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가 및 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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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사랑채
대문을 통해 들어서면 바깥마당이 나오고 마당 뒤의 사랑채와 바로 마주하게 된다. 좌측에 놓인 것이 큰사랑채(外舍)이고 우측에 놓인 것이 중간사랑채(中外舍, 귀래정)이다. 평면구성을 살펴보면 큰사랑채는 남측채 6칸(중문간 포함)과 북측채 2칸으로 구성되어 전체적으로 'ㅗ'자형이고, 남측채의 동쪽으로 안채의 중문간이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외주문(外廚門)이라 했으며 사랑방은 2칸으로 수분실장방(隨分室長房)이라 했다. 수분은 창건주 유이주의 아들 유덕호의 호이다. 사랑방 서쪽에는 대청 2칸이 있는데 이것이 운조루이다. 운조루는 이 집의 택호이기도 하다. 운조루는 도연명의 귀거래사라는 칠언율시의 머리글자만 따온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雲無心以出岫 구름은 무심히 산골짜기에 피어오르고 鳥倦飛而知還 새들은 날기에 지쳐 우리로 돌아오네 서쪽의 누마루는 족한정이라 부른다. 한가롭게 머문다는 의미로 유이주의 대손인 유억(柳億)의 호이다. 사랑채 대청마루에서 북쪽으로 빠져 올라간 익랑을 이긍재라고 불렀다. 유덕양의 일기 <시언> 에서는 이를 서실책방(書室冊房)이라고 하였다. 이곳에서 공부하여 여러 사람이 관직으로 나갔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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