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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역주 : 전체: 에 대해 총11,358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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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縣)에 사는 윤정자댁(尹正字宅) 사내종 애순(愛順) 이 소지를 올리는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저의 상전댁이 아노(兒奴) 2구(口)를 매득하였으니 법에 따라 사급하도록 명령하여 주십시오. 행현감주(行縣監主) 처분 신해년(1671, 현종12) 2월 일 소지 〈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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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남(海南)에 거주하는 윤정자댁(尹正字宅) 사내종 홍렬(洪烈) 소지로 아뢰는 말씀은 다음과 같습니다. 저의 상전(上典)이 해남현(海南縣)에 거주하는 김진백(金震伯)으로부터 여종을 매득 하였기 때문에 법규에 따라 사급(斜給)해 줄 것을 분부해 주십시오. 강진현감(康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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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縣) 거주 윤정자댁(尹正字宅) 사내종 애순(愛順) 이 소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저의 상전주께서 현 거주 유학(幼學) 윤신한(尹莘閑)에게 비자(婢子) 1구를 구입하셨습니다. 법에 따라 입안을 사급하도록 분부해 주실 일. 행현감주(行縣監主) 처분. 강희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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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산면(縣山面)에 사는 사람들 등장(等狀) 삼가 소지(所志)를 올리는 일은 다음과 같습니다. 저희들 각각은 민망한 마음입니다. 저희들은 같은 면(面)에 사는 노(奴) 순복(順卜)이 외야두원(外也頭員)의 25마지기인 곳을 방매(放賣)하겠다고 하여, 저희들이 각각 값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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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남(海南)에 거주하는 윤정자(尹正字) 댁 사내종 경신(敬信) 소지(所志)로 아뢰는 말씀은 다음과 같습니다. 저의 상전이 본현(本縣, 해남현)에 거주하는 양반(兩班) 유흡(柳潝)으로부터 영암(靈岩)과 강진(康津) 등지에 살고 있는 노비 총 39구(口)를 매득하였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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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암(靈岩)에 거주하고 있는 최설신(崔雪信) 삼가 소지로 아뢰는 일은 다음과 같습니다. 해남현(海南縣)에 거주하고 있는 보인(保人) 박태순(朴太順, 改名한 이름은 박종로(朴宗老)로부터 노자(奴子, 사내종) 1구(口)를 매득하였으므로 규정에 따라[依例] 사급(斜給)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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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74년(현종15)에 류의하(柳宜河) 댁 남노 만송(萬松)이 반비(班婢) 애지(愛之)의 소유권을 주장하면서 문서를 위조하고 주인을 속인 김돌산(金乭山) 등을 처벌하라고 요청한 소지(所志) 안동(安東) 하회(河回) 익찬(翊贊) 류의하(柳宜河) 댁 남노 만송(萬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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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奴) 홍렬(洪烈). ▣…▣소지(所志)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해남(海南) 현산면(縣山面) 백야지(白也只)라는 이름의 땅에 제 상전의 선대에 입안(立案)을 발급받아 ▣…▣ 농소(農所)가 있습니다. 그 입안에 기재된 토지의 사방 지형지물은 남쪽의 당산(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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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산(縣山) 거주 윤정자(尹正字)의 사내종 홍렬(洪烈). 소지(所志)로 아뢰는 하늘을 찌르게 억울하고 원통한 사연은 다음과 같습니다. 백야지(白也只)에 있는 제 상전댁의 선대(先代) 농장은 만력(萬曆) 연간 초입에 입안(立案)을 받아 여러 세대 동안 전해 내려온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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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에 사는 윤 생원(尹生員) 댁(宅) 노(奴) 자산(玆山) [좌촌(左寸)] 삼가 소지(所志)를 올리는 일은 다음과 같습니다. 저의 상전댁 농장은 서면(西面)에 있는데, 왈자(曰字) 52답(畓) 10마지기에서 해마다 세(稅)를 받다가 신(辛), 임(壬) 두 해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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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縣) 거주 윤정자댁(尹正字宅) 사내종 홍렬(洪烈). 소지(所志)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본 현 현산면(縣山面) 백야지(白也只)라는 이름의 땅에는 본래 제 상전의 선대에 입안(立案)을 받아 일군, 누대에 걸쳐 전해 내려오는 농소(農所)가 있습니다. 처음 입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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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산면(縣山面)에 사는 사노(私奴) 이인(李仁) 삼가 소지를 올려 아뢰는 사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가 상전주(上典主)께서 사환(使喚)하여 지난 8월에 상경했다가 겨우 돌아오자마자 지난 9월에 집에 뜻하지 않은 불이 나서 집에 보관하던 기물(器物) 및 다른 곳을 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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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어의동(於義洞)에 사는 윤생원댁 사내종 사망(士望) 〔좌촌〕 삼가 아뢰는 사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저희댁이 지난 병자년에 음죽서면(陰竹西面)에 있는 왈자(曰字) 논 5마지기를 매득하여 해마다 아무 폐단 없이 세를 거두었습니다. 그런데 계사년에 남쪽으로 내려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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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생원댁 사내종 사망(士望) 의송 〔좌촌〕 삼가 절통한 일을 아뢰는 일은 다음과 같습니다. 저희 댁이 지난 병자년에 매득한 음죽(陰竹) 땅 …(원문 결락)… 산주리(酸酒里) 전답을 해마다 아무 일 없이 세를 거두었습니다. 그러다가 저희 댁이 계사년에 …(원문 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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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의동(於義洞) 윤생원댁 사내종 일위(一爲) 의송 〔좌촌〕 삼가 분통스러운 사정을 아뢰는 일은 다음과 같습니다. 저희댁이 지난 병자년에 음죽서면(陰竹西面) 산주리(酸酒里)에 있는 땅을 매득하였습니다. 그런데 저희 댁이 20년 가까이 남쪽으로 내려와 있었던 까닭에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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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남현(海南縣) 현산면(縣山面)에 거주하는 윤진사댁(尹進士宅) 사내종 필경(必敬) 삼가 소지를 올리는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가 금천(衿川)에 거주하는 김생원댁(金生員宅) 사내종 수만(守萬)으로부터 사내종을 매득하였음으로 규정에 따라 사급(斜給)하실 것을 각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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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남현(海南縣)에 거주하는 윤생원댁(尹生員宅) 사내종 애순(愛順) 소지로 올리는 사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해남현에 거주하는 사노(私奴) 엇쇠(旕金)로부터 노자(奴子) 1구(口)를 매득하였으므로 규정에 따라 사출(斜出, 빗기) 입안(立案)을 성급할 것을 분부해 주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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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남현(海南縣)에 거주하는 윤생원댁(尹生員宅) 사내종 홍렬(洪烈) 이 소지로 아뢰는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경기도에 거주하는 오생원(吳生員)이라는 이름의 양반(兩班)이 수공(收貢)하기 위해 내려 왔다가, 해남과 영암 등지의 포구(浦口)에 거주하는 (자신의) 노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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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78년(숙종4)에 송라도 찰방 류의하(柳宜河)가 여든의 노모의 병을 간호하기 위해 순찰사에게 열흘의 말미를 청하는 고유장(告由狀) 통훈대부 행(行) 송라도 찰방(松羅道察訪) 류의하(柳宜河) 다음과 같이 삼가 말씀 올립니다. 제 노모는 올해 나이가 여든이고,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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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렬대부(奉列大夫) 이산현감(尼山縣監) 윤이석(尹爾錫)〔착명〕 삼가 소지(所志)로 아뢰는 말씀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 어머니와 저 자신의 병이 매우 답답하고 절박한 상황임을 이미 이전에 올린 문서에서 모두 아뢰었습니다. 지금 늦여름 더위가 이처럼 심하니 늙으신 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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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남 거주 한량(閑良) 최석태(崔錫泰) 〔착명〕 삼가 소지(所志)로 아뢰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본 부(府)에 거주하는 유학(幼學) 권성경(權聖經)의 사내종 선억(善億)에게 사내종을 구입하였사오니 규정에 따라 사급(斜給)해 주도록 분부하실 일입니다. 부사주(府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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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82년(숙종8)에 권태시 등이 자신들이 천변에 쌓은 제방을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는 일이 없도록 문서를 작성하여 달라고 겸순찰사에게 올린 소지 안동 유학 김세기(金世基), 남해녕(南海寧), 권태시(權泰時) …(원문 결락)… 삼가 소지를 올려 말씀드리는 일은 다음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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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남현) 현산면(縣山面) 백야지(白也只)에 거주하는 윤니산댁(尹尼山宅) 사내종 홍렬(洪烈) 삼가 소지로 말씀드리는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 (결락) ... 상전댁(上典宅)이 동면(同面) 동리(同里)에 살고 있는 계집종 예량(禮良)의 몸 및 동비(同婢)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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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산면(縣山面) 백야지(白也只)에 사는 윤이산댁(尹尼山宅) 사내종 수복(守卜) 삼가 소지를 올립니다. 하늘에 닿도록 절통하고 근심스런 일은 다음과 같습니다. 저희 상전댁에서 지난 2월 29일에 천장(遷葬)할 때 온 집안이 여러 날 동안 매우 분주하고 경황이 없어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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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안(禮安) 사는 진사(進士) 김면(金愐) 등이 삼가 소지(所志)를 올리는 일은 다음과 같습니다. 저희 선조의 묘산(墓山)은 안동부(安東府) 서쪽 도솔원(兜率院)에 있습니다. 묘 앞에 몇 이랑의 위전(位田)이 있으나 저희 사는 곳과 조금 먼 까닭에 밭이 묵고 황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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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86년(숙종12)에 김방걸(金邦杰)이 자신이 복점(卜占)한 산소자리에 대하여 입지(立旨)를 청하는 내용으로 안동대도호부사(安東大都護府使)에게 청하는 소지 화민(化民) 백성 전군수(前郡守) 김방걸(金邦杰) 〔착명〕 삼가 소지(所志)를 말씀드리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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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 이산(尹泥山) 댁(宅) 노(奴) 일복(一福) 호구(戶口)를 납부함. 아뢰는 바는 다음과 같습니다. 저의 상전댁의 매득문기(買得文記)를 살피시어 전례에 따라 사급(斜給)해 주도록 명령하실 일입니다. 장례원(掌隷院)에서 처분해 주옵소서. 강희(康熙) 25년(16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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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은 …(원문 결락)… 이곤(李混)에게 일향(日香) …(원문 결락)… 값을 주고 매입하였으니, 규례대로 사급 …(원문 결락)… 분부를 내려주실 일입니다. 성주(城主)께서는 처분을 내리소서. 정묘년(1687, 숙종13) 8월 일 소지 [제사(題辭)] 형방. 초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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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87년 김방걸(金邦杰)의 황무지 개간 사실을 공증하는 입안 [1] 1687년 김방걸 소지 1687년 김방걸(金邦杰)이 황무지 개간을 위한 입안 발급을 요청하는 내용으로 안동부에 올린 소지 화민(化民) 전군수(郡守) 김방걸(金邦杰, 1623〜1695) 〔착명〕 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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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산면(花山面) 사는 박선금(朴先今). 삼가 소지(所志)로 아뢰는 말씀은 다음과 같습니다. 저의 조상으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논이 현산면(縣山面) 백야지원(白也只員)에 있는 칭자(稱字) 논 9부5속 되는 곳으로, 제 어머니 도비(道非) 명의로 갑술양안(甲戌量案)에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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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산면(花山面) 거주 박선금(朴善金) 소지(所志)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저의 조상으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논이 현산면(縣山面) 백야지원(白也只員)에 있는데, 이 논은 제 어미 도비(道非) 명의로 갑술양안(甲戌量案)에 명백히 기재되어 있다고 합니다. 어머니께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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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산면(花山面) 거주 박선금(朴善金) 소지(所志)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저의 조상으로부터 전해 내려온 논이 현산면(縣山面) 백야지원(白也只員)에 있는 칭(稱)자 논 9부5속 되는 곳으로, 제 어미 도비(道非)명의로 갑술양안(甲戌量案)에 명백히 기재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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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산면(花山面) 거주 박선금(朴善金) 소지(所志)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저의 조상으로부터 전해 내려온 곳인 현산면(縣山面) 백야지원(白也只員)에 있는 칭(稱)자 논 9부5속 되는 곳은 제 어미 도비(道非) 명의로 갑술양안(甲戌量案)에 명백히 기재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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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산면(花山面) 거주 박선금(朴善金) 삼가 소지(所志)로 아뢰는 말씀은 다음과 같습니다. 조상으로부터 전래되어 제 어미가 상속받은 현산면(縣山面) 백야지원(白也只員)의 칭(稱)자 9부5속 되는 논이 제 어미 도비(道非) 명의로 갑술양안(甲戌量案)에 명백히 기재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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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안(禮安) 사는 진사(進士) 김면(金愐) 등이 삼가 소지(所志)를 올리는 일은 다음과 같습니다. 저희 선조의 묘산(墓山)이 안동부(安東府) 서쪽 도솔원(兜率院)에 있는데 묘 앞에 몇 묘(畝)의 위전(位田)이 있으나 저희 사는 곳과 조금 멀어 밭이 묵고 황폐해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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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87년(숙종13)에 본가의 사노(私奴) 중견(仲堅)이 상전의 논을 무단으로 침입해 경작하고 있는 권문(權文)을 관아에 고발한 소지(所志) 부내(府內) 접송(接送) 사노(私奴) 중견(仲堅) 다음과 같이 삼가 소지(所志)를 진달합니다. 제 상전 가문에서 소유한 ‘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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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사는 윤좌랑(尹佐郞)댁 사내종 용이(龍伊) 삼가 소지(所志)로 아뢰는 말씀은 다음과 같습니다. 저의 상전이 지난 병인년[1686]에 본 현(縣) 화산(花山) 이도면(二道面) 죽도원(竹島員)에 있는 무자(茂字) 땅을 정금(丁金)이 값을 치르고 사서 시방 농사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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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안(禮安) 사는 호군(護軍) 김갱(金䃘) 등이 삼가 소지(所志)를 올리는 일은 다음과 같습니다. 저희 선조의 선산이 안동부 서쪽 도솔원에 있습니다. 묘 앞에 몇 이랑의 위전(位田)이 있는데 저희 사는 곳과 조금 멀어 밭이 해묵고 못쓰게 된지 오래 되었습니다. 지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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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안(禮安) 사는 유학(幼學) 김상(金瑺) 등이 삼가 재배 올리며 순상합하(巡相閤下)께 상서(上書)하옵니다. 엎드려 생각건대 지금 이항(里巷)의 서사(書社)라는 것은 옛 상숙(庠塾)에 유래를 둔 제도라 폐지할 수 없는 것입니다. 혹간 마을의 선배(先輩)가 돌아가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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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안(禮安) 사는 유학(幼學) 김상(金瑺) 등이 삼가 재배 올리며 순상합하(巡相閤下)께 상서(上書)하옵니다. 일전에 저희가 마을에 사당을 건립하기 위해 연정(烟丁)을 요청하는 일로 외람되이 청원서를 올린 적이 있습니다. 합하께서는 “머잖아 본 현에 도착하여 현감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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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91년(숙종17) 12월에 안동(安東)에 사는 진사 김세중(金世重)이 죽은 노(奴) 강수(江守)와 그 자손들의 소유권을 주장하며 동일하게 소유권을 주장하는 황가(黃哥)와 이대익(李大翊)을 다스려주고 소유권을 확실히 해 줄 것을 송관(訟官)에게 청하는 소지 경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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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안(禮安) 사는 호군(護軍) 김갱(金䃘) 등이 삼가 소지(所志)를 올리는 일은 다음과 같습니다. 저희 선조의 선산은 …(원문 결락)…에 있습니다. 묘 앞에 약간의 위전(位田)이 있는데 자손들이 모두 먼 곳에 살아서 밭이 묵어 거칠어진지 오래입니다. 지난 갑술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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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민(化民) 유학(幼學) 김상(金瑺) 등이 삼가 재배 올리며 성주합하(城主閤下)께 상서하옵니다. 저희 선조 증참판공(贈參判公)은 처음 본 현 오천리(烏川里)에 터를 잡으신 분으로 그 행의(行誼)와 사적(事蹟)이 퇴계(退溪) 노선생의 지으신 묘갈명에 대략 실려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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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안(扶安)에 사는 유학 김수종(金守宗)〔수결〕 이 소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제가 유학 김세규(金世圭)에게서 여종 금의(金矣) 1소생비 순례(順禮)와 순례의 1소생노 종군(從君) 2명을 매입하습니다. 매득문기(買得文記)와 본문기 등을 상고한 뒤에 다른 규례에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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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 결락)…에 사는 윤지평댁(尹持平宅) 사내종 만홍(萬弘) 삼가 소지를 올리는 일은 다음과 같습니다. 본현 마포면(馬浦面) 연산당(燕山堂) 두량(頭梁) 도연원(都連員) 사자(辭字) 자호인 제언(堤堰)이 있는 곳 …(원문 결락)… 동쪽과 남쪽으로는 산과 바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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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남 백련동(白蓮洞)에 사는 윤생원댁 사내종 득춘(得春) 삼가 의송을 올리는 일은 다음과 같습니다. 무릇 사람이 병으로 아프거나 몹시 난처한 일이 닥치면 반드시 천지와 부모에게 호소하는 것은 고금의 인지상정입니다. 저희 상전댁은 선대로부터 절반은 서울에 있고 절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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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선(嘉善) 송우심(宋憂心) 삼가 소지로 아뢰는 사연은 다음과 같습니다. 매득문기(買得文記)를 점련하여 올리오니 상고하시고 예(例)에 따라 사급하도록 분부해 주실 일입니다. 장예원 처분. 강희 35년(1696, 숙종22) 10월 일 소지 [제사] 호구(戶口) 제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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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하면(立下面)에 거주하는 유학(幼學) 김수종(金守宗:1671〜1736) 삼가 소지를 올려 말씀드리는 일은 다음과 같습니다. 양주(楊州)에 거주하는 유학 남담(南曇)에게 …(원문 결락)… 구(口)의 사내종을 매득(買得)하였으므로, 전례에 따라 사출(斜出)해주는 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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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99년(숙종25)에 류후상(柳後常)의 남노 중견(仲見)이 상전의 선산에 도장(盜葬)한 흔적을 발견하고 도장을 엄금해 달라고 대도호부사에게 청원하는 소지(所志) 풍산 남면 거상인(居喪人) 류후상(柳後常)의 남노 중견(仲見) 다음과 같이 삼가 소지를 진달합니다.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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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01년(숙종27)에 상전 댁의 여비 정금(正今)의 전답을 경식(耕食)한 것에 대한 이자를 징수하는 일을 관아에 요청한 소지(所志) 양전(良田)의 논은 그 값이 반드시 -글자 결락-에 이를 것입니다. 황간현감(黃澗縣監) 댁 남노 예남(禮南)은 어려서부터 그의 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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