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와 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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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계 박세당(朴世堂, 1629~1703) 묘
서계 박세당(朴世堂, 1629~1703)은 조선 후기 중농주의 실학자로서 그 역사적 업적이 뛰어난다. 참판 정의 아들로 1660(현종 1)에 증광문과에 장원, 1664년 부수찬으로 황해도 암해어사로 나갔다. 1667년 수찬에 이어 이조좌랑이 되었으나, 부임하지 ㅇ낳아 장형을 받았다. 그 해 동지사서장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예조참의 등을 지낸 뒤, 1694년 갑술옥사에 소론이 득세하자 승지로 특진하였다. 이어서 공조판서를 거쳐 이조ㆍ형조의 판서를 지냈다. 1703년 중추부판사로 기노소에 들어가 사변록을 저술, 주자학을 비판하고 독자적 견해를 발표하였다. 이에 반주자로서 사문난적의 낙인이 찍혀 유배 도중 이인엽의 상소로 풀려나 석천동으로 귀환, 그 해 8.21 석천동에서 별세 하였다. 이중환, 안정복 등 보다 앞선 시대의 실학파 학자로서, 농촌생활에 토대를 둔 박물학의 학풍을 이룩하였으며, 글씨도 잘 썼다. 저서로는 사변록(思辨錄), 색경(穡經), 서계집 등이 있다. 서계 박세당의 묘는 장암동 소재 석천동 구거 북쪽 언덕에 위치하고 있으며, 봉분은 단분으로 두 부인과의 삼위합장묘이다. 호석을 이용한 대형의 방형 봉토분이 특징적이며, 묘표 및 신도비는 최근에 조성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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