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서를 남긴
사람들

주요인물

  • 고문서를 남긴 사람들
  • 주요인물
  • 지족당(止足堂) 남오는 남치충의 차자로서 일찍이 1454년(端宗 2) 별시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예조판서를 역임하였다. 그는 말년에 밀양으로 이거하였다. 그의 밀양이거와 관련한 정확한 배경은 알 수 없으나 당시 지속되던 사화 등으로 인한 정치적 혼란을 피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밀양은 당시 김종직의 출생지로 사림세가 높았고 학문적 풍토가 조성되어 있었기에 남오가 이와 같은 배경에서 복거지로 선택하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된다.남오는 밀양에 복거한 후 자제들과 학문활동에 전념하였다.
  • 침류정(枕流亭) 남오의 장자 南右文(南有文)은 1498(燕山 4)년 진사시에 입격하였으며 慶州敎授를 역임하였다. 그는 枕流亭을 건립하고 이곳을 중심으로 학업에 전념하였다. 그는 밀양 사촌의 침유정을 중심으로 灌浦 魚得江(1470~1550) 등과 도의로서 교유하였다. 셋째아들 남필문은 퇴계 이황의 문하에 출입하면서 그의 문도로 활약하였으며, 聚遠堂 曹光益(1537~1580) 등과 교의가 깊었다. 그는 1525(中宗20)년 式年 진사시에 입한 후 文昭殿參奉을 역임하였다.
  • 조암(操庵) 퇴계 이황의 문하에 출입하면서 그의 문도로 활약하였으며, 聚遠堂 曹光益(1537~1580) 등과 교의가 깊었다. 그는 1525(中宗20)년 式年 진사시에 입한 후 文昭殿參奉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