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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권역 : 전체: "끼니"에 대해 총9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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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소(公所) 표문(標文) / 고문서-증빙류-표문 경제-회계·금융-표문 공소 / 경상북도 안동군 / 안동 주진 전주류씨 삼산종가
    주체, 즉 돈을 빌린 사람인 柳邦植의 이름과 手決이 있다. 또한 그 밑에는 "이 가운데 10兩을 6월 14일에 꾸어다 썼다."라는 말이 附記되어 있다. 이 표문의 내용을 보면 柳邦植의 처지가 水害와 같은 엄청난 자연재해를 만나 를 이을 수 없을 만큼 상황이 급박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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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68년 장만기(張萬紀) 서간(書簡) /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 성주 / 한국국학진흥원
    은 전고에 없이 혹심하여 상대가 덕이 높아도 더위는 벗어나지 못하였을 것이라 염려가 된다고 하였다. 자신에 대해서는, 집을 세내어 사는 고생은 면했으나 가난이 심하여 고민이 된다고 하였다. 본론으로 과거 날이 멀지 않아 장차 응시하려 하는데 본래부터 꺼리도 자주 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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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67년 황규현(黃奎鉉) 서간(書簡) / 개인-생활-서간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 안동대학교 박물관
    당시 수직(壽職)으로 벼슬이 내려졌음과 벼슬아치이면서도 를 해결하지 못한 가난한 선비의 생활을 엿볼 수 있다. 이원조『凝窩全集』, 여강출판사, 1986「凝窩 李源祚 先生 生平事蹟考」이세동『동방한문학12집』, 동방한문학회, 19961차 집필자 : 박상수, 2차 집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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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83년 이돈우(李敦禹) 서간(書簡) /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개인-생활-서간 / 안동 / 한국국학진흥원
    ) 10월 27일에 肯庵 李敦禹(1807~1884)가 서적 제작자를 소개하는 일 등과 관련하여 石隱 柳基鎬(1823~1886)에게 보낸 편지이다. 이돈우는 근래 자신이 더욱 쇠잔해진 것이 아침저녁 를 오랫동안 제때 잇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팔십 줄에 있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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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17년 이운징(李雲徵) 서간(書簡) /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 한국국학진흥원
    形殼만 홀로 남아 있어 조석의 조차 잇지 못하니 형각도 오래 보존하기 어렵다고 하였다. 게다가 질병이 비록 대단하진 않지만 가래와 기침을 견디기 어렵고 맏이도 가래 때문에 생긴 열로 한 달이 넘도록 앓지만 조금도 차도가 없으니 고민이라고 하였다. 피곤함이 심하여 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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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7년 이현실(李鉉實) 서간(書簡) /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 영양 / 한국국학진흥원
    있다. 무슨 연고로 늘그막에 이렇게 떠나왔나 싶지만, 그래도 형제들과 삼십년을 단란하게 모여 살다가 떠나온 것이니 그나마 스스로 위로가 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아침저녁으로 겨우 를 이어가며 곤궁하게 지내는 것에 답답한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石兒가 자신을 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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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1년 강심(姜鐔) 서간(書簡) /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 경상도 안동부 / 안동 주진 전주류씨 삼산종가
    가족의 일로 옮겨졌다. 발신자는 수신자의 둘째 형의 묵은 병이 근자에 깨끗이 제거되었는지, 그리고 근자에는 어떻게 지내는지 물었다. 이어서 수신자가 시키지 않아도 가서 보고자 하였으나 더운 계절에 몸을 움직이기가 어렵고 흉년으로 아침저녁 를 보전하기 어려워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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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67년 이원조(李源祚) 별지(別紙) /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개인-생활-서간 / 안동대학교 박물관
    증산(甑山)의 서기로 추천한 인물.이기덕향청(鄕廳)을 교체할 때 첫 승진 대상으로 지목된 인물.지명호구糊口입에 풀칠이나 한다는 뜻으로, '겨우 를 이어가는 일'을 이르는 말하첩下帖수령이 그 고을의 면임(面任)이나 동임(洞任), 향교, 서원 따위에 지시하던 문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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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1년 삼계서당(三溪書堂) 회중(會中) 통문(通文) /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사회-조직·운영-통문 / 경상북도 봉화군 내성면 / 경주 옥산서원
    였다. 이처럼 충재의 후손들은 정당한 것이었기에 1년 정도 지난 뒤에 책을 정돈하여 원본의 잘못을 바로잡아 다시 고쳐 베 본 고을의 官府에서 허가하고 삼계서당에서 하나하나 기록하여 匠人을 불러 版木에 글씨를 새기는 전후로 여러 사람들이 재물로 정성과 힘을 바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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