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서를 남긴
사람들

주요인물

  • 고문서를 남긴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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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장자료의 성격은 이 가문의 대표적 顯祖이자 용연서원 배향인물인 朴絪(1583-1640)이라는 인물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박인은 司馬試 生員에 入格한 사람이지만, 이후 과거를 포기하고 鄕吏에서 평생을 修身과 講學, 그리고 社會敎化에 힘쓴 사람이었다. 이른바 處士, 徵士의 전형적인 본보기였다. 수집문서에서도 그의 이러한 성향이 그대로 반영되어 나타나 있다. 향약류, 계안류, 강학류 등이 바로 이 같은 문적들로서 중앙의 화려한 사환을 인물과 대비된다. 한편 박인은 학문적, 지역적 배경이 南溟 曺植 및 萊菴 鄭仁弘과 깊은 관련이 있다. 南溟門徒의 師友錄인 山海師友淵源錄, 정인홍과 주고받은 簡札 등의 문적들이 바로 이 같은 배경에서 생겨났으며, 현재까지도 門中書齋인 碧寒亭에 남명문도의 상징이라고 할수 있는 ‘敬義’라는 현판이 걸려있는 것은 학문적 사우관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 문동도는 당시 이 지역의 대표적 儒者로서, 사마시에 합격한 이후 관직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학문과 덕망으로서 權瑎, 閔昌道, 李玄逸 등 영남출신 인물 및 해당지역 守令에 의해 여러번 조정에 천거되어 參奉 등에 올랐던 인물이었다. 文東道(1646-1699)의 移享, 還享과 관련한 사항을 중심으로 정리한 문건이 龍淵書院創建事蹟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