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와 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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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난종(鄭蘭宗, 1433~1489) 묘
정난종은 1456년(세조 2) 문과에 급제한 후 세조 13년 황해도 관찰사로서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고 북방을 견고하게 지미기 위해 평안북도 오정진에 40리 장성을 축조했다. 1470년(성종 1) 사은사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온 후 좌리공신 4등으로 동래군에 봉해졌다. 성리학에 밝고 서예에 일가를 이루어 초서ㆍ예서에 능통했다. 원각사비ㆍ돈화문 현판 등을 남겼다. 정난종의 묘는 부인의 묘(1486년에 세워짐)와 쌍분을 이루고 있다. 봉분 앞에는 화관석의 묘비와 상석, 장명등이 있고 주변에 대형과 소형의 문인석 2쌍이 배열되어 있다. 정난종 묘역은 수리산을 뒷산으로 하여 묘지 중앙 하단에 조선 세조 때의 문신이며 뛰어난 서예가인 정난종(鄭蘭宗 1433~1489)의 묘소가 차례로 있다. 그리고 정광필의 넷째아들 정복겸과 6세손, 정진원의 묘 등이 신도비와 혼유석, 석등, 동자석, 문인석과 함께 갖추어져 있다. 1489년(성종 20)에 처음 조성되어 조선 초기에 중기까지의 묘제 양식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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