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와 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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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수 김효로 묘 원경
김효로는 조선 전기의 학자이며 광산김씨 예안파의 입향조이다. 자는 순경(舜卿), 호는 농수 또는 춘포(春圃)이며,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나 벼슬에 뜻이 없어 과거를 단념하고 학문과 조용한 삶을 즐겼다.
『오천세적(烏川世蹟)』에 의하면 ‘그는 생원이 된 뒤에 전원에 은거하였는데, 일찍이 태도와 행실이 우뚝하고, 명성과 덕망이 높아서 고을 사람들의 천거를 받아 그의 이름이 세상에 드러나려고 할때 기묘사화가 일어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고 한다. 그가 추천을 받은 것은 65세의 고령이었으며, 이 해는 그의 아들 김연이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을 시작하였던 해였다. 퇴계가 지은 김효로의 묘갈명에 의하면 ‘과거 시험에 매이지 않고 깨끗하고 바른 품행으로 남의 가르침을 직접 받지 않고 스스로 학문을 닦으며, 정성을 다하여 공경한 마음으로 제사를 받들고, 부모에 대한 효도와 형제에 대한 우애로 자손을 가르쳤다. 태도와 행실이 높고 뛰어났다.’라고 하였다. 후에 이조참판에 추증되었다.
그 후 유림에서는 사당을 세우고 퇴계의 조부인 이계양과 김효로의 위패를 모셨으며 사당 이름을 향현사(鄕賢祠)라 하였다. 이는 이 고을에 자리잡은 두 명망있는 가문의 조상으로서 그 자손 중에 어질고 총명한 사람을 많이 배출하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