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유물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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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회
이곳 경상도 칠곡의 신나무골은 일찍이 불국인 신부들이 대구로 진출할 전초 기지로 삼은 한적한 촌락으로서 1815년 박해이후 서울과 경기도, 충청도 비장에서 피난온 사람들이 이곳에서 교우촌을 이루며 살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1837년 샤스탕 신부등 역대 피리 외방전교회 신부들과 전교회장들이 이곳을 왕래하며 전교하였다. 긜고 1837년 샤스땅 신부님의 명을 받고 이곳에 왓 1년간 전교회장으로 성 홍병주(베드로) 성 홍영주(바오로) 형제회장이 전교활동을 하였으며 1839년 기해박해때 샤스땅 신부님과 같이 서울에서 순교하여 1984년 교황 요한바오로 2세에 의하여 103위 성인으로 시성되었다. 또한 1860년 경신 박해때 이선이(엘리사벳)와 장남 배 스테파노가 이곳에 피난와서 살다가 순교하였다. 그후 1885년 12월 대구 첫 본당 신부로 임명된 김보록 신부가 이곳 이이전(안드레아)댁에서 거처하면서 (1885.12-1888.11) 대구교회를 설립하고 경상도와 전라도 지방을 사목항ㅆ다. 그리고 1887-1889년 3월 까지 보두네 윤 신부가 게시다가 첫 전주본당 신부로 부임 했으며 1889-1890년 4월 까지 조죠 신분가 게시다가 첫 부산본당 신부로 부임했다. 그리고 1883년 경에는 신나무골 학당이 설립되어 1920년 경까지 이르렀다. 현재 이 마을은 구 교우들의 신자촌으로 대를 이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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