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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문정사
석문정사는 학봉 김성일(鶴峯 金成一, 1538~1593)이 1587년(선조 20) 50세 되던 3월에 공사를 시작하여 8월에 완공한 정자이다. '석문'이란 당호(堂號)는 정자 서쪽에 바위 둘이 마주보고 서 있는데 골짜기가 마치 문과 같으므로 이름지은 것이다.
이 건물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ㄴ'자형이며, 처마는 홑처마이고 지붕은 정면 'ㅡ'자 부분은 팔작지붕이며, 뒤쪽 돌출부분은 꾸몄다. 이 건물은 '석문정' 과 '석문정사'란 편액이 각기 대청내부와 바깥쪽 도리에 걸려 있다. 자연과 벗하며 유유자적하면서 학문연구와 후진양성에 전력하고자했던 학봉은 자연경과이 뛰어난 이 곳을 매우 좋아했다. 동왕 22년 12월 일본통신부사(日本通信副使)로 뽑혀 이듬해 사신길에 오르기 전 그는 이 곳에서 '(사행을 성공적으로 마친)뒤에 고향에 돌아와 내 죽도록 이 산에 은거하는 사람이 되리' 라는 [제석문정사(題石門精舍)] 시 한수를 적고 떠났다. 그러나 이 곳에서 말년을 보내려 했던 그의 바램은 임진왜란으로 인하여 이루어지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