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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남서원 강당 모선정
모선정(慕先亭)은 조선조 중종때 점필재 김종직선생의 문인으로 학행이 높았던 모선재 박수견(慕先齋 朴守堅)선생이 모친상을 당하여 시묘(侍墓) 3년을 마친 후에도 귀가하지 않고 여묘실(廬墓室)을 지어 수신영모(修身永慕)하며 평생토록 곡읍(哭泣)하던 곳이다. 고을 사람들이 선생의 효성에 감복하여 이 여묘실을 모선정(慕先亭)이라 칭하고 산천방리(山川方里)를 모두 모선((慕先)으로 일컬었다는 것이 모선정 실기에 전해 내려오고 있다. 모선정(慕先亭) 건물은 중종3년(1508년) 처음 창건 되었으나 선조25년(1592년) 임진왜란으로 저서 및 문헌일체와 건물이 모두 소실되었다. 현 건물은 그 후 150년이 지난 영조연간(1742~1776)에 후손들이 성력을 모아 정면 6칸 측면 2칸의 팔작형 지붕으로 중건한 것인데 영남지방 사족(士族)가문의 전형적인 정자건물이다. 모선정 후원에는 1833년 창건하여 1868년 (고종 10년) 훼철된 덕남서원(德南書院)의 후신인 덕남사(德南祠)를 1933년 사림(士林)의 공의로 창건하여 선생의 고조(高祖)인 고려말 팔은(八隱)으로 칭하는 두문동 72현인 충숙공 송은 박익(忠肅公 松隱 朴翊)선생의 영정을 봉안하여 사림 봉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