덕품(隨喜功德品)을 비롯하여 6개품이 있고, 제 7권은 한량없는 백천만억 중생이 모든 고뇌를 받을 때에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듣고 일심으로 부르면 관세음보살이 즉시 그 음성을 듣고 다 해탈을 얻게 한다는 관세음보살보문품(觀世音菩薩普門品) 등 5개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판본은 세조 원년(1455)에 강희맹(姜希顔)의 글씨를 바탕으로 삼아 만든 을해자(乙亥字) 큰자, 중간자, 소자로 찍은 책으로, 거의 손때가 묻지 않은 매우 깨끗하게 보존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인출(印出) 후에 바로 복장(腹藏)에 넣은 것으로 보인다.
    출처 : 문화재청
  • 475248

    평창 상원사 목조문수동자좌상 복장유물-9.묘법연화경(권1~3)(平昌 上院寺 木造文殊童子坐像 腹藏遺物-妙法蓮華經(卷一~三)) / 조선 세조 1년(1455)~세조 14년(1468) / 3권 1책 / 목판본/사찰본 / 월정사(유물전시관) / 강원 평창군 / 선장
    이 책은 후진(後秦)의 구마라습(鳩摩羅什)이 번역한 것을 송(宋)나라 계환(戒環)이 분과(分科)하여 주해(註解)를 붙인 묘법연화경 7권 중, 세조년간(1455~1468)에 간행하고 후에 찍어낸 3권 1책의 목판본이다. 이 책은 법화경 28품 가운데 제1 서품(序品)에서 제7 화성유품(化城喩品)까지의 내용으로 모든 사람들은 다 불성을 가졌기 때문에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중생의 수준에 맞추어 갖가지 방편과 비유 등으로 설교하고 있다. 이 묘법연화경은 검은 글씨로 구결(口訣)이 찍혀 있는 것으로 보아 사용하다가 복장(腹藏)에 넣은 것으로 보인다. 특히 3권 끝에 ‘황진손서(黃振孫書)’라는 글씨가 보이는데 이 법화경의 저본은 황진손(黃振孫)이 필사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출처 : 문화재청
  • 475249

    평창 상원사 목조문수동자좌상 복장유물-10.묘법연화경(권5~7)(平昌 上院寺 木造文殊童子坐像 腹藏遺物-妙法蓮華經(卷五~七)) / 조선 명종 16년(1561) / 3권 1책 / 목판본/사찰본 / 월정사(유물전시관) / 강원 평창군 / 선장
    이 책은 후진(後秦)의 구마라습(鳩摩羅什)이 번역한 것을 송(宋)나라 계환(戒環)이 분과(分科)하여 주해(註解)를 붙인 묘법연화경 7권 중, 명종 16년(1561)에 간행한 3권 1책의 목판본이다. 이 책은 법화경 28품 가운데 제14 품에서 제28품까지 실려 있다. 5권에는 몸과 마음이 편하도록 행동해야 한다는 내용의 안락행품(安樂行品) 등 4개의 품이 있으며, 6권에는 법화경을 듣고 따라 기뻐하거나 남에게 권하여 경을 듣게 하면 그 공덕이 한량이 없다하는 수희공덕품(隨喜功德品)을 비릇하여 6개품이 있고, 7권에는 묘음보살품(妙音菩薩品) 등 5개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판본은 발문 등을 통해 보면 1442년에 본문을 새기고 1443년에 발문을 새긴 화암사판에서 정경부인(貞敬夫人) 윤씨, 성달생(成達生) 외손자들인 한계희(韓繼禧) 형제에 의해서 1477년에 인출(印出)한 판을 저본으로 했음을 알 수 있다. 이 판본은 1477년에 인출(印出)한 것을 바탕으로 하여 명종 16년(1561)에 지질방사(池叱方寺)에서 번각(飜刻)한 것이다. 매우 깨끗하게 보존되어 있다.
    출처 : 문화재청
  • 475250

    평창 상원사 목조문수동자좌상 복장유물-11.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平昌 上院寺 木造文殊童子坐像 腹藏遺物-大方廣圓覺修多羅了義經) / 조선 세조 1년(1455)~ 세조 14년(1468) / 2권 1책 / 활자본/금속활자본 / 월정사(유물전시관) / 강원 평창군 / 선장
    이 책은 당나라 종밀(宗密)이 소초(䟽鈔)를 붙인 불타다라(佛陀多羅)가 번역한 원각경(圓覺經)에 구결(口訣)을 붙여 세조 11년(1465)에 을유자(乙酉字)로 찍어낸 12권 가운데 2권 1책의 활자본이다. 일반적으로 원각경 대소라고 불리는 이 경전은 문수 보현 등 12보살을 위해서 대원각의 묘리를 설명하고 있다. 세조가 1465년에 원각사(圓覺寺)를 준공하고 난 뒤 효령대군(孝寧大君)에게 명하여 교정(校正)한 원각경(圓覺經)을 정난종(鄭蘭宗)이 쓴 글씨를 자본(字本)으로 하여 만든 을유자(乙酉字)로 찍은 책이다.
    출처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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