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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끼니"에 대해 총92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고문헌자료 (1건)

원문텍스트 (13건)

  • 1

    着名〕 강희(康熙) 27년 무진년 3월 초9일 숙부님에게 드리는 명문 이 명문을 작성하는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저희들 조카의 형제 집에 딸린 식구들이 많은데, 어떻게 하다 보니 이제는 절화(絶火) 중이라 를 이어 가는 일이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부득이하게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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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우 위로됩니다. 저는 지금까지 죽지 않고 모질게도 가을이 점점 깊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시절을 느 부모를 여읜 슬픔이 더욱 망극합니다. 나머지는 이만 줄이고 삼가 소(疏)를 올립니다. 정사년(1737, 영조13) 9월 6일에 고애자(孤哀子) 민통수(閔通洙,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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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다 일정한 때에 밥 먹는 것을 가리킨다. "됴셕을 니우디 못"였다는 것은 삼시 세 끼 를 잇지 못하였다는 의미이다. 잇지. [우-+-디]. 15세기 어형 ‘니-’에서 ‘ㅿ’이 소실하여 ‘니우-’로 실현된 것이다. ‘니-’, ‘니우-’는 ‘-’에 접미사 ‘

고문헌해제 (1건)

국학진흥원 유교넷 (57건)

  • 1

    고종 23년(1886) 5월 21일 류도성(柳道性)이 삼종숙(三從叔)의 종상(終祥) 때 지은 제문이다. 평시 빈곤으로 를 잇지 못하면서도 기개와 절조를 잃지 않았던 고인을 추모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2

    오경덕 / 유교문화>인물 / 오경덕
      오경덕(吳敬德 ; 1556∼1643)의 자는 득이(得而), 호는 보계(葆溪)이다. 천성이 효우하고 꾸밈이 없었다. 안음교수(安陰敎授)가 되어 교육에 전념하였고, 위기지학에 힘써서 영진에 뜻이 없고 집이 간구하여 를 이어가지 못해도 안연하였으므로 당시에 삼고선생
    출처 : 유교넷
  • 3

    2. 德川里旌孝閣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청송군
    터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여 이웃사람이 맛있는 음식을 먹으라고 주면 먹지않고 반드시 부모에게 드리는 것을 잊지 않았다고 한다. 부모가 병환중에 계시면 병이 쾌차할 때까지 도 잊은채 눈물어린 지극한 간호를 했다고 한다. 가세가 매우 빈곤하여 를 거르는 때도 허
    출처 : 유교넷

호남권역 (3건)

  • 1

    1911년 정한필(鄭漢珌) 서간(書簡) /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개인-생활-서간 / 장성 고산서원
    있어서 쌀과 땔감이 자주 빌 것인데 어떻게 를 해결하고 있는지 걱정된다는 말과 함께 자신은 두문불출하고 살면서 오랫동안 병까지 앓고 있는데 또 나이까지 50살을 넘게 되었는데도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으니 볼 것이 없는 사람이라고 한탄하고 있다. 끝부분에서는 吉貝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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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95년 김치삼(金致三) 소지(所志) /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 전라도 함평현 다경면 용정동 / 광주 김해김씨 김진호
    리 중 한 명인 김문안이 함평관으로부터 禁亂하게 하였으나 무리 10명을 데리고 마을을 어지럽히고 무고한 김치삼을 결박해서 때린 다음 300냥의 돈과 농사짓는 소 1척을 강제로 빼앗아갔다. 이에 김문호를 잡고 법정에서 300냥의 돈과 소 1척을 찾아내어 준 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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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88년 송치중(宋致中)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 전라도 부안현 건선면 주을래리 / 부안 우동 세덕각
    자신의 외숙부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내용 및 특징1688년3월 9일에 부안현 건선면 주을래리에 사는 송치중이 농사를 짓지 않고 묵힌 땅 1섬지기를 팔면서 작성해준 문기이다. 송치중은 식구는 많고 를 잇기가 어려워져서 형제가 서로 상의해서 외가로부터 받은 논을

해외권역 (1건)

  • 1

    1892년 면주전(綿紬廛) 도원(都員) 단자(單子) / 고문서-명문문기류-시전문서 경제-상업-시전문서 고문서-면주전-면주전 자문 대방 / 일본 경도대학 가와이문고
    진 것이 극에 이르렀습니다. 지금 시장에 나오는 사람이 점점 예전과 같지 않아 廛房에 근무하는 자는 40명에 차지 않은데다가 그 행색을 갖추고 있는 자는 매우 적습니다. 그래서 혹은 도 잇지 못하고 동가식서가숙하며, 겨울이 따뜻해도 추위를 호소하고 농사가 풍년이 들

영남권역 (9건)

  • 1

    공소(公所) 표문(標文) / 고문서-증빙류-표문 경제-회계·금융-표문 공소 / 경상북도 안동군 / 안동 주진 전주류씨 삼산종가
    주체, 즉 돈을 빌린 사람인 柳邦植의 이름과 手決이 있다. 또한 그 밑에는 "이 가운데 10兩을 6월 14일에 꾸어다 썼다."라는 말이 附記되어 있다. 이 표문의 내용을 보면 柳邦植의 처지가 水害와 같은 엄청난 자연재해를 만나 를 이을 수 없을 만큼 상황이 급박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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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68년 장만기(張萬紀) 서간(書簡) /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 성주 / 한국국학진흥원
    은 전고에 없이 혹심하여 상대가 덕이 높아도 더위는 벗어나지 못하였을 것이라 염려가 된다고 하였다. 자신에 대해서는, 집을 세내어 사는 고생은 면했으나 가난이 심하여 고민이 된다고 하였다. 본론으로 과거 날이 멀지 않아 장차 응시하려 하는데 본래부터 꺼리도 자주 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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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67년 황규현(黃奎鉉) 서간(書簡) / 개인-생활-서간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 안동대학교 박물관
    당시 수직(壽職)으로 벼슬이 내려졌음과 벼슬아치이면서도 를 해결하지 못한 가난한 선비의 생활을 엿볼 수 있다. 이원조『凝窩全集』, 여강출판사, 1986「凝窩 李源祚 先生 生平事蹟考」이세동『동방한문학12집』, 동방한문학회, 19961차 집필자 : 박상수, 2차 집필자

호남국학종합DB (4건)

  • 1

    둔인수록(鈍人隨錄)13권 7책鈍人隨錄 / 고서-집부-별집류 / 교육/문화-문학/저술-문집
    를 겨우 면한다고 하였으니 말이다. 그래서 선비의 마음엔 미안함이 있었나 보다. 부지런히 땀 흘리며 일하는 농부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유식遊食하는 자기 자신을 바라보니, 부끄러운 마음에 절로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으니 말이다.경련은 "열 손가락 노고를 몇 번이나 하
    출처 : 호남국학종합DB
  • 2

    서암일기(棲巖日記)棲巖日記棲巖日記 / 고서-사부-전기류 / 개인-생활-일기
    지 않고 휑하니 떠나가 버렸다.(《맹자》 공손추상(公孫丑上))하증이 만전을 먹으니진 무제(晉武帝) 때의 태위(太尉) 하증(何曾)이 호사하기를 좋아하여 궁실ㆍ거마ㆍ의복ㆍ음식 등을 왕보다도 사치스럽게 하였는데, 특히 때마다 만전(萬錢)의 값이 나가는 음식상을 받았는데도
    출처 : 호남국학종합DB
  • 3

    일신재집(日新齋集)21권 12책日新齋集日新齋集 / 고서-집부-별집류 / 교육/문화-문학/저술-문집
    음은 반드시 잡아서 보존해야 얻고 (心必操存得)의리는 의논하고 토론해야지 밝아지네 (義須議討明)나이 젊고 기력 왕성한 그대를 아 (愛君年力富)새로 시작하여 앞길을 열게나 (發軔開前程)心必操存得。義須議討明。愛君年力富。發軔開前程。용한당을 새로 짓고 지은 시에 뒤미처 차
    출처 : 호남국학종합DB

문화재청 (3건)

  • 1

    화원 우배선 의병진 관련자료 - 1.교지(교첩)(花園 禹拜善 義兵陳 關聯資料 - 敎旨(敎牒)) / 조선 선조 26년(1593)~광해군 1년(1609) / 12건 / 국왕문서/교령류 / 우국일 / 경기 안양시 / 낱장
    이 문서는 대구 월촌의 단양우씨 종손가에 소장되어 있던 월곡(月谷) 우배선(禹拜善, 1569~1621)과 관련된 교지, 간찰, 각택기에 관한 것이다. 우배선은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으로 본관은 단양(丹陽). 자는 사성(師聖), 호는 월곡(月谷)이다. 임진왜란 직후에 전쟁에 대한 공로로 1604년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책록되었다. 먼저 우배선과 관련한 교지 12점을 보면, 교첩 2점ㆍ교지 8점ㆍ추증교지 2점이 있다. 교지는 왕이 신하에게 관직(官職), 관작(官爵), 시호(諡號), 자격(資格), 토지 및 노비 등을 내려주는 문서이다. 교첩은 왕이 5품 이하의 관리를 임명할 때 발급하는 사령장이다. 교첩의 내용을 보면, 선조 26년(1593) 2월 군공(軍功)으로 장사랑 예빈시참봉(將仕郞禮賓寺參奉)인 우배선을 선무랑 행군기시주부(宣務郞行軍器寺主簿)로, 같은 해 3월 역시 군공으로 군기시주부에서 봉훈랑 군기시판관(奉訓郞軍器寺判官)으로 승진시킨 사령장이다. 교지는 그를 1593년 5월 통훈대부 군자감정 겸 합천군수(通訓大夫軍資監正兼陜川郡守)로 임명하는 것에서 선조 38년(1605) 4월 절충장군 행경상좌도수군우후(折衝將軍行慶尙左道水軍虞侯)에 임명하는 것까지 8점이 있다. 나머지 추증교지 2점은 선조 36년(1603) 2월 우배선이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책록됨으로써, 그의 부친 우성덕(禹成德)을 가선대부 호조참판 겸 동지의금부사(嘉善大夫戶曺參判兼同知義禁府事), 같은 해 같은 날 그의 모친 장씨(蔣氏)를 정부인(貞夫人)에 각각 추증한 것이다. 다음으로 간찰 1점은 정인홍(鄭仁弘, 1535~1623)이 당시 합천군수를 지내고 있던 우배선에게 보낸 것이고, 각택기(各宅記)는 영의정 이덕형(李德馨)ㆍ좌의정 윤승훈(尹承勳)ㆍ우의정 류영경(柳永慶) 등 주요 고관들의 명단과 그들의 거주지를 간략하게 적어 놓은 것이다. 단양우씨 종중에 소장된 우배선 관련 자료는 그가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활약한 인물이므로 임진왜란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며, 또한 교지류를 통해서 그의 관력을 살펴볼 수 있다.
    출처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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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원 우배선 의병진 관련자료-2.간찰(花園 禹拜善 義兵陳 關聯資料 - 簡札) / 조선 선조 32년(1599) / 1건 / 간독류/간독 / 우국일 / 경기 안양시 / 낱장
    이 문서는 대구 월촌의 단양우씨 종손가에 소장되어 있던 월곡(月谷) 우배선(禹拜善, 1569~1621)과 관련된 교지, 간찰, 각택기에 관한 것이다. 우배선은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으로 본관은 단양(丹陽). 자는 사성(師聖), 호는 월곡(月谷)이다. 임진왜란 직후에 전쟁에 대한 공로로 1604년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책록되었다. 먼저 우배선과 관련한 교지 12점을 보면, 교첩 2점ㆍ교지 8점ㆍ추증교지 2점이 있다. 교지는 왕이 신하에게 관직(官職), 관작(官爵), 시호(諡號), 자격(資格), 토지 및 노비 등을 내려주는 문서이다. 교첩은 왕이 5품 이하의 관리를 임명할 때 발급하는 사령장이다. 교첩의 내용을 보면, 선조 26년(1593) 2월 군공(軍功)으로 장사랑 예빈시참봉(將仕郞禮賓寺參奉)인 우배선을 선무랑 행군기시주부(宣務郞行軍器寺主簿)로, 같은 해 3월 역시 군공으로 군기시주부에서 봉훈랑 군기시판관(奉訓郞軍器寺判官)으로 승진시킨 사령장이다. 교지는 그를 1593년 5월 통훈대부 군자감정 겸 합천군수(通訓大夫軍資監正兼陜川郡守)로 임명하는 것에서 선조 38년(1605) 4월 절충장군 행경상좌도수군우후(折衝將軍行慶尙左道水軍虞侯)에 임명하는 것까지 8점이 있다. 나머지 추증교지 2점은 선조 36년(1603) 2월 우배선이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책록됨으로써, 그의 부친 우성덕(禹成德)을 가선대부 호조참판 겸 동지의금부사(嘉善大夫戶曺參判兼同知義禁府事), 같은 해 같은 날 그의 모친 장씨(蔣氏)를 정부인(貞夫人)에 각각 추증한 것이다. 다음으로 간찰 1점은 정인홍(鄭仁弘, 1535~1623)이 당시 합천군수를 지내고 있던 우배선에게 보낸 것이고, 각택기(各宅記)는 영의정 이덕형(李德馨)ㆍ좌의정 윤승훈(尹承勳)ㆍ우의정 류영경(柳永慶) 등 주요 고관들의 명단과 그들의 거주지를 간략하게 적어 놓은 것이다. 단양우씨 종중에 소장된 우배선 관련 자료는 그가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활약한 인물이므로 임진왜란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며, 또한 교지류를 통해서 그의 관력을 살펴볼 수 있다. 【번역 해제】 (1장) 정인홍(鄭仁弘)이 1599년(선조32) 합천군수(陜川郡守)에게 올린 글이다. 자신의 죽은 아들의 비가 진주성(晉州城)이 함락될 무렵 진군(陣軍)에게 강제로 약탈당하였고, 또 잉질걸(芿叱乞)의 소를 염말(廉末)이 경군인(京軍人)에게 빼앗겨 지금 본 현의 강경소리(康京所里)에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이어, 전말을 알고 있는 응세(應世)를 추문(推問)하여 소를 되찾아달라는 것이다. 만약 그렇게 할 수 없다면 곧바로 주목(州牧)에 고발하여 처분을 바라겠으니, 살펴달라는 내용의 편지이다. ( 작성자 : 조명근 )
    출처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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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원 우배선 의병진 관련자료 - 각택기(花園 禹拜善 義兵陳 關聯資料 - 各宅記) / 조선 선조년간(1568~1608) / 1건 / 민간문서/기타류 / 우국일 / 경기 안양시 / 낱장
    이 문서는 대구 월촌의 단양우씨 종손가에 소장되어 있던 월곡(月谷) 우배선(禹拜善, 1569~1621)과 관련된 교지, 간찰, 각택기에 관한 것이다. 우배선은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으로 본관은 단양(丹陽). 자는 사성(師聖), 호는 월곡(月谷)이다. 임진왜란 직후에 전쟁에 대한 공로로 1604년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책록되었다. 먼저 우배선과 관련한 교지 12점을 보면, 교첩 2점ㆍ교지 8점ㆍ추증교지 2점이 있다. 교지는 왕이 신하에게 관직(官職), 관작(官爵), 시호(諡號), 자격(資格), 토지 및 노비 등을 내려주는 문서이다. 교첩은 왕이 5품 이하의 관리를 임명할 때 발급하는 사령장이다. 교첩의 내용을 보면, 선조 26년(1593) 2월 군공(軍功)으로 장사랑 예빈시참봉(將仕郞禮賓寺參奉)인 우배선을 선무랑 행군기시주부(宣務郞行軍器寺主簿)로, 같은 해 3월 역시 군공으로 군기시주부에서 봉훈랑 군기시판관(奉訓郞軍器寺判官)으로 승진시킨 사령장이다. 교지는 그를 1593년 5월 통훈대부 군자감정 겸 합천군수(通訓大夫軍資監正兼陜川郡守)로 임명하는 것에서 선조 38년(1605) 4월 절충장군 행경상좌도수군우후(折衝將軍行慶尙左道水軍虞侯)에 임명하는 것까지 8점이 있다. 나머지 추증교지 2점은 선조 36년(1603) 2월 우배선이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책록됨으로써, 그의 부친 우성덕(禹成德)을 가선대부 호조참판 겸 동지의금부사(嘉善大夫戶曺參判兼同知義禁府事), 같은 해 같은 날 그의 모친 장씨(蔣氏)를 정부인(貞夫人)에 각각 추증한 것이다. 다음으로 간찰 1점은 정인홍(鄭仁弘, 1535~1623)이 당시 합천군수를 지내고 있던 우배선에게 보낸 것이고, 각택기(各宅記)는 영의정 이덕형(李德馨)ㆍ좌의정 윤승훈(尹承勳)ㆍ우의정 류영경(柳永慶) 등 주요 고관들의 명단과 그들의 거주지를 간략하게 적어 놓은 것이다. 단양우씨 종중에 소장된 우배선 관련 자료는 그가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활약한 인물이므로 임진왜란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며, 또한 교지류를 통해서 그의 관력을 살펴볼 수 있다. 【 번역 해제 】 (1장) 영의정 이덕형(李德馨) 이하 47명의 문신(文臣)에 대한 거주지를 적은 것이다. 일별해보면, 의정부의 삼정승ㆍ돈녕부사ㆍ오성부원군ㆍ좌찬성, 그리고 육조의 판서ㆍ참판ㆍ참의와 사헌부의 대사헌ㆍ집의ㆍ장령ㆍ지평, 그리고 사간원의 대사간ㆍ사간ㆍ정언ㆍ헌납, 승정원의 육 승지와 기타 청평 부원군, 전임 판서, 박홍로ㆍ이수광ㆍ송사재로 분류된다. 기록한 시기는 1603년(선조36)으로 추정되며, 기록 목적은 비상연락 자료로 활용하기 위한 듯하나, 처음부터 끝까지 서식이 일정하지 않고 상이한 점이 다른 용도로 쓰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48명을 선별해서 기록한 이유에 대해서는 이 기록만으로는 규명이 쉽지 않다. ( 작성자 : 조명근 )
    출처 :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