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본관은 은진(恩津). 자는 명보(明甫), 호는 동춘당(同春堂).
준길은 김장생․김집의 문인으로 사마 양시에 입격하였고, 인조․효종․현종이 賓師로 대우하였으며 벼슬이 좌참찬에 이르렀다. 준길은 조선 중기 유명한 사상가이며 정치가로 송시열과 학문적․정치적 입장을 같이하였다. 또한 준길은 글씨에도 능해 당대에 이미 명필로 꼽히었으며 특히 행초를 잘 썼다. 그의 글씨는 스승 김집과 한호의 서풍을 따랐으나, 석봉체의 골격을 유지하면서도 肥厚한 획을 가미한 독자적인 서풍을 이루었다고 한다. 준길의 배위는 영남의 유명한 학자요, 정치가였던 동래 정경세의 딸이다. 송준길은 사후 문묘에 배향되었으며, 은진송씨 동춘당문정공파의 파조로 불천지위이다. 송준길에 대해서는 호서의 유명한 예학자요 정치가로서 많은 연구가 있다. 구체적인 것은 이러한 연구를 참조하기 바란다.
이상에서 언급한 은진송씨가의 회덕 입향조에서부터 송준길까지의 사환과 혼반은 매우 화려하다. 특히 혼반은 순천김씨의 김종흥(김종서의 아우)가, 안동권씨의 권우(대제학 권근의 아우), 진주강씨 강희맹, 광산 김국광, 안동 김맹헌, 연안 이석형, 광주 이윤경 등의 가문과 혼인하였다. 이러한 혼인은 조선 전기이래 최고의 명문과의 혼인이었으며, 또한 이것은 조선 전기이래 은진송씨가의 사회적 위치를 반증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은진송씨가는 조선 전기 회덕 입향 이후 송준길에 이르기까지 많은 인재를 배출한 명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