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가 및 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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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신씨 고택
조선 연산군 7년(1501)에 요수(樂水) 신권(愼權, 생몰년 미상)이 이곳에 들어와 산 이후, 이 마을은 거창(居昌) 신씨(愼氏)의 집성촌(集姓忖)으로 번창해 왔다. 마을의 중앙에 위치한 이 집은 1927년에 지어졌다. 당시 이 집의 주인은 큰 지주였다고 하는데, 이 집은 그러한 집주인의 경제력을 잘 보여주고 있다. 사랑채와 안채는 모두 경남 지방의 일반적인 주택 양식인 홑집 대신에 겹집의 팔작(八作) 지붕으로 지어 집주인의 부와 권위를 드러내고 있다. 특히 사랑채는 궁궐이나 절에서 볼 수 있는 고급스런 장식물로 꾸몄다. 잘 다듬은 커다란 돌로 쌓은 받침돌과 기둥을 받친 주춧돌 위에 설치한 기둥자리 등은 조선 중기 이전에는 벼슬이 높은 양반 집안에서도 보기 힘든 모습이다. 그밖에 안채와 그 건물을 둘러싼 크고 화려하게 지은 부속 건물들도 집주인의 경제력을 과시하고 있다. 그러나 안채의 늘어난 방 수, 좁아진 대청, 집안에 들어선 화장실 등은 전통의 격식에서 벗어난 것으로, 20세기 초 실용성을 중시하던 가옥의 변모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 점에서 1920년대에 지어진 이 가옥은 격식의 해체, 실용성의 증가, 심화된 경제적 계층화 등 복합적인 사회 현상을 잘 반영하고 있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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