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와 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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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대조 정사호(鄭賜湖, 1553-1616) 묘
정사호(鄭賜湖, 1553-1616)선생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자는 몽여(夢與), 호는 화곡(禾谷), 본관은 광주(光州)이다. 장령 이주의 아들로 태어나 1573년(선조 6) 사마시를 저쳐 1577(선조 10) 별시문과에 급제한 뒤 주서, 호조좌랑, 아농부사, 호조참의 등을 지냈다. 1602년(선조 35) 대사헌으로 사은사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온 뒤 이듬해 황해도관찰사가 되고, 뒤이어 경상도, 평안도, 경기도 관찰사 등을 역임했다. 1609년 선조가 승하하자 이조참판으로 동지춘추관사를 겨하여 선조실록 편찬에 참여했다. 이어 한성판윤을 거쳐 1615(광해군 7) 형조판서에 올랐고, 얼마 뒤 이조판서에 임명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따. 글씨를 잘 써 당대에 많은 비문을 남겼다. 사후 좌찬성에 주층되었으며 시호는 충민이다. 묘 앞 중앙에는 형조판서 겸 오위도총부도총관 정사호지묘 하고 쓴 묘비와 상석, 향로석, 그 좌우에는 석인 문관석, 망주석 등이 설비되어 있다. 묘 측면에는 부인 창원유씨와 인천채씨의 묘가 있다. 한편 묘소 아래 약 100미터 지점에는 정사호 선생이 쓴 선고 성재 정이주 선생의 신도비가 오랜 세월에 마멸된 채로 서 있고 그 옆에 정사호 선생의 신도비가 있다. 비문은 유척기 찬, 한익모서, 이천보 전으로 되어 있으며 비신의 규모는 높이가 153m, 폭은 56cm, 두께는 29c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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